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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우즈 May 07. 2023

내 탓하지 않을 용기

[그냥 일기] - 자기 탓만큼 쉬운 게 있을까?

나는 주로 나한테 위기가 닥치거나, 슬프거나, 억울하거나, 

아무튼 속수무책으로 우울할 수밖에 없는 일이 닥칠 때마다

이상하게도 자신을 탓하는 경우가 있었다. 아니 많았다. 


아마 대개 인간관계에서 오는 문제일 텐데

누군가의 예민함을 아무런 계기 없이 받아줘야 할 때나, 

은근슬쩍 소외감을 느낄 때나, 아니면 이유 없이 차별과 무시를 당하거나, 

배신을 당하거나, 욕설을 당하거나,

귀찮은 무언가를 좋은 얼굴로 떠넘길 때 등등?

사실 타인이 주는 상처가 가장 치명적이고 어이없을 때가 많았다. 

'왜들 이러는 거지?'라는 물음표가 끊임없이 생성될 때 말이다. 

진짜 어이없을 때. 이유를 알 수 없이 당하고 있는 그런 상처 있지 않나. 

그런 것들이 나에게는 대부분 '사람'이 주는 거였다. 


이럴 때마다 나는 이상하게도 자신한테서 원인을 찾았다. 

내가 모자라서, 호감인 사람이 아니라서, 외모가 별로라서 등등

그런 취급을 받아도 당연하다는 듯이 자신을 질책했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그것은

원인을 찾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아무런 이유 없이 이런 고통을 당한다는 것이 너무 억울해서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게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그래 내가 잘못해서 그렇지 뭐. 별거 아니야. 

이렇게 생각하니 그냥 넘어갈 수 있었다. 

행방불명이었던 원인을 쉽게 찾아서. 그냥 그렇게 넘어갔다.

조용히, 아무 소리 없이.



말하지 못한 내 상처는 어디에 있을까


사회역학자 김승섭 교수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 제시된 연구결과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학교 폭력 피해자 중 남성 피해자의 대응을 연구한 결과가 인상적이었다. 

학교 폭력을 경험한 학생 중 '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 넘어갔다'라고 대답한 남학생들이 모든 표본 집단 중에 가장 많이 아팠다. 아주 높은 우울 증상 유병률을 보였다. 


이처럼 '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 넘어갔다'라는 말은 누군가에게는 사실 전혀 다른 의미일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 말이 사실은 학교 폭력을 경험하고 너무 괴로웠지만 도움을 요청할 수조차 없었다는 뜻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상처받았고 괴롭지만, 스스로 '별거 아니야'라고 말하면서 애써 노력했던 것이 오히려 더 큰 아픔의 원인이었을 수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김승섭 지음





나는 그동안 억울하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차별과 폭력을 당하면, 그저 생각의 고리를 끊었다. 

자신을 탓하며, 간편하게 말이다. 

남을 탓할수록 원인을 알 수 없는 고통에 괴로워하는 시간만 늘어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 몸은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때로는 인지하지 못하는 그 상처까지도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심장 한쪽이 답답하고, 밤새 잠을 못 이루고, 다른 사회생활이 어려워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 탓하지 않을 용기, 남을 탓할 힘을 키워야겠다. 

남을 미워할 힘을 열심히 키워야겠다. 


나만은 적어도 마지막까지 내 편이어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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