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이 벗겨진 자리

무대 밑, 드러난 진짜 민낯

by 렌토

이 글은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하지만, 특정인을 짐작할 수 없도록 일부 설정은 각색되었습니다.




진실은 반드시 드러난다.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팬에게 그의 소식을 묻자, 믿기 힘든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누군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홍보 영상 편집을 했다.

누군가는 개인 사비를 들여 그의 활동을 지원했다.

또 누군가는 아무 대가도 받지 않고 그의 음악작업에 참여했다.

하지만 그렇게 헌신한 팬들의 결말이 한결같이 비참했다는 이야기였다. 쓸모가 다하자 연락이 끊기고 차단당했으며, 감사인사 대신 ‘문제 인물’이라는 낙인만 찍혔다고 했다.


처음에는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랜 시간 의지했던 존재의 진짜 민낯은 실망과 분노를 넘어 모멸감까지 느끼게 했다.

내 10년은 도대체 뭐였을까.

나는 대체 누굴 사랑했던 걸까.



이어진 이야기는 더 기가 막혔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실수에도 무심한 채, 책임을 타인에게 떠넘겼다고 한다. 매번 남 탓을 하며 함께 일하는 스태프, 소속사, 심지어 팬들까지 뒷담화의 주제로 삼았다고 했다. 나를 포함한 오랜 팬들까지 험담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어쩌면 나도 그에게 이용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만 의무적으로 웃어주면, 다음 공연에도 어김없이 나타나곤 했으니까. 나보다 더 열정적인 팬이 나타나자, 나 역시도 뒤로 밀려났던 걸지도 모른다.

그는 그렇게 함부로 대해도 내가 떠나지 못할 거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팬에게도, 가수에게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

그는 특정 팬에게만 친근하게 대하고, 나머지에게는 무관심으로 일관하며 팬들에게 상처를 줬다. 그렇게 내가 상처를 받은 적도 있었다.

무대 위에서 팬들을 위하는 척하는 가식적인 모습은,

무대 밑의 무례한 태도와 극명한 간극을 만들었다.


생각해 보니, 무대 위 언행에서도 그런 오만한 태도가 드러났던 것 같다. 최소 100번이 넘는 공연을 보면서도 나는 그가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여러분이 있기에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을 위해 노래하겠습니다.’

자신이 그 자리에 있는 건 오직 스스로가 잘나서라고 믿고, 관객이 아닌 본인을 위해서 본인 마음대로만 노래하는 것처럼 보였다.


과거의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갈등을 회피하고,

문제를 직면하지 않는 사람.

무심히 남의 뒤에 숨어,

자신을 향한 진심을 짓밟는 사람.


1년 전 내가 느꼈던 그대로였다. 나는 어쩌면 진실을 모를 때부터, 그 사람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자 어리석은 선택에 대한 자괴감보다, 나의 직감이 옳았다는 안도감이 더 크게 들었다.


무대 위 자신을 빛나게 만들어 주는

무대 아래 사람들의 헌신을 당연하게 여긴 사람.

그런 사람에게 진심이 존재할 리가 없었다.

나는 애초에 있지도 않은 진심을 갈구했던 것이다.

내가 사랑했던 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아닌,

그가 오랜 시간 교묘하게 만들어낸 허상이었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실체 없는 허울이 모두 걷히고 나니, 무너지는 그 사람의 모습이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남아있던 팬들마저 다 떠났고, 공허한 무대 위 그 사람만 남았다.


갈수록 줄어드는 관객,

작아지는 무대의 크기.


진심을 외면한 자가 어떤 결말을 맞는지,

나는 끝까지 지켜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