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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글 쓰는 당신, 인터넷에 등기 치셔야죠

굳이 홈페이지까지 만들어야 하나요?

by 오지의

대체 왜요? 어째서 콘텐츠 생산자에게 개인의 웹사이트가 필요할까요?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은 이미 브런치를 통해서 활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잘하고 계십니다. 브런치는 글쓰기에 특화된 플랫폼이고 그에 따른 장점이 있습니다. 혹은 인스타그램, 유튜브 같은 대중적인 플랫폼을 활용할 수도 있겠지요. 그것도 역시 좋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업체나 창작자가 취하는 방식이니까요. 저는 거기에 더해서, 콘텐츠를 만드는 개인이라면 웹사이트라는 형식을 빌린 '인터넷 명함'을 하나쯤 파두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직업 세계에서 만나는 사람이 서로 명함 하나씩 주고받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합니다. 사실 명함이 뭐 대단한 것은 아니에요. 서로 간의 연락처 정도야 스마트폰으로 주고받으면 간편합니다. 여러 사람의 정보를 저장하고 검색하는 능력도 디지털 매체가 월등하고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명함은 그냥 종이조가리가 아닙니다. 규격에 적힌 소속과 직함, 연락처라는 정형화된 형식 그 자체입니다. 이것이 갖는 고전적 가치를 깡그리 무시할 수도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여전히 비즈니스 세계의 사람들은 21세기에도 굳이 작은 종이 조각을 주고받습니다.


개인 홈페이지는 이런 역할을 합니다. 안 만들어도 무방해요. 여전히 좋은 콘텐츠는 플랫폼과 SNS를 타고 널리 널리 퍼질 테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대방에게 빳빳한 명함 한 장을 정중하게 건네며 자신을 소개하는 행위가 갖는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거의 무조건 홈페이지를 만드는 대표적인 분야가 의료입니다. 병원이야말로 오프라인에 발이 꽁꽁 묶인, 온라인으로 수익을 직접 내는 것이 불가능한 사업 모델인데도 그래요. 인터넷 세계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마케팅뿐인데, 그마저도 네이버 블로그나 유튜브, 인스타그램 같은 대형 매체를 경유해야 실질적인 효과가 있어요. 오히려 희한한 점은 작은 동네 의원조차도 홈페이지를 만든다는 것이지요. 유지 비용은 들어가고, 마케팅 효과는 미미할텐데도 굳이 그렇게 합니다. 어째서일까요? 환자들은 진료 시간, 병원 위치, 담당 의사에 대한 정보를 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얻기를 기대합니다. 그래서 동네 의원은 다른 소규모 자영업에 비해 웹사이트를 개설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어요. 의료 생태계는 높은 수준의 신뢰를 기반으로 하기에, 이런 문화가 생긴 것이겠지요. 뒤집어 말하자면, 누군가에게 공식 웹사이트가 있다는 사실이 만들어내는 모종의 공신력이 있습니다.


홈페이지에는 다른 장점도 많습니다. 사실 종이 명함에는 들어갈 수 있는 정보량이 너무 적어요. 반면 웹사이트의 자유도는 무한입니다. 물론 품을 들여야 하긴 하지만(후술하겠지만 우리는 품을 아끼려고 꼼수를 쓸 것입니다), 원하는 방식대로 구현할 수 있습니다. 프로필 페이지도, 업로드할 콘텐츠도 마음대로 하시면 됩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을 먼저 드러내는 것도 가능하고, 글이나 그림 영상 어떤 형식에도 구애받지 않아요.

브런치의 프로필 페이지. 정해진 형식대로 기술합니다.

