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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 난포 Apr 26. 2024

아기랑 함께 오셔도 됩니다 (2)

'그럼에도 육아' 북토크 참여기

부끄럽게도 정지우 작가님이 쓰신 십 수권의 인문학 서적을 읽어본 경험이 없다. (궁색한 핑계를 대자면 과학책 쳐돌이라...) 그런데도 내가 이 작가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었던 것은 작년에 인상 깊게 읽은 육아 칼럼 덕분이다. 아이 양육자들 사이에서 잔잔하게 화제가 된 그 칼럼... 읽어보신 분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 신간 '그럼에도 육아'가 이 칼럼의 확장판인 셈이다. 


https://www.mk.co.kr/news/contributors/10729380


주제가 육아인 데다가 작가님 나름의 철학을 반영해서 신간을 주제로 아이 동반 북토크를 기획해 주신 것 같았다. 참 감사한 일이다. 게다가 진행을 위해 선배 과학 커뮤니케이터인 이독실님이 오신다. (출연작 중 '지대넓얕'이 가장 유명하겠지만, 더 좋아하던 과학 팟캐스트 '과장창'을 진행해 주셨다.) 북토크는 내가 궤도님의 과학 북클럽에 참여하느라 뻔질나게 드나들어 익숙한 '트레바리' 강남점에서 열린다. 주말에 남편은 당직을 서기 때문에 나랑 아기는 어차피 둘이서 어딘가로 놀러 가야 한다. 모든 상황이 이 행사에 너무 가고 싶게 만들었다. 솔직히 나는 정지우 작가님이 아니라 나뭇가지가 앉아있어도 달려갔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아무리 아이와 갈 수 있는 문화 행사에 목이 말라 있어도, 당연히 책은 읽어보고 가는 것이 예의이다. 잽싸게 아기가 낮잠 자는 틈을 탔다. 어디 한 번 보자. '그럼에도 육아'는 정지우 작가의 육아 에세이로...


... 육아 에세이?


예전 같았으면, 에세이라는 장르 자체가 장벽이다. 나는 에세이를 즐겨 읽지 않는다. 수년 전 내 글을 브런치에 올리라는 동료 과학저술가의 조언에 시큰둥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흠... 브런치에 과학소재?
브런치는 시집살이나 퇴사문제 가지고 에세이 쓰는 곳이잖아?
브런치에 과학 글 쓰면, 누가 읽기는 해?

여기에요 여기! 브런치에서 브런치 흉보는 정신 나간 작가가 있습니다... 에세이는 아무래도 개인과 삶, 감상에 집중하는 장르이고 나는 객관적 지식을 선호하는 사람이다. (에세이 비하 아닙니다ㅜ) 아무튼 그런 취향상의 차이로 에세이에는 그간 손이 잘 가지 않았다. 그런데 나의 이 뻣뻣한 고집이 꺾이기 시작한 것이 아기를 임신하고부터다. 


아기를 임신하고, 낳고, 기르면서 나는 아기들과 그들을 키워내는 삶에 쉽게 감정 이입이 되었다. 그 대상이 꼭 나의 아기가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자녀와 함께 살아가는 삶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어떤 공통점이 나를 강하게 사로잡았다. 어린이와 약자에 대한 시선을 담은 만화에, 그날의 모유 수유 분투기를 담아낸 영상에, 워킹맘의 단상을 예민한 감각으로 포착해 낸 에세이에 저절로 눈길이 갔다. 그리고 내가 쓰는 글도 어느 정도 수필의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실제로 출산의 배신』에도 나의 임신/출산/육아 경험담이 조금씩은 녹아 있다. 


'그러게. 나도 진작에 출산, 육아 에세이도 읽을걸.
그 작가 칼럼 참 좋았잖아? 자료 조사 한답시고 그동안 너무 과학책만 편식했네...'


나는 조금의 후회와 함께 첫 페이지를 펼치고 충격을 받았다. 엥? 이게 뭐야, 혹시 내가 쓴 건가? 


처음 아기가 태어났을 때, 삶이 다른 세계로 흘러간 듯했다. 전에 없던 생명이 집 안에 살아 숨 쉬기 시작하고, 그 존재의 울음 하나, 숨결 하나에도 귀를 기울이며, 마치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 듯 아이 주위로 돌아가는 태양계 같은 삶이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육아』- 정지우


참 신기하네. 나도 정확히 동일하게 신생아 돌봄을 행성의 공전과 태양계에 비유한 적이 있다. 이 대목뿐만이 아니었다. 육아 각자도생이 아닌, 아기를 위한 다각적 사회적 돌봄이 필요하다는 부분. 이득이나 보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사랑하기 때문에 돌보게 되는 마음. 마음 편히 세상 곳곳에 아이를 동반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굉장히 많은 부분들이 내가 아기를 낳고 키우며 느낀 것과 공명하고 있었다. 나(이과)는 출발이 생물학/인류학/의학이었고 정지우 작가(문과)는 인문학적 사유였을 텐데 도달하는 지점이 같았다. 이렇게 많은 것이 일치한다는 것은, 우리가 생명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갖게 되는 보편의 감각일 것이다. 


울애기 빠나나 먹으며 북토크 경청(?) 중

나에게 그날 그 자리의 모든 것이 위안이었다. 책과 북토크의 내용뿐만이 아니었다. 정성스레 아이들을 초대하고 직접 풍선을 불어준 작가님이 위안이었다. 주말 오후 각자의 아이들과 오손도손 자리해서 책 이야기를 경청하는 참가자들의 열의가 위안이었다. (아기 부모들이 이렇게 문화에 굶주려 있습니다...) 참여한 아이들을 위해서 섬세하게 공간과 비품을 마련해 준 운영진들이 노력이 위안이었다. 우리 아기랑 선뜻 사진을 찍어주고 후배 과커를 위해 덕담을 얹어준 이독실님도 위안이었다. 사인 받은 소중한 책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여러 모로 산뜻했다. 남편 없이 주말 내내 애 보려면 지치기 마련인데, 이만한 힐링이 없었다. 에세이의 '효용'을 무심코 평가절하했던 나의 오만함이 부끄러웠다. 


나는 이제 과학책도 읽고, 인문학 책도, 수필도 읽을 것이다. 지식을 꾹꾹 눌러 담은 글도 쓰고, 매일의 감상이나 그저 기록을 위한 글도 쓸 것이다. 삶의 정수가 논문이나 교과서에만 있을 수는 없다. 날이 화창하던 한 일요일 오후 북토크를 우리 아기를 초대해 준 고마운 자리이자, 나의 읽기 편식을 끝내준 의미 있는 날로 오랫동안 기억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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