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역에 가까스로 도착했는데 예매한 서울행 열차가 출발하고 있다. 나는 가뿐 숨을 참느라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떠나가는 열차 꽁무니를 바라보노라니 슬픈 감정이 내 가슴을 스친다.
기회를 한번 놓치고 나면 새로운 기회를 붙잡기엔 많은 번거로움이 따른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나의 호기로운 성품 때문에 매번 기회를 당차게 떠나보낸 적도 많았었다. 새로운 기회를 붙잡기 위한 번거로움보다 새롭게 시작되는 기회가 달콤했었기에 나는 이미 누리고 있는 것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았던 것 같다.하지만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인지 자꾸만 위축된다. '이제 또다시 새로운 기회가 있을까?' 아니 기회가 다가오더라도 자신감이 떨어진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약해져갈수록 욕심만 쌓이는 것 같다. 이미 움켜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하니 말이다.
나는 예매했던 열차표를 반환하고 다음 열차표를 예매했다. 다행히 손가락의 수고만 있었을 뿐 몸은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떠나버린 열차 홈에서 의자에 앉아 핸드폰에 있는 코레일 앱으로 예매를 했기 때문이다. 다음 열차는 20분 후에나 탑승할 수 있었다. 플랫폼에서 20여분의 기다림이 내 마음을 조여들게 하는 것을 느꼈다. 기다림은 나의 약점 중 하나다. 지나간 내 발자취를 돌아보니 '조금만 참고 기다렸더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다. 참지 못하는 사람은 수고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 같다. 시험문제를 풀고 몇 초 몇 분을 기다리지 못해 정답을 찾느라 땀을 흘리곤 했었다. 겨우 답을 다 찾고 나면 곧바로 선생님께서 정답확인을 해주시러 오셨다.
나는 요즘 삶의 혈전을 벌이는 중이다. 무언가 싸움을 시작했다면 이길 때까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갑자기 무기력해지는 내 모습을 바라보며 바닥나버린 긍정적 에너지(공격성)로는 패잔병이 될 수밖에 없음을 경험한다. 사방이 적인데 방어할 힘도 공격할 에너지도 없다. 그저 구겨져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경쟁하고 빼앗고 빼앗기고 아웅다웅하는 것이 한때는 재밌었던 적도 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 모든 것들이 의미를 잃어간다. 사회인이 되기 위해 취준생 대열에 끼어서 면접도 보고 많은 경쟁자들과 대결도 해보았다. 저마다 야심 찬 눈빛으로 경쟁대열에서 승자가 되고자 한다. 마치 수능으로 서열화하는 입시생처럼 말이다.
혈전의 날에 칼을 갈아도 모자랄 판에 굳이 승패로 나누어지는 것 외에 다른 답은 없을까 생각하고 있다. 누군가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질 때 누군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를까 봐 조바심이 난다. 줄다리기 선수로 출전했으면 열심히 줄을 당겨야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런데 집념이 얕아진 건 공격성이 낮아졌기 때문인가? 아니면 집중력이 약하거나 지능이 저하되었기 때문인가? 암튼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