이를테면 브런치의 프로필 페이지 양식을 볼까요. 간단한 소개 멘트, 키워드, 책과 이력 및 링크를 걸 수 있어요. 글 쓰고 책을 내는 사람이라는 가정 하에, 사실 이 정도면 충분히 괜찮습니다. 하지만 제 성에는 차지 않아요. 저에게는 딱 한 권뿐인 저서가 눈물 나게(ㅠ) 소중하기에, 방문객이 이왕이면 제 책에 가장 먼저 주목해 주길 바랍니다! 그래서 홈페이지에서는 출간작을 맨 위로 올리고 언론사평과 구매 링크를 걸어두었습니다. 브런치에서는 시도할 수 없는 일이지요.


포맷에 제한 없이 개인이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은, 정해진 형식의 콘텐츠만 업로드할 수 있는 SNS와 뚜렷이 구별되는 특장점입니다. 동영상만 올리나요? 그러면 유튜브만 해도 됩니다. 사진만 올리나요? 인스타그램으로 충분할지도 몰라요. 짧은 단문만 쓴다면 스레드나 X(구 트위터)가 잘 맞겠지요. 하지만 두 가지 이상을 한다면요? 상품의 구매처나, 강연 및 의뢰는 어떤 경로로 받을 것인가요? 무엇을 강조하고, 어느 것부터 제시할 것인가요? 당신에게서 유래한 모든 콘텐츠의 총합을 한눈에 제시하는 허브로 작동할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웹사이트입니다. 물론 홈페이지를 만드는 일이 번거롭다 보니 이를 대신할 간단한 링크 페이지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요. 하지만 웹사이트는 그저 링크의 모음 그 이상입니다.


캡처.PNG 웹사이트의 랜딩 페이지. 저는 책을 강조했습니다.


그래도 아직 의문이 남을 것입니다.

내가 썩 대단한 작가도 아닌데 굳이 홈페이지까지 만들어야 할까?


틀렸어요! 한강 작가나 김영하 작가는 홈페이지가 없어도 돼요. (아, 물론 그분들은 갖고 계시지요..) 그런 초대형 베스트셀러 전업 작가는 말 그대로 수식이 필요 없잖아요. 본인이 나서서 온몸 비틀기 홍보를 안 해도 기회가 쏟아져요.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구구절절한 설명이 필요한 인물들입니다. 그러니까 소개에 공을 들이는 게 당연하지요. 이를테면 저도 홈페이지를 통해 잡지, 신문 같은 기성 미디어 원고 작업, 서울시 주최 포럼 연자로 섰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무명작가가 강연이나 기고 같은 기회를 하나라도 잡으려면 이렇게 온라인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처음에 홈페이지를 만드는 일을 명함 파는 것과 비슷하다고 비유하면서 시작했습니다. 이 '명함'을 건네받을 잠재적 콘텐츠 소비자들 가운데는 출간, 강연이나 기고를 맡길 편집자와 섭외 담당자들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제가 출판 업계에서 일해 본 바가 없기는 하지만, 상상을 해보자면 이렇습니다. 브런치 글 혹은 책에 흥미를 느껴 저의 홈페이지에 접속하게 된 업계 담당자에게 나름의 인상을 남길 수는 있겠죠. '호오, 이 아줌마 꽤나 진심이네? 한 번 연락해 볼까? '


정리하겠습니다. 대형 플랫폼 좋습니다. 요행히 내 콘텐츠가 알고리즘의 계시를 받아 흥행한다면 더할 나위 없지요. 하지만 그것에도 나름의 한계가 있고 단점도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온갖 기업형 플랫폼이 등장하고 퇴장하며 명운을 달리하는 가운데, 독립적 웹사이트란 네트워크 프로토콜 창시 이래 변하지 않은 근-본으로서 고유성과 자유도가 주는 장점이 뚜렷합니다. 물론 홈페이지가 없어도 충분히 성공적인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습니다. 이미 많은 기회를 누리고 있다면 오히려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지명도가 낮은 개인에게는 스스로를 잘 드러내고 표현하는 일은 더욱 중요합니다. 콘텐츠 제작자가 홈페이지를 만들면, 기회의 창이 더 크게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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