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이젠
요리를 잘했던 엄마는 부엌에서 멀어졌다. 운동 기능이 떨어지며 손으로 하는 일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대신 내가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난 직장 생활이 바빠 요리나 집안일은 잘하지 못했다. 인터넷에서 요리 레시피를 찾아가며 반찬을 만들었다. 나물 무침을 하더라도 씻고, 데치고, 무치는 과정이 있고 소금 간을 적당히 맞추어야 한다. 만들고 보면 별 것 아닌데도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요리는 노동이었다. 오래 서 있느라 다리도 아프고 시간이 정상이 들어간.
엄마가 진단받고 1년 4개월 정도 지났을 때다. 엄마의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엄마의 지인 김** 아주머니 이름이 뜬다.
"안 받으련다."
"왜요? 한번 받아보세요." 수신을 눌렀다.
"여보세요?"
전화 속 아주머니 목소리가 들린다.
"형님 잘 지내시나 오랜만에 전화했어요."
"그랬어?... 끊어."
"형님 바빠요? 밥 해요?"
"응."
"그래요."
대화 없이 전화가 끊겼다. 아주머니는 말 많던 엄마가 평소와 다르다고 느꼈을 것 같다.
"누군지 기억이 잘 나지 않네."
내가 조금 이야기를 하니 그제야 알 것 같다고 한다.
'기억이 희미해진 걸까?'
파킨슨 증후군을 앓다 보면 인지 기능이 떨어지는 증상이 동반해서 나타난다. 내 마음에 자주 빗방울이 떨어지는 가장 큰 이유다.
그날, 동생 생일이라 미역국과 잡채를 만들었고 케이크도 사 왔다. 촛불을 끄고 소원을 얘기해 보라고 하니,
"엄마가 건강해져서 공원도 가고, 우리 가족 행복해지는 거."
예전에는 당연하다 여겼던 것들이 소원이 되어 있었다.
그때는 코로나 19로 집 밖에 잘 나가지 못할 때여서 거의 집안에서 생활했다. 엄마가 집안에서 넘어져 왼쪽 무릎에 깁스를 했다. 베란다 타일 바닥에 무릎을 찧으며 넘어졌는데 금이 간 것이다. 잘 넘어지는 증상이 생겨 베란다와 화장실 바닥에 충격 흡수용 매트를 깔았다.
부엌일을 끝내고 나니 옆에 앉으라고 한다.
"왜?"
"이쁘니까."
내 얼굴을 유심히 본다. 잊지 않고 머릿속에 담아두려는 듯이.
삼시 세끼 밥을 차리는 것 말고, 엄마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내가 놓치고 있는 게 있을까?'
그즈음, 이런 시를 썼다.
이젠
밥을 차려 주고
어릴 땐 양치, 목욕도 시켜주고
항상 곁을 지켜주었던
엄마
이젠
내 차례예요
점점 할 수 있는 게 줄어드는
엄마
걱정 말아요,
이젠
내가 엄마의 엄마가 되어
지켜드릴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