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yeong May 23. 2024

인간조건 8

어머니의 남자로 둔갑한 아들

   태완이가 고향에 홀로 계신 어머니를 찾아왔을 때, 동네 사람들은 치매를 앓고 계시는 어머니를 자신의 집으로 모셔가려고 온 줄 알았단다.

 그런데 태완은 고향집에서 어머니 수발을 들며 달포가 지났는데도 돌아갈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은 어찌 된 일인지 궁금해하며 마을회관에 모여서 쑥덕거렸다.  동네 사람들이라곤 스무 가구도 안 되는 규모에 독거노인 1인가구가 삼분의 이나 되니, 외로운 어르신들은 날마다 마을회관에 모여 하루를 지내고 집으로는 잠만 자러 간다. 그러니 손바닥 보듯 뻔한 동네에 타향으로 나갔던 대나무집 아들 태완이가 돌아와 눌러앉았으니 동네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30년째 마을 이장인 동수는 동네 사람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태완에게 다가가 었다.

 "어르신들만 사는 동네에 자네 같은 젊은이가 와 있으니 든든하구먼. 어머니랑 지내다 갈라고 그러는가?"

"형님, 전 여기 고향에서 어머니랑 쭉 지내려고 아주 왔구먼요."

"그러면 우리야 반갑지... 이참에 전입신고도 하면 어떤가 그려? 그러고 자네 안사람이랑 자식들은 어떻게 할 건가?"

"형님, 저 이혼했어요. 자식들은 지 엄마랑 지내기로 했고요.. 살던 집은 위자료로 아내에게 줬고 저만 나왔어요."

"아이고, 그렸구먼! 경제도 안 좋은 때 나이 먹어 이혼은 무슨 이혼이 당가? 웬만하면 그냥 살지... 뭔 일이 있었길래... 쯧쯧 안 됐구먼!"


태완은 결혼하고 성실하게 직장생활 잘해서 60평대 아파트도 한 채 사고, 자녀들도 대학원까지 모두 졸업시키고 좋은 직장에 취직도 하니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이 살만해졌었다. 태완은 더는 가장이라는 짐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고 싶었다. 그는 50 중반이 되었을 때 다니던 직장에서 명예퇴직을 하고 퇴직금으로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5년도 되지 않아 부도가 났고 사업자금을 모두 날려버리자 아내는 합의이혼을 청구했고 태완은 아내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그 후 갈 곳을 잃은 태완이 고향집을 찾았던 것이다. 홀로 계신 어머니를 보살펴드리며 조용히 지내자는 생각이었다.




  태완의 어머니는 치매를 앓고 계셨는데 태완이 집에 온 날부터 부쩍 상태가 악화되었다. 주간보호센터에 다니는 어머니께서는 아들을 보자, "여보, 어디 갔다 이제 왔어요?"라고 하면서 아들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아버지를 많이 닮은 아들을 남편으로 착각하신 어머니는 태완이 달포를 지내는 동안 한 번도 아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태완은 어머니가 야속했다. 그동안 회사일로 바빠서 아무리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 하더라도 세상에 아들을 몰라보는 어머니가 있단 말인가!



 아들에게 자꾸만 "여보!"라고 부르는 어머니가 야속하고 원망스러웠지만 중증치매환자라는 걸 알고 나서 태완은 어머니의 인지기능 수준에 맞추어 반응을 해드리기로 마음먹었다.

그 후 태완은 어머니가 "여보!"라고 부르면 "왜 그러세요? 마누라!"라고 대답해 드렸다. 어머니는 태완에게 자신의 몸을 의지하고 때론 태완의 얼굴을 비비기도 하고 가슴에 안기기도 하면서 아들을 당신의 남편으로 생각했다.

그럴 때마다 억장이 무너지는 태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 눈높이에 맞추어 아버지를 대신해서 반응해 드렸다.


노인전문병원에서 어머니의 정기적 건강검진과 인지기능검사를 받아보았다. 검진 결과는 어머니의 인지기능이 6~7세 정도 수준으로 떨어지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차후 점점 더 어린아이처럼 행동할 것이고 지인들을 구분하는 능력이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태완은 어머니의 마지막 인생이 너무나도 가여워서  절로 눈물이 났다.




 태완은 어머니의 기억이 맑고 건강하셨을 적 시절을 떠올려  보았다. 어머니는 시집와서 시부모님 봉양하느라 30년 넘게 고생하셨고 시부모님, 그러니까 태완의 조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자 아버지가 지병으로  쓰러지셨다.

어머니는 거동하지 못하시는 아버지를 10년간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다 2년 전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시니 정신줄을 놔버린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는 젊고 건강하셨을 적엔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하느라 정작 당신의 삶은 살지 못하셨다. 태완은 6~7세 아이가 되신 어머니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머니는 지금껏 당신의 삶을 살지 못한 원통함 때문에 어린 시절로 돌아가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으신 것이라고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416 세월호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