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우즈 Apr 17. 2023

아무래도 만들기는 어렵지? 선생님도 어려워…;;

[근무일지] 네가 어려워하는 건 당연해. 그런데 생각보다 쉬울 수도 있어

날이 따뜻해지면 박물관에 오는 사람들도 많아지는 법이다.


꽃피는 4월이 되니 폭풍처럼 몰아치는 박물관 교육일정에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바쁜 요즘이다.

위드 코로나 이후 활발해진 오프라인 교육 덕분에 하루하루가 경험이자 실전인 나날이다.


박물관 교육은 주로 평일에는 학급단체, 주말에는 개인 신청을 받아 진행한다.

개인이 직접 신청하여 주말에 박물관 교육을 듣는 경우, 이미 박물관 교육과 역사라는 주제에 익숙한 학습자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학습자가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여 교수자가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의사소통과 학습목표 달성이 잘 이루어지는 편이다.


반면, 한 학급에서 단체로 박물관 교육에 참여하러 온 경우에는 학생마다 수업태도가 다르다.

아무래도 박물관에 단체로 견학을 온 것이 아이들의 의지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학급 안에서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학생이 있는 반면 모든 활동에 부담을 느끼는 학생도 있다.

이런 경우 참 난감하다. 역사학전공자라 그런지 이럴 때는 어떻게 가르쳐야하는지 고민이 많다.

교육학 전공자들은 매번 달라지는 학습자의 태도와 흥미에 유연하게 대응하여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걸까?

내가 아직 모르는 게 많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은 그 고민의 과정에 대한 두서없는 이야기다.


지금 진행하는 수업에는 기념비를 만드는 체험이 있다.

기회가 되면 교육 개발 과정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은데, 제임스 영의 역기념비 개념을 도입하여 만든 교육 프로그램이다.

구시대의 전형적인 기념비 형태에 대한 반문으로 ‘기념’ 보다 ‘기억’이라는 행동에 더 무게를 두고 평화 기념비를 직접 디자인해서 만든다.

때문에 아이들이 만드는 평화 기념비에는 정해진 모양이 없다.

만들기 시간에 앞서 관람한 호국영령의 활약상과 그들이 지켜준 평화에 대해 느낀 그 추상적인 마음을 기념비로서 만든다.

이 과정을 통해 ‘추모’라는 개념에 익숙해지는 것이 학습목표다.


그동안 개인을 대상으로 수업을 할 때는 몰랐는데, 학급 단체로 수업을 해보니 만들기를 대하는 아이들의 부담감이 개인별로 차이가 많이 났다.

이론 수업과 전시실 체험을 통해 내용을 다 이해했더라도 아무런 가이드라인이 없는 창작과정, 그 자체가 힘들다는 친구들이 있었다.

사실 원래의 내 성향으로서는 하기 싫다는 친구에게 억지로 시키고 싶은 마음이 없다.


돌이켜보면 나도 어렸을 때 선생님의 말을 참 안 듣는 학생이었다. 그때의 나는 하기 싫은 이유가 분명했다.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거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부담스럽다는 건 하기 싫은 명확한 이유가 되었다. 이를 무시하면서까지 행동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하기 싫어할 때는 그 이유가 명확하다고 생각한다. 하기 싫다는 그 마음 자체로 사실 이유가 될 수 있다.

선생님이 시켰다고 해서 하기 싫은 것을 무조건 따를 이유는 없었다.


이런 아이들에게 선물을 준다는 명분으로, 선생님의 말이라 들어야 한다는 이유로,

다른 아이들도 하니까 너도 해야 한다라고 회유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특히 ‘나는 선생님이니까 학생들은 꼭 내가 생각한 대로 해야 해 ‘라는 것에는 정말 회의적이다.

애초에 아이들이 왜 내 말을 들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뭐라고 잘 따라와 주는 아이들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은, 창작하는 것이 힘든 아이들의 부담감에 먼저 공감해 주는 것이었다.

평화 기념비를 만드는 것을 어려워하는 친구에게는 먼저 다가가서 내 작품을 보여줬다. 정말 이상하게 생긴 기념비다.

작년에 첫 수업을 들은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예시 작품이었는데, 아이들은 정말 거짓말을 못한다.

어떻게도 예쁘다고 하지 않았던 기념비였다.(나는 정말 만들기에 소질이 없다.)


“만들기 어렵지.. 나도 너무 어려워… 그런데 만들기가 어려울 뿐이지 네가 싫어하는 것은 아닐 거야.

잘 만들지 않아도 돼. 어차피 이 수업은 정해진 모양이 없으니까.

선생님 작품은 보기에는 이상해보이는 기념비이지만, 정말 추모의 마음을 담아 만들었어.

그렇기 때문에 당당해! 이건 내 작품세계거든!

너도 어떻게 만들어도 괜찮아! 그것이 너의 세계관인 거야! “


이렇게 모든 텐션을 더해서 즐겁게 할 수 있도록 노력했던 것 같다. 이 수업으로 인해 부담스러운 만들기가 더 싫어지지 않길 바랐다.

잘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가 와닿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손에 재료를 꼭 쥐어보는 아이들을 보면 조금은 안심이 된다.

이런 방법이 맞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그저 앞에서 노력하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그래, 선생님 말 한번 들어주자’하면서 수업에 참여해 주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은 사실 어른들의 의도를 알면서 모르는 척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내가 그랬거든)



다만, 이 수업은 미술 수업이 아니기 때문에 학생들이 만들기에 과몰입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만들기 실력이 부족하더라도 마음을 담을 수 있다면,

만드는 그 시간 동안 평화에 대해 계속 머릿속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이 수업의 학습목표가 달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념관이 공공역사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입사할 때 받았던 면접 질문 중 하나다.

한 30초인가, 시간의 흐름이 느껴질 정도의 정적이 흘렀는데

고민을 멈추고 결국 항상 생각했던 내용에 대해 정확히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관람객이 ‘기념’이라는 행위를 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에는 ‘대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사건에 대한 끊임없는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생각을 자극하는 전시, 교육 콘텐츠가 필요하다.

그리고 기념관은 이 역사적 사건에 대한 끊임없는 대화가 일어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자유롭게 발언하되, 편향된 왜곡에는 경계하는 안전한 대화의 장소가 기념관이 되기를 바란다. “



원래는 학습 목표를 올바르게 달성하면 그 자체로 나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교육은 사람 사이의 일이다 보니, 아이들은 지식 습득 그 이상의 경험을 체험하고 간다.

기념관이 안전한 대화의 장소가 된다면, 나는 그곳에 있는 안전한 사람이 되고 싶다.

어떤 기념비를 만들던지, 어떤 생각을 얘기하던지, 그 자체로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지지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잘못된 정보로 완전히 어긋나지 않는 한, 마음껏 자유롭게 생각하고,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오늘도 부족하고 체계 없는 이상한 선생님을 따라와 주는 학생들에게 고마울 뿐이다.

앞으로도 이상한 나라의 체험교육실에서 즐거운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이방인을 꿈꾼다는 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