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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효선 Apr 05. 2021

제 전화번호 019 맞는데요...







처음 내 휴대전화를 갖게 된 일은 2000년 말의 일이었다. 내가 살던 안산은 당시 비평준 지역이라 성적 기준 고등학교를 지원해 입학할 수 있었다. 성격이 비뚤어진 나는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인 고등학교에 가지 않고, 굳이 버스로 한 시간 걸리는 고등학교에 친구 따라 지원하고 말았다. 머나먼 등하교길이 걱정이 되어 엄마는 연합고사를 앞두고 휴대전화를 사주었다.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휴대전화 대리점이 하필 LG텔레콤이었다. 그렇게 나는 내 번호를 처음 갖게 된다.


019-345-XXXX


나의 첫 핸드폰, 네오미 R7010 하복과 비슷한 옥색이라 이걸로도 농담거리로 삼았다




돌이켜보면 대학에 입학하던 해인 2004년 초가 선택의 기로였다. 대학 입학 후 새로 만난 친구들의 번호는 절반 정도는 010이었고, 절반 정도는 011, 016, 017, 018, 019 등 기존 번호였다. 대학 입학에 맞추어 새 휴대폰을 사게 되며 새 010 전화번호를 받게 된 친구들도 하나의 선택을 했을 것이다. 내가 한 선택은 019에 머무르는 것이었다. 상록수역 LG텔레콤 대리점에서 학교 갔다 오는 길에 새로 산 애니콜 슬라이드폰이 아니었다면. 그 다음의 핫핑크색 스카이폰이 아니었다면.


019 전용으로 나오는 모델은 어딘지 모르게 애매한 데가 있었다. 나는 스카이 붐붐폰 비슷한 그 무엇인 스카이 폰을 썼고, 스카이 듀퐁폰과 비슷한 그 무엇인 스카이폰을 썼다. 연아의 햅틱도, 고아라폰도 나는 비켜갔다.



출판업계에서 일하는 고씨(가명 여·29)도 중학교 1학년 때부터 '019'번호를 사용했다. 휴대폰을 처음 개통한 뒤 전화번호와 통신사 모두 그대로다. 현재 사용하는 단말기는 LG전자의 와인폰 4다. 월 통신요금은 '2만원' 정도 나온다.

고씨도 필요에 따라 태블릿PC를 보완재로 사용하고 있다. 그는 "해외에서 로밍이 안 된다는 점, 아이패드를 들고 다녀야 하는 점은 불편하다"고 했다. 하지만 "로밍도 해외서도 '포켓 와이파이'를 준비해서 아이패드를 이용하면 별 문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중략) 고씨 역시 "스마트폰을 보지 않고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 정말 좋다"고 말했다. 이들은 그 시간에 책을 읽는다거나 사색을 한다고 했다.
출처 :
https://news.mt.co.kr/mtview.php?no=2015020318443585841




위 인터뷰에 실린 '고씨'의 이야기는 내 이야기다. 2G폰으로 019를 유지하는 애가 내 친구 중 있다는 기자 친구의 말 덕분에 이런 인터뷰도 하게 되었다. 2015년에도 '효도폰'을 쓰며 019를 유지하는 건 기삿거리가 될 정도로 특이한 일이었다. 귀찮아서, 요금이 싸서, 성격이 비뚤어져서, 튀고 싶어서, 019 뒤에 이어지는 345의 경쾌함이 좋아서. 이유가 무엇이든 나는 019를 계속 유지하고 말았다. 2021년까지.


번호를 유지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했다. 사업을 이유로 번호를 유지하는 층이 많은 011과는 달리 019용으로 나오는 2G 핸드폰 모델은 훨씬 협소했다. 핸드폰 매장에서 2G 핸드폰을 취급하지 않는 시점이 되어서는 기기가 망가지면 지마켓에서 중고 2G폰을 사서 번호만 집어넣는 방식으로 번호를 연결했다. 쓸 수 있는 2G 기반 LG폰은 다 써봤다. 와인폰은 세개쯤 써봤던 것 같다.




