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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금수저도 힘든 것이 있다면

가장 운 좋은 고위험 산모

by 오지의

솔직히 고백한다. 나는 금수저다.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나는, 그러니까, 출산 금수저다.


임신 초기엔 지속적인 출혈로 마음을 졸였다. 중기에는 자궁경부무력증으로 수술을 받았다. 후기에는 조기진통으로 또 입원했다. 내 둘째 임신은 무난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고위험 임신을 경험하는 바람에 내가 이렇게나 고생했다고 생색 낼 생각은 전혀 없다.


오히려 나야말로 가장 운 좋은 산모였다. 출산에 관련된 모든 변수들이 초록불이었다. 직장에서 병가를 쓸 수 있었고, 미래에는 복직도 얼마든지 열려 있다. 첫째는 건강하고 기질이 무난하며, 가정에서 남편의 지지와 친정의 도움을 받았다. 입원 치료에 드는 비용과 휴직 기간 동안 소득 감소를 감당할 수 있는 경제력이 있었다. 수도권에 살고 있어서 대학 병원이 멀지 않았다. 산부인과 의사로서 내 상태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있었다. 임신과 출산에 관한 한, 나야말로 금수저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그래서 고위험 임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경험이 아주 수월한 편이었다는 것을 잘 안다. 단, 모두가 이렇게 운이 좋을 수는 없다. 현실의 고위험 임신은 경제적 문제, 노동과 돌봄의 문제로 임신부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른다.


병가냐, 휴직이냐, 퇴사냐

자궁경부무력증으로 대학병원에 초진을 본 당일, 즉시 입원하기로 결정이 났다. 설마설마했는데 낭패였다. 수술을 받아야 할 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도 문제였지만, 당장 생활을 꾸려가야 하는 사정도 그 못지않게 난처했다. 이렇게 갑자기 입원해도 너끈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당장 내일 출근은 어쩌지. 우리 애는 누가 봐주지. 보호자가 있어야 하는데, 남편 직장은 또 어쩌나. 우리 부부는 다급하게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내가 일하는 병원 원장님이 내 진료를 메꿔주시기로 했다. 경과를 고려해서 일단 2주 정도 병가를 냈다. 아이는 어린이집 연장 보육을 최대한 활용하고, 등하원을 친정 엄마에게 부탁했다. 사정이 안 될 때는 시댁 식구까지 총동원했다. 남편도 급하게 근무 일정을 조정했다.


휴. 그걸로 일단 고비는 넘겼지만, 마음 한편이 무거웠다. 자궁경부 봉축술 후에 자궁 수축이 오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러면 입원 치료가 길어진다. 자궁경부무력증 때문에 조기진통과 조산의 가능성도 높아지게 되었다. 나처럼 임신 유지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신체적으로 무리할 수는 없기에, 대다수 산모는 수개월간 누워 지낸다. 당장은 병가로 대응했지만, 출산 때까지 일을 계속할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진료를 비우는 것도 한계가 있다. 결국, 여러 상황이 겹쳐 나도 몇 달 후 퇴사하게 된다.


고위험 산모는 장기 입원이 필요한 경우가 빈번하다. 조산 가능성에 대응하고, 집중 모니터링을 하기 위해서이다. 좋으면 통원 진료로 충분하겠지만, 때로는 수개월 동안 병원에 머물러야 한다. 치료에 얼마나 걸릴지 기약도 없다. 물론 출산 휴가 제도가 있지만, 시기와 기간에 제한이 있다. 근무처에서 병가를 보장해 준다면 좋겠지만, 여의치 않은 경우도 많다. 임산부가 질병 치료도 필요하고, 출산도 앞두고 있다? 회사 입장에서는 출산 휴가와 육아 휴직으로 이어질 장기간의 공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현실적으로는 퇴사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퇴사를 했지만 전문성을 살려 재취업이 가능한 나는 운이 좋은 경우다. 여전히 퇴사는 곧 경력 단절이다. 장기 병가가 무급 처리된다면 가계 소득 저하로 이어진다. 자영업자라면 공백은 더욱 치명적이다. 고위험 임신으로 인한 소득 저하와 경력 단절은 고위험 임신을 둘러싼 노동 구조의 모순을 여실히 드러낸다.


