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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유이 Apr 25. 2024

스스로 마련한 외로운 자리

자초한 것

밤산책가는 애초에 돈을 벌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아니라 책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작가, 출판 꿈나무, 디자이너 지망생…. 그런 사람들이 모여 뚝딱뚝딱 책을 만드는 것이 밤산책가가 하는 일이었다.


나는 ‘전업 작가’라고 했을 때 사람들이 보내는 미묘한 눈빛을 무척 싫어했다. 작가는 직업이 아니라 신분이라는 말이 사실이었는지, ‘대단하다’라고 말하면서 ‘그래서 무슨 일 해?’라고 물어보는 상황이 싫었다. 작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잊혀지는 감정들을 환기시켜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어째서 이렇게 저평가 되어 있는 것일까? 나는 작가를 당당한 직업으로 만들고 싶었다.

누가 그렇게 만들어 준다면 참 좋았겠지만 세상에 그런 상냥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상황을 헤쳐나갈 칼 한 자루 들지 못한 채 홀홀단신으로 전쟁터에 나섰다.

내가 안 하면 누가 하나.


처음부터,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아예 없었다. 최선을 다해 글을 쓰면 사람들이 알아봐 줄 거라고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게 되었다면 누구든 작가가 되고 출판사를 차렸겠지. 내게 이야기는 하나의 상품이 되어야 했다. 어떤 작품이 잘 팔리는지 알아보기 위해 여러 방향성의 책을 기획해서 내보고, 자금을 받기 위해 본래 계획과 다른 방향의 집필도 불사하였다. 처음부터 각오했던 일이기에 나는 꽤나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모른 채.




함께 일을 하는 아이가 울었다. 내가 나빴다. 괜히 주위의 말에 귀가 팔랑여, 아이들에게 지금이 위기상황임을 알리는 것이 아니었다. 강해 보이는 사람도 어딘가에선 약할 수 있는 것인데, 내가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를 살피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아이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렇게 말씀하셔도 저는 글만 쓰던 사람이라 어떻게 할 지 모르겠어요. 정말 죄송한데…. 눈물을 쏟는 아이를 보며 망연자실한 기분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각오를 했냐고 물어본 적이 없었구나.


아이들이 각오를 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 잘못이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생계까지 해결한다는 것을 당연히 반길 것이라 생각한 내가 잘못한 것이었다. 어쩌면 아이들은 아무도 바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저 나 혼자의 생각으로 아이들에게 제대로 뭇지도 않은 채, 아이들을 불행으로 내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부로 나는 본래 하던 사업을 중지하기로 결심했다. 지원금을 주던 단체에는 사업 아이템을 바꿔야 할 것 같다고, 죄송하다고 말씀을 드렸다. 아이에게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으려다, 잘 모른다며 우는 그 표정이 생각나 그만두었다. 나는 한동안 아이의 목소리에 눈물이 끼어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 목소리를 듣는게 무서워 말도 잘 걸지 못했다.

대체 난 무엇을 하고 싶었던 걸까.


어느날 인터넷을 보던 아이가 다른 출판사의 매출을 보여주었다. 14억원. 이전에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냈다고 했던 그 출판사였다. 이전에는 그냥, 너희만 좋아하는 거 아니냐고 했던 곳. 이번에는 아이에게 그 출판사가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 조사해 보라고 했다.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보인다면 그 쪽으로 옮기자. 망해도 하고 싶은 걸 끝까지 해야지.

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그곳조차 우리가 하기 싫은 일을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따금 아이들을 원망하곤 했다. 나는 처음부터 혼자서 창업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가 다 함께 힘을 모아 창업을 하는 거고, 법인은 위험부담이 높으니 일단은 대표인 내가 개인사업자를 내는 것이라 생각했다. 언제든 전환할 준비가 되면 빠른 시일 내에 전환할 예정이었다. 그렇기에 ‘어차피 본인 사업 아니냐’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숨이 턱 막혔다. 한 번은 농담처럼 ‘다 너희들 잘 되라고 그러는 거야.’라고 말한적이 있었는데,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진짜?’라는 말을 돌려받은 적이 있었다. 그날 얼마나 서글펐던지. 아이들 같은 사람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길 바래서 시작한 일이었는데도 그것이 나를 더욱 유리시키는 것 같았다.


내가 엄청난 것을 바란 것이었을까. 출판 불모지인 광주에서 다 함께 희망을 일구어 보자는 외침이 이렇게까지 공허할 줄은 몰랐다. 무엇이 돌아오길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본래 있던 것까지 떠나갈 줄은 상상도 못했다. 여차하면 자기들을 버리라는 말에 나는 심장이 도려 내지듯 힘들어 했다. 나는 모두와 함께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아이들은 그래하지 않는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응원한다고 했는지, 이번에는 정말로 믿어도 된다고, 자신들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고 말했던 건지. 원망은 땅을 파고 들어갔다.


그러나 원망이 깊어지면 어느 순간 툭 하고 끊어지기 마련이다. 아무리 깊은 원망이라도 결국에는 내 잘못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너무 가볍게 권한 것이 잘못이었고, 이미 떠날 계획을 잡고 있던 아이들인데 이곳에 전력을 다 할 거라 믿은 것은 그저 내 바람이 현실이길 바란 꼴이다. 시작부터 명확히 말을 했어야 했다. 나는 왜 이걸 하는지, 왜 너희랑 하고 싶은지. 하지만 괜히 우울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는 욕심에 차일피일 미루어진 말들은 결국 아이들의 눈물만 키웠다. 아이들은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고, 부담스러웠을까.




오늘, 처음으로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대학을 거쳐 이곳에 오기까지 왜 그런 선택을 해 왔는지. 그래서 지금 어떤 점이 힘든 지 이야기했다. 혹여 화를 낼까봐 최대한 조심히. 사실 어제 만난 대표님은 직원들에게 속을 다 말하지 말라고 했다. 아무리 정에서 시작한 관계라고 해도 결국에는 일이라고. 사람들에게 마음을 너무 의지하면 안 된다는 말이겠지만 내가 떠올린 것은 반대였다.




어쩌면 우리는 정을 나눈 적이 없는 게 아닐까?


솔직한 것처럼 투명하게 비치고 있지만 사실은 두꺼운 유리벽 때문에 닿은 적이 없던 것은 아닐까.




긴 시간동안 말을 한 이후 한참동안 심장이 쿵쾅거렸다다. 아이는 자신이 일을 할 때 외로웠던 이야기를 하며 나에게 공감해주려 했고, 그 말이 조금 위로가 되었다.




대표라는 자리가 외로운 것이 아니다. 내가 자초한 무언가로 인해 힘들어 하는 사람이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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