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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과연 브런치가 영원할까?

브런치에 올린 글, 당신의 온전한 소유입니까

by 오지의

앞선 글에서 플랫폼이 알고리즘 최적화 정책에 따라 콘텐츠의 방향성을 조종한다는 문제의식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유튜브 쇼츠로 '떡상'하려면 강렬하고 짤막한 콘텐츠가 필요하겠죠.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을 타려면 유행하는 음악과 키워드로 릴스를 찍어야 할 테구요. 브런치도 이와 유사한 한계가 있다는 점은 마찬가지입니다. 콘텐츠의 방향성을 왜곡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 밖에, 플랫폼 서비스가 공유하는 또 하나의 치명적인 단점은 영속성입니다. 어느 날, '서비스 종료'라는 벼락을 맞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이렇게 큰 회사가 망할 리가...?


뭐, 꼭 망해서 없어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네이버가 망하지는 않았지만, 네이버가 제공하던 간편 홈페이지 서비스인 모두(modoo!)가 최근 종료했습니다. 다음 블로그도 막을 내렸습니다. 영원히 잘 나갈 것 같던 초대형 SNS도 흥망성쇠를 피할 수 없습니다. 좀 오래된 사례이긴 하지만, 싸이월드가 떠오르는군요. 잡음이 많던 종료 과정 속에서 추억 속의 사진과 영상, 글을 복원하기 위해 애가 탔던 사람이 적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내가 쓴 글, 내가 올린 사진인데도 불구하고 백업을 받거나 타 서비스로 이전하는 것이 썩 간단하지만은 않습니다. 서비스를 종료한다는 것은 이미 해당 플랫폼이 쇠퇴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 시점에서 양질의 백업과 이전 절차를 기대하기가 어려운 것이겠지요.


콘텐츠 제작자에게 콘텐츠는 절대적 자산입니다. 지금 제가 쓰고 있는 이 텍스트 자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텍스트를 기반으로 연결된 구독자와 피드백, 조회수, 외부 링크와 관계망, 접속 기록과 유입 경로 정보를 포함한 모든 것이 디지털 자산입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플랫폼을 경유한 콘텐츠를 그 제작자가 온전히 소유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내가 서점에서 단행본을 한 권 샀는데, 갑자기 어느 날 '이 서적의 서비스가 종료되었습니다.'라면 어떨까요? 그래서 책을 더 이상 읽거나 소장할 수 없다면요? 물리적 실체를 기반으로 한 경제에서 이런 상황은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반면에 온라인 플랫폼에 업로드되는 디지털 콘텐츠는 기업의 '서비스 종료'라는 가능성이 존재하는 이상 영속성 면에서 너무나 뚜렷한 한계를 지닙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플랫폼이 서비스를 종료하는 순간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이들은 바로 그 서비스의 가치 창출에 가장 큰 기여를 했던 열혈 유저들입니다.


프로토콜 네트워크 시대에는 모든 사람이 언제나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었고, 영원히 임대료를 내지 않으며, 시장이 허락하는 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업 네트워크가 등장하며 그런 암묵적 약속이 끝났다. 기업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무언가 구축하는 일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 플랫폼 리스크는 이런 새 시대의 위험을 묘사하기 위한 용어다. (p.91)

네트워크를 제어하는 기업은 계정, 순위, 관계 등에 대해 완벽한 제어권을 갖고 있다. 한마디로 기업 네트워크에서 사용자 소유권은 환상에 불과하다. (p.137)

- 크리스 딕슨,《읽고 쓰고 소유하다》


플랫폼이 변덕을 부리는 순간 창작자가 제작한 콘텐츠와 이를 포함하는 총체적 관계망은 크게 휘둘릴 수밖에 없습니다. 일례로 최근 브런치가 구독 시스템을 도입했는데요. 반기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는 솔직히 시큰둥합니다. 제 글이 파급력도 크지 않거니와 구독 시스템에 적당하지 않아서 유료화할 예정이 없습니다. 정책을 바꾼 이상, 브런치의 '픽'은 더욱더 유료 콘텐츠에 집중하겠지요. (물론 그걸 떠나서 지금 이 글마저도 브런치의 단점을 짚어내는 중이니 상위 노출은 불가능합니다만...) 저로서는 좋을 것이 없는 변화입니다.


반면 개인 웹사이트는 완전히 다릅니다. 내 깃발을 꽂은 네트워크 상의 사유지입니다. 콘텐츠 제작자가 인터넷에서 고유한 공간을 점유하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입니다. 외부 시스템의 영향력에 휘둘리지 않고 콘텐츠를 설계하고, 완전한 소유권을 주장하며, 영속적으로 보관하는 능력은 기업이 아닌 개인이 주관하는 영역에서 기인할 수밖에 없습니다.

간단한 예로 백업을 생각해 볼까요. 꼼꼼한 작가분들은 여러분의 소중한 글을 별도의 방식으로 보관하고 계실 것이라 믿습니다. 개인 저장장치나 클라우드를 활용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정리정돈에 약한 저는... 아무렇게나 쓴 쪽글을 일단 브런치 임시 저장으로 아무렇게나 담아 둡니다. 부끄럽게도, 별도의 백업 파일이 없어요. 혹시 모를 제 글의 소실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주기적인 백업이 필요합니다. 브런치에 올린 글 전체를 다운로드 할 수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브런치 출판(POD) 서비스를 이용해 우회적으로라도 원고 다운로드가 가능했다고 하는데요. 이 서비스가 최근 종료했습니다. 보시다시피, 플랫폼 마음대로 서비스 내용을 변경하면 그만입니다. 그러니 일일이 수동으로 복사하여 긁어오는 수밖에요. (추후에 글로 다루겠지만, 저는 파이썬 크롤링으로 백업 및 복사 게시물을 만들었습니다.)


내가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는 콘텐츠를 과연 '나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요? 제가 워드프레스로 제작한 홈페이지를 예로 들어 비교해 보겠습니다. 이런 개인 웹사이트는 아무 때나 전체 내용을 백업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텍스트는 당연하고, 이미지와 레이아웃, 미디어 파일, 서식, 댓글을 포함한 웹사이트 전체를 말합니다. 모든 정보가 데이터베이스로 처리되기 때문에 타 서비스 또는 플랫폼으로 이전도 간단합니다. 콘텐츠를 둘러싼 모든 관계망과 설정값도 온전히 유지 가능합니다. 제가 구매한 웹사이트 도메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호스팅과 도메인의 관리 주체를 마음대로 간편히 교체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돈을 주고 '등기'를 쳤으니까 제 소유물이지요.


여기까지 적고 나니,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이 몹시 비관적으로 느껴지는군요. 나의 창작물을 온전히 통제할 수 없는 플랫폼이 악덕 업주 같아 보입니다. 그렇다면, 기업이 만든 대형 네트워크를 떠나는 것이 옳은 선택일까요? 이제라도 창작의 자유와 꿈을 찾아 훨훨 날아가볼까요?


아니요, 안 됩니다. 플랫폼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다음 글은 브런치의 장점과 활용에 대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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