쓰고 싶다는 욕구가 감추고 싶다는 욕구와 부딪친다. 깊숙이 감추어 둔 속내가 조금이라도 묻어났다 싶으면 불편하다. 부끄럽다. 손톱 끝에 박힌 가시 같고 혀에 돋은 혓바늘 같다. 아무도 관심 없는데 혼자만 신경 쓰이는, 정수리 한가운데 바짝 솟은 새치 같다. 뽑아 버릴 수도, 염색할 수도, 잘라 낼 수도 없는, 고작 머리카락인데 존재감은 우주 같은 반짝이는 새치 한 가닥.
그럼에도 쓰고 싶다는 욕구가 나를 여기에 이르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엔 문학도로, 다음엔 편집자로, 지금은 번역자로, 다른 이의 글에 기대어 나의 욕구를 채우는 것이다.
닫힌 문 앞에서 서성이면서.
나는 글을 쓴다고 생각하면서 한 번도 글을 쓰지 않았고
사랑한다고 믿으면서 한 번도 사랑하지 않았으며
닫힌 문 앞에서 기다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 뒤라스, <연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