나는 많은 것에서 비켜나 있었다. 나 빼고 모든 친구들이 카카오톡으로 연락하고 있다는 사실도 (워낙 눈치가 없어) 늦게 알았다. 태블릿을 산 후에야 카카오톡의 세계에 편입되어 내게도 '단톡방'이라는 게 생겼다. 스티브잡스의 혁신과 KT의 광풍도 나는 피해갔다. 오히려 아이폰을 쓰는 친구들이 찍은 멋진 영상 같은 걸 보면 아이폰 예술가라고 놀리고 다니기까지 했다. ㅎㅎ 카톡 안 하는 설정은 이후에도 꽤 쓸만해서 지금도 오래 유지하고 있다.


2G의 세계에서 많은 즐거운 일이 있었다. "너 홀이 뭔지 알아?"라고 친구에게 물어보며 농담거리로 삼던 기억. '핸드폰 가운데 인터넷 버튼 (EZ-I라고 써있었다)을 눌러 2010 준플레이오프 스코어를 확인하던 기억. (투수 정재훈을 상대로 한 이대호의 타구는 담장 너머로 사라져 돌아오지 않았다.) 네이버 스포츠 대신 DMB로 대리운전 광고와 함께 야구중계를 보던 기억. 샌프란시스코에서 태블릿이 깨져 충동적으로 캘리포니아 매장의 아이패드를 사서 사용했던 기억. 수신호 같은 구글맵의 기호만 보고 길을 찾아다니느라 헤매던 기억. 수만 명이 모여 전화가 터지지 않는 콘서트장에서 나만 2G 회선이라 문제없이 전화가 연결되던 기억. 다들 휴대폰을 볼 때 나 혼자 멀뚱멀뚱 지하철에 서서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던 기억. 책을 읽고 딴 생각을 하던 기억.




"너 019 쓰는 애잖아."


이 번호 하나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많은 게 설명된다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이 번호의 장점이었다. 나는 중고거래를 할 때 특히 자신있었다. 20년도 넘게 유지한 번호로 사기를 시도하는 사람은 없을테니까. 019-345-XXXX라는 내 번호의 경쾌함을 좋아했다. 세상에서 그 누구도 사용해본 적 없는 번호라 내겐 그 흔한 스팸 전화도 거의 오지 않는다. 한번 내 번호를 알았던 사람이라면 언제든 나와 연락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젠 조금 부끄럽다. 현금영수증을 발급받으며


"019고요."

"네 010..."

"아니요, 019..."


하면서 무안해지는 나 자신이.


얼마 전 거제 여행을 다녀오며 김포 공항 - 김해공항을 국내선으로 이동했다. 친절한 스튜어디스분께서 전화번호가 예전 번호라고 업데이트 해주겠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부끄러워하며 대답했다.


"제 번호가 맞아요..."

"네?"

"맞아요... 019, 지금도 그 번호..."


나를 새로 알게 되는 모든 사람들이 예전 전화번호가 아닌 새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한다. 명함에도 새겨진 내 전화번호 019. 나는 내 번호가 귀엽기도 하고, 조금 쑥스럽기도 하다.




2019년 아이폰을 샀지만 나는 아직도 019를 쓰고 있다. 2년 후 번호를 바꾸어야 한다는 한시적 조건이었다. 2019년엔 더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스마트폰 없이 사는 일은 이제 직업적인 영역에서도 문제가 되었다. 모바일 접속이 PC 접속을 역전한 시점부터 내겐 스마트폰이 필요했다. 회사 앱에 노출된 도서를 확인하는 일도 자꾸 느려지고, LMS 발송 테스트를 하며 링크를 확인할 수 없었다.


스마트폰의 세계에 진입한 후 내 세계가 달라졌다. 나는 이제 실시간으로 온라인 접속이 가능한 사람. 더는 카메라를 충전하지 않았고, 외출하기 전 길을 확인하지 않았고, 이번 여행에서 들을 노래를 미리 준비하지 않았다. 캡처와 함께 조금 더 집요해졌고, 신호위반하는 자동차를 보면 실시간으로 스마트국민제보 앱에 고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바야흐로 코로나 시대. 스마트폰 QR 체크인이 아니면 나는 내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 수기 장부와 QR 인증 중 QR을 선택할 때마다 나는  지금도 고군분투중일 나의 친구들을, 2G 세계에 남겨두고 온 별난 사람들을 생각하게 된다. 다들 잘 지내고 계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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