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초대받은 시상식, 아기와 함께 하는 북토크
어린 아기와 함께 갈 수 있는 곳은 정해져 있다. 아기 의자가 있는 식당, 쇼핑몰, 키즈 카페나 놀이터 같은 시설 정도이다. 이런 곳을 빼면 사실 아기를 동반하기는 쉽지 않고, 여차하면 실례가 되기 일쑤다. 당연히 의사 학회에도 아기를 동반할 수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회장님, 이렇게 직접 연락 주셔서 감사하네요. 그런데 어쩌지요... 죄송하지만 저는 이번에 참석할 수가 없어요."
"이번에 작년도 수상자 축사 시간이 마련되어 있어요. 올해 문학상 수상자에게 한 말씀 꼭 좀 부탁드리고 싶어요. 어떻게 안 될까요?"
"제가 이리저리 알아봤는데, 행사가 주말이라 아기를 맡길 곳이 없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저는 가기 어려워요."
학회 중간에 문학 시상식이 있고, 내가 맡아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한다. 거듭된 부탁에 정말 난처했다. 하지만 하필 그날은 아기를 맡길 수가 없으니 별 수 없었다. 애를 두고 갈 수도 없고...
"그럼, 아기랑 같이 오세요!"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저... 선생님??? 저희 아기는 18개월이에요. 점잖은 학회에 어떻게 가요. 시끄럽고, 뛰어다니고, 침을 흘리는 존재라고요... 그래도 끈질긴 설득이 이어졌다.
"우리는 여성 의사 모임이에요. 학회의 많은 회원들이 자녀를 키우면서 살아가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아기가 동반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지요."
"아니, 그래도..."
"아기랑 같이 와주시면 더 많은 분들이 기뻐하고 좋아해 주실 거예요."
나는 결국 주말 저녁 자동차에 애를 싣고 학회 겸 시상식으로 향하게 되었다. 연자 강의가 진행되는 동안 우리 아기는 별도의 공간에서 도시락을 먹을 수 있게끔 배려를 받았다. 쉬는 시간 동안 건물을 자유롭게 돌아다녀도 참석자들이 눈치를 주지 않았다. 시상식이 시작되어 내 축사 순서가 되자 연단에 올라 아기를 안은 채로 마이크를 잡았다. 물론 모든 순간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원래 아기랑 외출을 즐기기는 하지만, 혼자 왔어도 긴장되는 자리에 천방지축 아기까지 챙기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래도 꼭 그 역할을 맡고, 참석하고 싶었다. 나와 아기가 환영받는다는 느낌이 정말 오래간만이었기 때문이다.
쇼핑몰이 아기에게 우호적인 것은 순전히 아기 부모들이 소비를 많이 하기 때문이다. 키즈 카페는 아이가 타겟인 상업 시설일 뿐이다. 어린이집이나 놀이터 같은 특수 목적 공간을 제외하고, 어른들이 살아가는 삶 속으로 내 아기가 진정한 초대를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나는 절대 그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꾸역꾸역 아기 기저귀 가방을 싸고, 수고롭게도 행사장에서 먹일 아기 저녁거리를 따로 챙기고, 길이 많이 막히는 주말 저녁 한 시간 넘게 운전을 해서 그곳에 가야만 하는 이유였다. 일면식도 없는 내 아기가 타인으로부터 환영받은 소중한 자리였다.
그리고 나서 나는 이 일을 한참 동안 잊고 지냈다. 아마도 그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일이고, 내가 전년도 문학상을 탔기 때문에 주어진 일회성 행운일지도 모른다. 막연하게 생각만 했다. '나도 사람을 모으고 누군가를 초대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된다면, 꼭 어른과 아이들을 함께 초대해야지.'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로 정지우 작가님의 북토크를 알게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북토크 [그럼에도 육아]'
https://brunch.co.kr/@jiwoowriter/383
아이와 함께 갈 수 있는 북토크! 나도 책을 내고서 북토크를 꿈꿔보았지만 무명작가에겐 어림없었다. 내가 상상 속에서만 펼쳐보았던 아이 동반 북토크를 실천하고 계신 작가님이 계셨다. 이번에는 사양하거나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나는 당장 뒷좌석에 아기를 태우고 운전대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