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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샘 Mar 17. 2024

세이노의 가르침_한 자수성가자의 잘난 척

나는 서점에 가도 베스트셀러 매대에는 잘 가지 않는다. 물론 많이 팔리는 책에는 다 이유가 있겠지만, 자기계발서 같은 책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경우를 많이 본 탓이다. 그런데 제목부터 교만하기 짝이 없는 <세이노의 가르침>이라는 책을 누군가가 권했다. 이 역시 자기계발서로 분류된 베스트셀러였다.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지 않는 두 가지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책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읽어나 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세이노의 가르침>은 700쪽이 훨씬 넘는 책이다. 게다가 한 페이지에 거의 여백도 없이 빽빽하게 내용이 들어차 있다. 이 정도 분량의 책이라면 가격이 2만원 이상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가격은 7200원이다. 돈이 많이 들어가는 컬러 사진이나 화려한 편집 기술 같은 것이 빠진 탓일 수도 있지만, 이것은 철저히 계산된 저자의 의도에 따른 것임이 분명하다. 그 점은 마음에 들었다.     

나는 책을 읽다가 눈에 띄는 내용이나 다시 보고 싶은 곳이 있으면 밑줄을 치는 대신 포스트잇플래그를 가늘게 잘라 그 부분에 붙이곤 한다. 어떤 책은 그런 쪽지가 백여 개 이상 붙은 것도 있고,(대체로 전공과 관련된 책이다.) 또 어떤 책은 붙일 부분이 너무 많아 아예 하나도 붙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내게는 주로 <논어>나 <맹자>, <장자>나 <노자> 등의 책들이며, 그밖에는 소로의 <월든>이나 신영복 교수의 <강의> 등이 그에 속한다.) 아무튼, 나와 별로 관계가 없는 ‘돈 버는 방법’에 관한 이 책도 다 읽고 보니 쪽지가 30개는 족히 넘는다. 이제 하나씩 떼어 내면서 정말 필요한 내용은 따로 기록을 해 놓을 차례다. 그 중에 몇 개만 옮긴다.     

-막노동을 하여도 최선을 다해 제대로 하라.     

-내가 예수와 부처까지 인용하는 이유는 어설픈 종교적 사고로 돈 자체를 터부시하지는 말라는 뜻이다.     

-깨진 항아리에 물 붓기는 절대 하지 말라. 그 구멍을 몸으로 막아야 하는 두꺼비가 되기 싫다면 말이다.     

-전쟁터에서 전쟁의 법칙을 무시하고 휴머니즘을 찾으면 당신이 죽는다.     

-진짜 재테크의 1단계는 남들에게 돈을 주고 일을 시키지 말고 당신이 직접 몸으로 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협상은 실제로는 우리가 이기고 상대방은 자기가 이긴 것으로 믿게끔 착각을 안겨주는 협상이다.     

-천재 물리학자 파인만은 “아무리 어려운 내용이라도 쉽게 설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아는 것”이라고 했다. 당신이 이해한다고 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쉽게 설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아는 것이며, 그 수준이 되어야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수준이 된 것이다.     


이런 책은 사실 나처럼 ‘돈을 버는 직업’을 갖지 않은 사람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지만, 세상 살아가는 이치는 돈을 좇는 사람이나 가치를 좇는 사람이나 공부를 좇는 사람이나 다 비슷한 부분이 있다. 그래서 그의 글에는 가끔 삶의 정곡을 정확히 찌르는 지점들이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끝까지 읽어보기로 했다.     

사실 내가 책을 다 읽고 든 생각은 이것이다. “세이노는 돈에 환장한 사람이다.” 어쩌면 그는 지독한 ‘관종’인지도 모른다. 육두문자를 마구 내뱉는가 하면 때로는 매우 고상한 말도 곧잘 구사한다. 그의 글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도 많고, 논리적이지 않거나 여성을 비하하는 내용도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모두 돈과 관련된 이야기다. 하지만 그는 돈에 관한 한 지극히 솔직하다. 극단적 실용주의자라고 할까? 또는 자수성가를 한 자의 교만함이 철철 넘쳐 흐른다고 할까?      


그는 ‘뭔가 보이려고 안달하는 사람들’을 비웃지만, 결국은 자신을 비웃는 꼴을 면하지는 못한다. (일부) 빈자들이 부자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듯이, 그는 빈자(혹은 약자)에 대한 편견이 심하다. “네가 죽도록 노력을 안 해서 가난한 것이다. 나는 죽도록  노력해서 부자가 된 것이다.” 이것이 그의 결론이다. 그가 인용한 수많은 책 가운데 마이클샌델의 책은 한 번도 인용하지 않았다. 읽지 않았거나 깡그리 무시해서 그럴 것이다. (놀랍게도 그가 추천한 책 가운데는 내가 읽다가 중간에 쓰레기통에 처넣은 책도 끼어 있었다. )    


나는 그를 비난하려고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책에는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고, ‘생각할 거리’를 주는 말들도 있다. 하여, ‘심지어’ 나는 이 책을 한 권 사서 돈 버는 일에 진심인 조카뻘 되는 녀석에게 선물을 하기까지 했다. 누군가에게는 이런 책도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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