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비가 억수로 내리더니 오늘은 날이 개였다. 마음도 개이며 엄마 아침을 차려드렸다. 채소와 과일을 갈아 만든 스무디에 삶은 달걀, 고구마, 방울토마토 데친 것. 잘 드셔서 기분이 좋다. 예전엔 엄마가 이렇게 날 떠먹여 주었겠지. 엄마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과거 이맘때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30대 후반의 젊은 시절 엄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시간은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여름날 아침, 엄마와 아빠가 크게 싸운 적이 있다. 오래전 사기를 치고 나타난 어느 지인의 방문이 발단이었다. 또 받아준 엄마가 정이 많은 게 화근일까? 아빠는 밤샘일을 하고 아침에 집에 왔는데, 그 지인을 보고 화가 났었던 것 같다. 그때 엄마의 얼굴은 검푸른 잿빛으로 물들었고, 동네 사람들이 와서 말릴 정도였다. 이혼 이야기가 나왔다. 아빠는 엄마가 집을 나갈 거라 여겼는지 회사 연수에 참가하러 다시 출근하며 내게 만 오천 원을 주며 동생이랑 잘 있으라고 했다. 나는 그날 학교에 갔지만, 돌아오면 엄마가 집에 없을 것만 같았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왔는데, 엄마가 있었다! 어둡던 마음에 촛불이 환하게 켜졌던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그 후로도 몇 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엄마는 이혼을 하지 않고 우리 곁을 지켜주었다. 자녀에 애착심이 컸던 엄마, 우리를 떠나지 않고 지켜주셔서 고마워요.
엄마는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다. 어릴 적부터 음악에 재능이 있어 노래를 곧잘 불렀다. 엄마의 10대 시절 라디오에서 나오는 가수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잘 따라 불렀다. 다른 노래도 가사를 받아 적어가며 연습을 했다. 어느 날은 친구 따라 음반 제작하는 회사에 갔다가 오디션 비슷하게 노래를 불렀는데 잘 불렀다며 녹음 제의를 받았다. 엄마는 집안 반대로 할 수 없었다.
요즘 *튜브 방송에서 나오는 흘러간 옛 노래가 집안에 흐른다. 엄마는 이미자, 패티김 노래를 거의 따라 부른다. 화면을 보지 않고 들으면서.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가사를 잊어버리지 않고 부르는 게 신기하다. 혀 끝에서 말이 날아가 조용하다가 노래가 나오면 따라 부른다. 엄마 목소리를 들려주어 고마워요.
엄마는 어릴 적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다. 피아노 학원에는 가정 형편상 갈 수 없었다. 엄마는 자신이 못 배운 게 한이 되었는지 빠듯한 형편이었지만, 딸들을 피아노 학원에 보냈다. 난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학원에 다녔는데, 피아노 치기를 좋아해 2년 정도 다녔을 무렵부터 엄마에게 피아노를 사달라고 졸랐다. 어느 가을날 학교에서 돌아오자 꿈에 그리던 피아노가 집에 있었다. 지금껏 가장 기뻤을 때의 한 장면이다.
피아노는 아름다운 곡으로 마음을 정화할 수 있게 해 준다. 피아노는 기쁠 때나 마음이 가라앉을 때나 함께하는 친구가 되었다. 피아노를 가르쳐 주셔서 고마워요. 엄마
요즘엔 공동 주택에서 피아노를 칠 수 없어 디지털 피아노로 헤드셋을 낀 채 치고 있다. 예전에 피아노로 가요를 치면 엄마가 옆에서 같이 노래를 부르곤 했는데 이젠 추억 속의 한 장면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