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A서점에서 12년째 소설과 시를 팔고 있다. 소설책과 시집이 얼마나 잘 팔리는지가 내 고과실적에 반영된다. 내가 좋아하는, '책'이라는 아이템을 '많이' 팔 수 있으면 나는 유능한 사람이 된다. 좋아하는 영화 / 드라마 / 책을 '영업'하는 사람과 나의 일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이보다 밥벌이가 호사스러울 수도 있을까.
좋아하는 일로 먹고살 수 있다는 건 분명 기쁜 일이다. 최근 좋아하는 시집의 리커버 이벤트를 진행하기로 했다. 과정은 이와 같았고 무척 즐거웠다. 이렇게 즐겁다면 돈 내고 일해야 되는 거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 이 시집이 너무 좋아서 더 많은 사람에게 전했으면 해서
- 리커버 등의 이벤트가 진행이 가능할지 출판사에 여쭤봤고
- 다행히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아 작가께 메시지를 새로 받았으며
- 그 시집의 꿋꿋하고 의연한 의미를 담은 표지로 새로 받았다
- 고객(혹은 독자)가 기뻐할 법한 '굿즈'도 새로 기획했고, 런칭 후 이 시집을 사랑하는 독자가 기뻐하길 기다리고 있다.
좋아하는 일로 밥도 먹고 살 수 있는 건 분명 기쁜 일이다.
하지만 한 가지 잊지 않아야 하는 지점이 있다고 항상 생각한다.
그건 '책'을 좋아하는 건 나 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 '돈도 받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책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최소한 '돈을 받지 않고' 책을 이야기 하는 사람보다는 열심히 하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는 것.
내가 생각하는 양보할 수 없는 최소한의 윤리는 '성실함'이다.
적어도 돈도 안 받고 이 책을 사랑하는 사람보다는 이 책에 대해 진중한 태도를 지녀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문학동네의 15년 차 에세이 편집자 이연실 팀장님은 <에세이 만드는 법> (유유,2021)이라는 책에 너무나 멋진 문장을 기록해두었다. "오직 일에 자존심을 건 사람만이 화를 낸다."
'내가 이런 방식으로 일을 하면 저 사람이 조금 피곤하지 않나?', '이렇게 별 것도 아닌 걸로 화를 내면 저 사람하고 내 사이가 불편해지지 않나?'가 이 책의 생사보다 더 앞에 위치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보다 나 자신이 더 중요한 사람이라면, 상대방과의 관계가 이 책을 더 잘 파는 것보다 중요한 사람이라면, 내가 생각하는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도 버는'사람의 윤리론엔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다. 좋아하는 일을 심지어 돈을 받으면서까지 하는 사람이라면 단순히 책을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조금 더 해야만 한다. 돈 안 받고도 하는 사람이 있는데, 심지어 돈을 받는 입장이라면...적어도 '좋아하는 사람'이 머쓱해서 포기하는 지점까지는. 좋아하면서 돈도 받는 사람은, 그 지점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수 성시경씨가 자신에 대한 '루머'에 대해 고소고발을 하면서 무척 인상적인 말을 남겼다. 지속적으로 방송 녹화 시 지각을 해왔다는 자신의 루머에 대해 그는 이런 멘트를 남겼다. "인성 덜 된 사람 만들어..고소 계속할 것."
지각하는 사람은, 더구나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해내는 일터에 지각할 정도로 일에 진중함이 없는 사람은, 성시경씨 기준으로도 '인성 덜 된' 사람인 것이다...
나는 책을 12년 동안 팔았다. 곱씹어 보면 내 담당 분야 책이었음에도, 내가 조금 더 잘했으면 지금보다 더 독자에게 더 알려졌으리라 생각하는, 나 스스로 생각하기에 '부끄러운' 책의 표지가 두둥실 눈앞에 떠오른다.
나는 나 자신을 업데이트하고 싶고, 적어도 부끄러운 삶을 살고 싶지 않다. 우리 엄마 아빠가, 나를 그런 사람으로 키우지 않았으니까.
아빠는 일곱 시에 출근해야 하는데 눈길에 지각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평소에 여섯 시에 출발했다면 눈 오는 날은 다섯 시에 출발하면 되는 거라면서. 엄마는 50년 동안 온갖 일을 하며 나를 먹여 살렸다. 염전에서 소금을 채집했고, 빵을 포장했고, 용접 부스러기를 뗐고, 화장실 청소를 했고, 계단 신주를 닦았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버는 나는 최소한 부모의 윤리의 한 부분만큼은 배신할 수는 없다. 그들은 아무리 끔찍한 일이라도 성실함을 포기하진 않았다. 나의 부모는 단 한 번도 지각하지 않았다. '그런 부모'에게서 '그런 부모'의 노동을 보고 자랐고, '그런 방식'으로 사는 것 외의 삶을 알지 못하는 나라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받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최소한은.
이 지점만큼은 절대 타협할 수가 없다. 이건 나 자신의 최소한의 윤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