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의 글쓰기 연습] 역사 Faction 작품에 대한 나의 생각
조선구마사 이슈가 화제다.
역사왜곡 논란으로 수백억이 들어간 콘텐츠 자체가 폐기된 것은 처음이다.
아마 많은 투자 철회로 끝까지 완성하지 못할 콘텐츠를 계속 제작한다는 것이 밑빠진 독에 물 붓는 것 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방송국이라고 거기까지는 생각이 닿았나 보다. 조금만 더 현명했다면 애초에 제작조차 안 했겠지만.
나는 역사를 전공하고 콘텐츠 업계에 있다가 어시 큐레이터로 막 시작한 사람으로서 과거에 있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 이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역사적 사건을 재구성하는 일종의 팩션(faction)콘텐츠에 대한 케케묵은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필자가 미성년자였을 때부터 언론에 종종 등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십여 년 전 유명했던 드라마들(주몽, 이산 등등) 혹은 덕혜옹주와 같은 영화도 논란의 중심에 섰던 적이 있다. 역사 드라마와 콘텐츠의 역사 왜곡 논란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왜, 조선구마사만이 폐지라는 방송 역사상 최악의 결론에 치달은 것일까.
최근 중국의 문화 동북공정에 대한 여론의 반감이 거세다. 이번 역사왜곡 논란은 중국의 문화 동북공정에 대한 반감이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 드라마에 피단과 월병이 등장해 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대중으로 하여금 역사 왜곡 콘텐츠가 세상에 미칠 영향력에 대해 재고하고 경계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조선구마사는 지난 다른 콘텐츠하고는 그 왜곡의 결이 다분히 악의적이다. 지난 역사 콘텐츠들에 대한 역사학계의 비판적인 입장은 대부분 과도한 민중주의(populism)를 자극한다는 것이다. 역사는 과거에 대한 반면교사와 자아성찰의 과정이 중요한 학문임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우리 민족', '위대한 조상'이라는 프레임만을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구마사는 민중주의 도취에 대한 반작용이었던 것일까? 조선구마사는 조선시대 꽤나 유능했던 왕으로 평가되는 '태종'을 환영에 미친 임금으로 표현했다. 반작용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무지하고 왜곡된 시선에서 그려낸 그저 '거짓말' 그 이상의 것도 아니었다. 변명의 여지없는 거짓 농락이니 '폐지'라는 상황까지 이른 것으로 보인다.
콘텐츠 업계에서 근무했을 때가 떠올랐다. 나는 역사학 전공자였기 때문에 영화, 콘텐츠 업계에 종사할 때 관련 분야의 콘텐츠를 만들 때 기획 회의에 많이 불려갔더랬다.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2차 창작 콘텐츠를 생산하는 기획 회의였다. 이런 회의는 원래 한 번으로 끝난 적은 없었지만 꼭 내가 참여하면 회의가 길어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팀원들에게 피로감을 주는 건가? 고민할 때도 있었다.
업계 사람들과 내가 역사를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랐다. 업계 사람들은 역사적 사건을 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소재'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그리고 나는 재구성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사실'로 보았다. 그렇기에 내 입장에서는 절대 건드리지 말아야 하는 설정이 많았다. 회의 중에 계속 부정적인 얘기를 하는 팀원이 있으니 회의가 길어질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다.
두 가지 시선의 옳고 그름은 없다. 적어도 콘텐츠가 역사학 그 자체는 아니니까. 다만 필자가 일하면서 느낀 바로는 드라마나 영화 등등 집단 예술 콘텐츠는 분명히 극적인 상황과 연출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이 그렇게 극단적이지 않듯이 역사도 하루가 다르게 특별하고 영웅적이고 혹은 절대악만이 존재했던 시대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팩트'는 상상 속의 '픽션'만큼 극적이지 않다.
그러므로 역사적 사건을 다룬 창작물을 제작할 때, 역사를 '소재'로 다룬다고 해서 무조건 재밌을 것이라는 기대를 버릴 필요가 있다. 역사 속 한 '시대'를 소재로 다뤄봤자 우리네 일상생활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 사료를 고증하다 보면 생각보다 눈에 띄는 부분이 보이지 않아서 괴로울 것이다. 그러니 제작자 입장에서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고증은 건너띄고 '유희'만을 위해 이것저것 살을 붙이다가 조선구마사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조선시대 문화의 아름다움과 자극적인 '좀비'의 모양새가 영상 미술에서 쓰였을 시 얼마나 사람의 눈길을 끄는지 '킹덤'을 통해 증명된 바가 있다. 그러니 조선구마사는 큰 고민 없이 '조선'이라는 시대를 선택한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시각적으로 볼거리가 풍성하고 뭐라 해도 재밌을 것 같으니까. 정말이지 역사적 이해가 전혀 없는 소재 선택이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싶은데 가장 유명한 왕이 세종대왕이니 그 주변으로 태종이랑 양녕대군 등등 다루자!'라는 얕은 생각의 깊이가 느껴지는 선택이었다.
