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12층 창틀에 채송화 화분 두 개가 매달려 있다. 꽤 오래전에 씨앗을 뿌린 것인데, 그 뒤로는 굳이 씨앗을 다시 뿌리지 않아도 수년째 절로 나서 절로 꽃을 피운다. 채송화가 피면 나는 늘 꿀벌을 기다린다. 해마다 꿀벌들이 찾아와 꽃 사이를 나는 모습은 더없는 기쁨과 보람이다. 온통 콘크리트뿐인 이 삭막한 공간에서, 그것도 까마득한 고층에서 겁도 없이 피어난 채송화와, 어찌 알고 찾아온 꿀벌이라니. 그들은 여름 한 철 큰 위로와 기쁨이 되었다.
그런데 올해는 꽃이 만발했는데도 꿀벌이 찾아오지 않았다. 요즈음 기후위기로 꿀벌이 떼죽음을 당하고, 그 개체 수가 현저히 줄어서 이제 인간의 먹거리도 위기가 닥친다는 경고를 듣고 있는 터인지라 걱정이 되었다. 그러던 차에 드디어 기다리던 꿀벌이 나타났다. 하필 꽃도 만발하지 않고 꿀도 적은 장마철에 처음 나타난 것이다. 반가웠다! 한 마리밖에 오지 않는 것이 또 걱정이 되긴 했으나, 그래도 날마다 찾아오는 온리비(Only-Bee: 내가 지은 그 꿀벌의 이름이다)가 꽃 사이를 드나드는 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보곤 했다.
채송화는 어둡거나 비가 오는 날에는 피지 않는다. 날이 맑고 밝아야 활짝 핀다. 올해는 장마가 유난히 지리하다. 꽃이 피는 날보다 안 피는 날이 더 많으며, 피어 있을 때보다 닫혀 있을 때가 더 많다. 그런데도 이른 아침부터 온리비는 찾아온다. 이 장마철에 마땅히 꿀을 구할 꽃이 있을 리 없다. 그러니 그나마 몇 송이 핀 채송화를 기억하고 이 먼 곳까지 찾아오는 것이다. (나는 몇 번이나 꿀 사냥을 마치고 돌아가는 온리비의 꽁무니를 눈길로 좇았지만 그는 늘 뒤도 안 돌아보고 포로롱 날아가 버렸으므로, 그가 어디쯤 사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아름다운 것은 언제나 멀고 하염없으므로, 나는 온리비가 저 먼 곳 어딘가에 살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어쩌면 밤이나 새벽부터 내렸을 것이다. 채송화도 피지 않았다. 그런데 온리비가 찾아왔다. 한눈에 보아도 몸이 홀쭉해 보이고 배가 고파 보인다. 아내는 내 말에 빙글빙글 웃으며 한마디 했다. “하다 하다 꿀벌 몸매 관찰을 다 하네.” 온리비는 아직 열리지 않은 꽃봉오리 사이를 필사적으로 날아다녔고, 채송화는 채송화대로 어떻게든 꽃잎을 열려고 애를 쓰는 듯 보였다. 빗방울이 떨어지는데, 놀랍게도 채송화 몇 송이가 벌어졌다. 마치 줄탁동시(啐啄同時)의 현장을 목격하는 듯 나는 그 광경을 경이롭게 바라보았다. 나는 꽃이 벌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벌이 꽃을 피우게 한다고 믿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