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 빨간 단선
한 달에 한 번, 새벽에 받는 낙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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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하얀 사각형 안을 지루한 속도로 번져 올라가는 소변을 변기 위에 앉아 샛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잠이 덜 깨서일까, 너무 간절히 원해서일까. 언뜻 소변이 번져 지나간 자리에 희미한 선이 생긴 것도 같아 안경을 고쳐 쓰고 테스트기를 집어 올려 확인해보지만 이번 달에도 한 줄이다. 딱 한 줄.
"이번 달도 너는 실패했어"
라고 그 빨간 한 줄이 단호하게 나를 향해 말하는 것 같아. 너는 실패자야.
세상에, 그 증상들은 다 뭐였을까?
분명히 아랫배에 뻐근하고 묵직한 통증이 있었다. 앉거나 눕는 자세에 따라 쿡쿡 쑤시기도 했다.
가슴도 다소 부풀어 오른 듯 피부에 긴장이 살짝 느껴지고, 무엇보다 몸이 후끈 달아올라 연신 에어컨이나 선풍기 곁에 앉아 손부채질을 했다. 오랫동안 써온 치약 맛이 새삼스럽게 다르게 느껴졌다. 임신 준비 카페에서 한 번씩 읽어본 증상들이었다. 그래 이번 달에는 뭔가 느낌이 남다르고 예감이 좋은 것 같아!
이번에는 생리 예정일까지 기다려볼까 했다. 하지만 매달 그 사나흘을 참지 못해 나는 '얼리'(early)가 붙는 대신 좀 더 비싼 임신테스트기를 사서 새벽마다 테스트를 했다. 아침 첫 소변이 가장 정확하다는 말에, 새벽 3-4시쯤 화장실을 가는 것이 습관인 나는 잠결에 허둥대지 않도록 테스트 전날 테스트기 포장을 미리 벗겨 변기 위에 올려두고 잤다. 내일은 새벽 4시 기쁜 목소리로 남편을 깨울 수 있을까? 이런 단꿈을 꾸면서.
한 줄을 처음 마주한 지난해 11월만 해도 여유가 있었다.
그 이후로도 한 서너 달까지는 여유가 있었던 거 같다. 하지만 그 여유는 금세 바닥이 나고 말았다. 어떤 달의 새벽에는 "무슨 기대를 한 거야? 이번 달도 한 줄이야. 실패"라고, 그 한 줄이 내 얼굴에 대고 쏘아붙이는 것 같았다. 화가 나서 쓰레기통에 테스트기를 처박아두고 동이 틀 때까지 거실에 나와 숨죽여 울다가 쓰레기통에서 테스트기를 다시 꺼내어 밝은 빛에서 한 번 더 확인했다. 실은 왼쪽에 정말 엷게 줄이 생겼는데 그 어두운 새벽에 혹시나 내가 못 본 건 아닐까 싶어서 말이다.
이번 달은 뭐가 잘못됐을까 되짚어보는 노릇도 다달이 반복되는 의식이 되고 말았다.
임신은 하고 싶다면서 끊지 못한 커피가 문제였을까. 그래도 두 잔 먹고 싶은걸 한 잔으로 줄여보고 디카페인으로 마셨는데. 아니면 그날 필라테스를 할 때 배에 너무 힘이 들어가는 동작을 반복한 걸까. 혹시 내가 착상 기간에 일 스트레스가 너무 극심했던 건 아닐까. 그날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내뱉은 욕지거리가.. 그런 것도 하나 마인드 컨트롤하지 못하면서 무슨 임신을..
생각을 되짚어 올라가다 보면 나의 사고는 과학적이고 합리적 영역에서 원인을 찾는 일에서 한참 벗어나 어느덧 자책감에 얼룩진 채 우울의 절벽 앞에 당도해 있기 일수였다.
'날 그냥 저 우울의 절벽에서 뛰어내리게 내버려 둬. 안녕'
열 달, 그러니까 열 번.
이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반복하고 나니 그렇지 않아도 평안과 거리가 먼 내 마음은 완전히 녹초가 되고 말았다. 그냥 지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꼬일 대로 꼬이고 말았다. 친구들이 자신들과 꼭 닮은 아이를 안고 백일잔치 돌잔치하는 사진에 더는 '좋아요'를 누르기가 힘들어졌다. 신랑이 조카들의 아기 때 사진을 보며 아빠 웃음을 지을 때도 자책감이 들었다. 심지어 연예인들의 임신 소식도 내 맘에 비수가 돼 꽂혔다. 마흔 살 넘어 인공수정이나 시험관으로 아이를 낳게 됐다는 그들의 사연은, 사실 현실에서는 쉽게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된 후로 더욱 그렇게 됐다.
'마음을 편히 가져야 좋은 소식이 온다' '이제 당근님한테도 예쁜 아기가 올 때가 됐는데요' '그냥 아이 없는 지금을 즐기세요, 저는 그 시절이 그리워요' 저마다 각자의 위치에서 해주는 이런 위로들이 내 마음의 생채기를 손톱으로 쭈욱 할퀴며 들어왔다. 오히려 내게 위로가 됐던 건 동네 산부인과 의사의 무심한 한마디였다.
"만약 당무 씨가 34살이라면 인공수정이든 시험관이든 서두르라고 하고 싶은데요, 그 나이는 지나셨으니까"
이미 늦었다는 뜻이었다. 어차피 내 나이는 가임기 골든타임의 최정점을 넘어갔으니 너무 조급해하지 말라는, 다소 재수 없지만 매우 현실적이었다는 측면에서 묘한 위로가 되었다.
임신이야말로 노력으로 결실을 맺을 수 없는, 인생에서 몇 안 되는 불공정한 영역이란 생각도 들었다.
동네 산부인과를 전전하던 나는 조급함을 이기지 못하고 이름 꽤나 알려진 난임 전문병원으로 전원 했다.
나이, 그놈의 나이. 한 살 한 살 먹은 나이를 뱉어낼 수도 없고 노력으로 줄일 수도 없는 건데 난임 병원에서 만 35세 이상인 나는 철저히 하자 있는 사람 취급을 받았다.
의사는 "한 번 보실래요?" 하며 컴퓨터 모니터를 우리 부부 쪽으로 돌려주었다. 그 화면에는 한 그래프가 있었는데 가로축은 나이요 세로축은 임신 성공률이었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래프가 만 34세를 기점으로 모가지를 떨구며 비실거리고 있는 게 보였다. "만 40세가 되면 임신 성공률이 10%대로 떨어집니다. 근데 그 성공률이라는 것도 자연임신이 아니라 인공수정, 시험관 다 합한 거예요"
나보다 먼저 결혼해 몇 해 전 인공시술로 예쁜 딸을 낳은 내 친구는 한번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지금껏 살면서 열심히 하면 결과가 어느 정도는 따라줬잖아. 공부도, 취업도 그랬잖아. 근데 임신은 아니더라고,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너무 서럽고 힘들었다고..
맞다. 서럽다. 달마다 새벽에 마주한 빨간 한 줄도, 서른 중반에 '늙은 사람' 취급을 받으며 병원에서 이런저런 하자를 지적받을 때도 난 정말 서러웠다. 직장에서 어떤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어도 깊은 바다에 내려진 닻처럼 '임신'이란 문제가 슬그머니 발목을 잡았다. 도전장을 내밀었다가 임신이 되면 어떡해.. 그래 임신이 먼저지, 하면서 난 지금도 계속 이 자리에 서 있다.
임신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포기할까?
근데 포기는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