애초에 콘텐츠로 생산하기에는 재미없는 소재를 선택했다고 얘기하고 싶다. <조선구마사> - '괴력난신의 시대'.... 괴력난신의 시대라니, 애초에 역사학에서도 어떤 시대를 '정의'하는 것은 엄청나게 많은 팩트를 분석해야하고 많은 토론이 오고가야하고 결론이 안나서 지난하고 지지부진한 작업이다. 그리고 최근 역사학에서도 거대담론이 지배하는 서술(이제 재미없으니까..)에서 벗어나 보다 미시사, 민중사에 대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데...... 아니, 누구맘대로 태종의 집권시기를 괴력난신의 시대라고 정의내리냔 말이다.
콘텐츠 생산자들에게는 소비자가 적극 소비할 수 있는 '재미'의 요소가 참 중요하다. '재미'를 찾아 역사적 소재를 다룰 때는 어떤 시선으로 봐야할까? 조선시대/고려시대/삼국시대 등 이 광활한 시대를 뭉뚱그려 볼 것이 아니라, 여태껏 역사학자들이 많이 연구하고 성과를 낸 '사건과 인물' 위주의 소재를 살펴보는 것이 제일 편리하다. 이는 제작자로 하여금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이제 역사 속 유명한 인물들의 일생에 대해서는 다른 많은 사극에서 다룬 것 같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역사 속에서 더 이상 연구할 것이 없다면 왜 아직도 대학에서는 역사를 가르치고 학문후속세대들이 계속 등장하겠나. 현재 우리가 이 지구상에 살아간 시간은 한낱 먼지 수준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역사 속 동일 인물에 대해서도 매번 다른 시각에서 서술된 수십 편의 논문이 쏟아져 나온다. 역사적 사건은 단편적으로 재단할 수 없다. 이는 한 인간과 사회와, 시대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나의 일생이, '나'라는 인간이 여러 면모를 갖고 있듯이 말이다.
같은 주제여도 보다 재밌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글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글쟁이들의 역할이지 않나. 그런 부분에서 역사학 논문을 쓰는 것과 방송 작가의 글도 같은 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더더욱 역사를 바탕으로 콘텐츠를 제작할 시 많은 공부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그저 적당한 '글빨'로 결과물을 생산하기에는 역사 속 인물의 삶과 사건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서 감화되지 않는 이상 깊이 있는 글쓰기는 어렵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재미가 없을 것이다. 역사는 모두의 것이니 모두의 기분만 나빠질 뿐이다.
https://www.ajunews.com/view/20210324151845579
<킹덤>을 제작하기 위해서 김은희 작가는 대동여지도를 실제로 분석했다고 한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김은희 작가보다 부족하니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할 것이다.
콘텐츠 제작자로 하여금 역사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 공부를 많이 하라는 말이 가혹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공부하는 것이 어렵다면 적당한 고문비를 제공하여 역사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평생을 일반인들이 접하기 어려운 역사 사료들을 읽고 분석하는 연구자들의 머리속은 상상 이상의 이야기보따리다. 그렇게 비싸지도 않을 텐데 말이다. 사람들은 인문학(특히, 역사)에 돈 쓰는 것을 왜 그렇게 아까워하는지 모르겠다.
역사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다양한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학문이다. 그렇기에 pd와 같은 언론인, 제작자들이 역사를 소재로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고자 시도하는 모습을 긍정적이게 생각한다. 오히려 최근 대두되는 '공공역사'를 위해서도 역사학을 다루는 비전문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보다 전문적인 준비와 학습이 필요하다.
pd와 같은 언론인들이 저널리스트로서 전문성을 위해 과학저널리즘 등과 같은 관련 콘텐츠에 대한 전문적인 저널리즘을 공부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렇게 역사 콘텐츠에 대한 제작자들의 갈망이 큰데, 역사 저널리즘도 필요하지 않을까? 비전문가들의 역할이 중요하니 관련 학문을 좀 더 공부하고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다만 역사를 다루는 콘텐츠는 소비자로 하여금 스스로가 역사 해석의 주체가 되어 다양하게 사고할 수 있는 생각의 '여백'을 제공해야만 한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역사와 문학이 다른 것이다. 팩트와 픽션이 다른 이유가 그것이다. 역사 속에서 대중이 스스로 다양한 사고를 할 수 있게 안전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것이 콘텐츠 생산자와 역사학자의 역할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