내 가정은 누가 돌보나

자궁경부 봉축수술 후 다행히 경과가 양호했다. 필요할 때 휴식할 수 있다면, 가벼운 일상생활부터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술도 벌어진 입구를 실로 묶어둔 것에 불과하다. 오래 걷거나, 쪼그려 앉거나, 무거운 물건을 드는 것처럼 자궁에 하방 압력이 더해지는 일은 할 수 없었다. 대체로 앉아서 하는 병원 업무는 차라리 괜찮았다. 그런데... 애엄마가 돌쟁이 아들 돌보는 일이 바로 그 '하면 안 되는 일'이다. 하원 후 아이를 쫓아 쉴 새 없이 놀이터를 뛰어다니고, 쪼그려 앉아 땀투성이인 애를 씻기고, 때때로 아이를 번쩍 안아 달래줘야 하는 일.


아이고. 낭패구나. 퇴원 직전 교수님이 의미심장하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제 집에 가면, 첫째 때문에 아무래도... 쉬어야 하는데 쉴 수나 있겠어요?" 온갖 치료 방침이 탁상공론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일을 하고, 가사를 하고, 애도 봐야 하는 처지는 병원도 의사도 해결해 줄 수가 없다. 난감할 때에 가족들의 힘이 빛을 발했다. 친정 엄마가 아이를 놀이터에 데려가주었다. 씻기는 일은 되도록 아빠가 맡았다. (안아병은 뾰족한 방법이 없어서 아기에게 이해를 구했다.) 가사 노동도 최대한 덜어냈다. 주 1회 청소를 맡아줄 도우미를 고용했다.


자궁을 묶어준 건 산부인과 교수님이지만,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남편과 친정 덕분...


가까운 곳에 도움을 주는 친정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가사 도우미를 고용할 여력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운이 좋았던 것뿐이고, 그마저 쉽지는 않았다. 모든 산모가 가족의 도움에 기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사와 돌봄을 타인에게 위임할 경제적 여유가 없을 수도 있다. 입원으로 인해 아이와 엄마가 떨어지거나, 생활에 각종 제약이 생겨 발생하는 스트레스 또한 무형의 비용이다.


고위험 임신의 현실적 문제

나는 바로 앞선 글에서 고위험 임신을 버텨내는 것이 이타적이자 주체적인 위업임을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노동과 돌봄의 장벽 앞에서 이런 낭만적 이야기는 무색해진다. 고위험 임신과 함께 직장 생활이 어려워지고, 공들인 경력이 무너지게 된다면? 소득이 줄어드는 것도, 손위 자녀의 육아 공백이 생기는 것도 간단히 해결하기 어려운 노동경제적 위기다. 고위험 임신이 만연한 현시대에는, 이 파고를 버티는 것을 가능하게 해 줄 물질적, 제도적 토대 또한 필요하다.


보건복지부는 19대 고위험 임신질환으로 진단받고 입원치료받은 임산부에게 의료비를 지원한다. 2024년부터는 소득 기준도 폐지되어 모든 고위험 산모가 대상이다. 훌륭한 취지다. 나도 신청하기 위해 서류를 준비하다가 좀 실망했다. 전액본인부담금과 일부 비급여 항목만 해당되기에, 지원금으로 보전할 수 있는 부분은 아주 적었다.


나아지고 있는 부분도 많다. 노산 시대에 발맞추어 제도들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고위험 질환이 있다면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을 전 기간 쓸 수 있다. 미숙아를 출산한다면 출산휴가가 100일로 다소 늘어난다. 난임 휴가도 확대되었다. 이런 기조의 정책이 실제로도 유용하게 쓰이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래도 아쉬운 점은 남는다. 물론 일반적인 출산휴가나 육아휴직도 활용에마저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고위험 산모만의 특수한 상황이 복지 범위 안에 모두 포함되기는 어렵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고위험 임신을 '출산 금수저'씩이나 되어야 겨우겨우 버텨낼 수 있는 개인적 문제로 내버려 두는 것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고위험 임신 시대를 맞아, 모성 보호에 대한 폭넓은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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