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육아' 북토크 참여기
흠... 브런치에 과학소재?
브런치는 시집살이나 퇴사문제 가지고 에세이 쓰는 곳이잖아?
브런치에 과학 글 쓰면, 누가 읽기는 해?
'그러게. 나도 진작에 출산, 육아 에세이도 읽을걸.
그 작가 칼럼 참 좋았잖아? 자료 조사 한답시고 그동안 너무 과학책만 편식했네...'
나는 조금의 후회와 함께 첫 페이지를 펼치고 충격을 받았다. 엥? 이게 뭐야, 혹시 내가 쓴 건가?
처음 아기가 태어났을 때, 삶이 다른 세계로 흘러간 듯했다. 전에 없던 생명이 집 안에 살아 숨 쉬기 시작하고, 그 존재의 울음 하나, 숨결 하나에도 귀를 기울이며, 마치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 듯 아이 주위로 돌아가는 태양계 같은 삶이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육아』- 정지우
참 신기하네. 나도 정확히 동일하게 신생아 돌봄을 행성의 공전과 태양계에 비유한 적이 있다. 이 대목뿐만이 아니었다. 육아 각자도생이 아닌, 아기를 위한 다각적 사회적 돌봄이 필요하다는 부분. 이득이나 보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사랑하기 때문에 돌보게 되는 마음. 마음 편히 세상 곳곳에 아이를 동반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굉장히 많은 부분들이 내가 아기를 낳고 키우며 느낀 것과 공명하고 있었다. 나(이과)는 출발이 생물학/인류학/의학이었고 정지우 작가(문과)는 인문학적 사유였을 텐데 도달하는 지점이 같았다. 이렇게 많은 것이 일치한다는 것은, 우리가 생명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갖게 되는 보편의 감각일 것이다.
나에게 그날 그 자리의 모든 것이 위안이었다. 책과 북토크의 내용뿐만이 아니었다. 정성스레 아이들을 초대하고 직접 풍선을 불어준 작가님이 위안이었다. 주말 오후 각자의 아이들과 오손도손 자리해서 책 이야기를 경청하는 참가자들의 열의가 위안이었다. (아기 부모들이 이렇게 문화에 굶주려 있습니다...) 참여한 아이들을 위해서 섬세하게 공간과 비품을 마련해 준 운영진들이 노력이 위안이었다. 우리 아기랑 선뜻 사진을 찍어주고 후배 과커를 위해 덕담을 얹어준 이독실님도 위안이었다. 사인 받은 소중한 책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여러 모로 산뜻했다. 남편 없이 주말 내내 애 보려면 지치기 마련인데, 이만한 힐링이 없었다. 에세이의 '효용'을 무심코 평가절하했던 나의 오만함이 부끄러웠다.
나는 이제 과학책도 읽고, 인문학 책도, 수필도 읽을 것이다. 지식을 꾹꾹 눌러 담은 글도 쓰고, 매일의 감상이나 그저 기록을 위한 글도 쓸 것이다. 삶의 정수가 논문이나 교과서에만 있을 수는 없다. 날이 화창하던 한 일요일 오후 북토크를 우리 아기를 초대해 준 고마운 자리이자, 나의 읽기 편식을 끝내준 의미 있는 날로 오랫동안 기억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