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한 건 결국 나 자신이었다
이 글은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하지만, 특정인을 짐작할 수 없도록 일부 설정은 각색되었습니다.
나는 마침내 객석에서 일어섰다.
빛이 꺼진 그의 무대 아래에는 더 이상 내가 앉아 있을 이유가 없었기에.
감정을 정리하는 시간 내내 지긋지긋한 미련과 죄책감이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그의 민낯이 모두 드러난 후에야 비로소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았다.
그에게 진심은 애초부터 설계되지 않은 기능이었다.
세상과 타인을 향하는 마음 대신, 오직 자기 자신만을 비추도록 프로그램된 존재였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머릿속을 짓누르던 혼란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팬에게 받은 선물을 시큰둥하게 내팽개치고, 자신의 욕망에 취해 팬의 피드백을 무시하던 모습까지. 그동안 의문을 가졌던 행동들이 그의 오만한 특권 의식에서 비롯된 것임을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쓰라린 진실이지만, 모든 걸 알고 나니 오히려 시원했다.
나는 복잡하게 얽힌 감정의 끈을 모두 끊어내고, 마침내 그 사람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이제야 모든 게 선명하게 눈에 보였다.
화려하게 포장된 공연은 실은 아무것도 없는 껍데기일 뿐이었다. 발전을 위한 고민도, 객석에 대한 고마움도 전혀 없는 곧 바스러질 허울.
텅 빈 눈빛으로 억지웃음을 짓고, 노력은 없으면서 예술가인 척 고통을 과장하고, 반응 없는 침묵 속에서 형식적으로 곡을 발매하는 모습까지.
행복한 척 애쓰는 그의 모습은 처량하고 안쓰럽기만 했다.
관객들의 무관심과 침묵 속에서도 여전히 자아도취에 빠져 반성조차 없는 그의 모습을 보았을 때, 나는 그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업보에 갇혔음을 알았다.
과거라면 그의 모든 불행이 내 고통이 되었겠지만, 이제는 달랐다.
화려했던 무대 위에서 스스로 진심을 버린 대가.
그 처참한 끝을 목도하며 씁쓸함이 아닌 통쾌함을 느꼈다. 더 이상 그에게 어떤 동정심도 남아있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그의 모습을 마음껏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사실 나는 끝까지 그를 놓지 못했었다.
이대로 포기하면 지난 10년의 시간이 무의미해질까 봐 불안했다. 패배를 인정하고 떠나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최선을 다했다. 그를 이해해 보려 애썼고, 혹시라도 변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놓지 않았다. 하지만 변화의 의지가 없는 그의 모습 앞에서, 더 이상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그러니 탈덕은 패배가 아니다.
마지막까지 나의 진심을 다한 끝에, 어떤 것에도 휘둘리지 않고 내 손으로 마침표를 찍고 스스로 되찾은 완전한 해방이었다.
사랑도, 미련도, 상처도 아니었다.
10년 내내 지독하게 앓았던 열병 끝에 남은 것은
'나 자신'이었다.
내가 선택했고, 나를 선택했다.
그것이 내가 얻은 전부이자, 내가 할 수 있었던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다.
모든 걸 뒤로하고 달려갔던 발걸음, 손에서 놓을 수 없던 카메라, 쏟아부었던 마음까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줄 알았다면 그렇게까지 애쓰지는 않는 거였는데.
하지만 그 후회마저도 결국은 내 몫이다.
그 열정 속에서 나는 살아 있었고, 버텨냈다.
한 사람과의 관계를 맺고 끊는 과정을 통해 내 삶과 마음은 더 단단해졌다. 헛된 낭비가 아닌, 나를 위한 값비싼 수업료였던 셈이다.
이제는 그를 생각하며 마음 졸일 일도 없다.
미련에 허우적거리며 자신을 자책하는 일도 더 이상 없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으며, 나만의 공간을 정돈한다.
상처가 아물고 흉터는 남았지만, 그 역시 내 일부임을 받아들이고 일상을 가꾸어 나간다.
두려움을 이기고 무대 아래로 발을 내디뎠다.
그곳에는 어둠이 아닌 나만을 위한 밝은 빛이 존재하고 있었다.
무대 위 한 사람을 바라보던 10년은 분명 내 전부였다. 하지만 막이 내린 자리에는 그 어떤 진심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이제 그 무대를 떠나, 오직 나 자신에게 진심을 다하는 삶의 새로운 막을 올린다.
더 이상 누군가의 조명을 기다리지 않고, 내 안의 작은 불빛을 직접 켠다. 누군가의 객석이 아닌, 나만의 무대를 향해 걸어간다.
그리고, 아직 내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