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영악하다
고양이는 매우 영리하면서도 영악한 동물입니다. 긴 시간 함께하다 보면 집사의 기분, 눈빛과, 말투에서 행동을 읽고, 상황에 따라 집사의 마음을 이용하는 방법도 알고, 눈치껏 행동하는 방법까지도 알고 있습니다. 나는 고양이와 함께 생활하면서 종종 이용 당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정리해 봅니다.
나는 쉬는 날 고양이와 온종일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하루 중 긴 시간을 그루밍을 하면서 몸단장에 신경 쓰는 코코를 바라보면서 긴 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깔끔한 것도 좋지만 위생을 위해서 미용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양이는 미용하려면 마취를 해야 하기에 고민 끝에 직접 미용기구를 사서 야매미용에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열심히 인터넷을 검색해 보고 어떻게 미용을 해야 할 것인가 공부를 하고 직접 미용을 하는 날이 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야매미용을 시작하니 바리깡으로 털을 미는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인터넷으로 보면 쭉~ 밀면 되는데 나의 실전은 생각보다 깔끔하게 잘되지 않아 초반부터 미용에 애를 먹고 있었습니다. 야매미용이 거의 끝나갈 무렵 마지막 부분은 가위로 정리하게 되었는데 고양이는 “아!” 하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약 1cm 정도의 작은 상처를 보고 순간 당황하여 미용을 중단하고 그다음 날 병원에 데려갔습니다. 약간의 피가 흐르고 있었고 하룻밤 동안 상처는 조금 더 벌어져 있었습니다. 원장님과 간호사들은 고양이는 이런 상처가 나면 피부가 밖으로 말리면서 상처 부분이 점점 커진다는 설명과 함께 빨리 꿰매야 한다면서 바로 수술에 들어 갔습니다.
수술은 짧게 잘 끝났지만 더더욱 고민인 점은 2주 동안넥카라를 하고 약을 먹여야 한다는 진단에 다는 또 다시 약을 어떻게 먹여야 하는 고민을 했습니다. 그리고 평소에 하지 않던 넥카라를 한 고양이는 마취에서 깨자마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화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미안함과 무서움에 고양이가 완전히 얌전해질 때까지 이동장에 그대로 있게 두었습니다.
매일 깔끔하게 그루밍을 하면서 몸단장을 열심히 하는 고양이에게 넥카라는 엄청난 스트레스였을 것입니다. 코코는 매일 내게 애처로운 표정으로 “에옹~” 하면서넥카라를 풀어달라고 애원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결국, 3일째 되는 날 애처로운 고양이의 눈빛과 울음에 잠시 넥카르를 풀어주기로 했습니다. 넥카라의 단추를 푸는 순간 고양이는 ‘이때다!’라는 표정으로 후다닥 구석으로 숨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상처 부위를 혀로 핥기 시작했습니다.
‘안돼~~’
나는 결국 달래고 또 달래서 고양이를 구석에서 데려와 넥카르를 다시 씌웠습니다. 고양이는 하기 싫다고 소리를 질렀고 나는 마음은 아프지만, 상처가 덧나는 것보다 잠깐만 스트레스받는 쪽을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고양이는 매일 내게 다가와 열심히 부비부비를 하고 밤마다 내 머리맡에 있거나 배 위에 올라가 꾹꾹이를 하거나 골골송을 부르며 애정표현을 열심히 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집사가 나한테 넘어오겠지…’
고양이는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잠시나마 고양이에게 속았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끊임없는 애교를 부리며 넥카라를 풀어달라는 고양이의 행동에 매일 괴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코코야, 조금만 참자. 이제 일주일 남았어.”
“코코야, 이제 3일 남았어.”
“코코야, 내일 병원 가서 실밥 풀고 넥카라 풀어줄게. 조금만 더 기다려.미안하다”
이렇게 말하면서 나는 매일 속으로 울었습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상처가 아물 때까지 하루하루 고양이를 달래면서 안아주는 것뿐이었다. 이미 한 번 넘어갔는데 두 번째 넘어가면 안 된다는 생각에 고양이의 애교를 보며 참고 또 참았습니다. 드디어 2주라는 시간이 흘러 상처가 아물고 다시 병원에 가는 날이 되었습니다. 원장님은 고양이의 상처를 보면서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실밥과넥카라를 풀어 주었습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코코는 나를 외면하기 시작했습니다. 도도함을 버리고 그렇게 애처롭게 애교를 부렸는데 마지막까지 넘어가 주질 않은 집사의 행동에 기분이 좋을 리가 없겠지요. 그 날밤은 내 곁에 오지도 않고 따갑게 외면하는 시선과 함께 고양이 근처에서 불편하게 잠을 자야 했습니다. 그 불편함은 며칠이 지나자 다시 우리는 아주아주 평범한 일상으로 되돌아왔습니다.
나는 이 사건을 계기로 고양이의 영악함에 매우 감탄을 했습니다. 둘째인 개냥이는 자기만의 표현이 강하기 때문에 쉽게 기분 파악을 할 수 있었지만 무표정인 코코는 본인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기에 집사 입장에서 기분 파악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집사의 성향과 기분에 따라 행동하는 코코를 보면서 이 정도면 거의 눈치 100단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눈치 100단으로 사회생활을 잘했다면 아마 지금쯤 성공의 길을 달리고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까지 들 정도였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