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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효선 Feb 04. 2022

아빠의 찹쌀떡




지금 생각해보면 장사를 어떻게 했을까 싶을 만큼 말도 그렇고 여러모로 서툰 점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함께 순대를 먹으며 앉아 있다가도 사람이 지나가면 슬쩍 일어나서 말을 걸곤 했어요. 어린 마음에도 나는 이렇게 호객하는 아버지를 보는 것이 당황스럽고, 사람들이 그가 하는 말을 못 들은 척하며 지나가는 것이 싫어서 종종 울었거든요. 이유도 말하지 않고 우니까 못됐다고 혼도 많이 났지만 나는 그냥 속이 상했을 뿐이었고요. 그런 속을 모르고 혼을 내니까 더 속이 상해서 더 울고 더 혼이 나고, 하다보면 아버지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로부터 고개를 돌리고 있었어요.

(황정은, <백의 그림자>, 창비, 2022, 125~126쪽)




황정은의 위대한 소설 <백의 그림자>가 다시 출간되었다. 2020년대에 이 소설을 다시 읽으니 감개무량하다... 2010년에도 읽다 울었고, 2022년에도 같은 부분에서 울고 만다. 슬럼이라는 말에 대해 이야기하는 무재씨의 음성을 들으며.


아빠가 찹쌀떡을 팔았다.

아빠가 찹쌀떡을 팔았던 적이 있다.

아빠는 찹쌀떡을 파는데 실패했다.

아빠의 찹쌀떡 장사가 망했다.


내가 아홉 살 때의 일이다. 대충 이렇게만 알고 있던 일에 대해 오늘 아침 출근하며 다시 물어보았다. 요즘 같으면 대리 기사든, 쿠팡 라이더든 다른 방식이었을 텐데, 월급 외의 소득이 필요했던 아빠는 생활정보지 교차로를 찾아보고 장사를 해보려 찹쌀떡 한 상자를 샀다. 드라마에 나오는 아이스께끼 장사꾼 같은 가방에 찹쌀떡을 넣고 거리를 쭈뼛거리며 돌아다녔다. 아빠는 딱 두 명에게 찹쌀떡을 팔았고, 남은 찹쌀떡은 입원한 딸(나)의 병실로 찾아와 같은 병실을 쓰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라떼는 찹쌀떡 파는 아조씨들이 길을 돌아다녔답니다... 찹쌀떡~ 메밀묵~ 외치며 다니곤 했지요.


어릴 땐 아빠에게도 성격이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이제 나는 아빠에게도 나처럼, 타고난 자기 성품이 있다는 걸 안다. 아빠는 모르는 사람한테 말을 잘 거는 사람도 아니고, 부탁을 잘하는 사람도 아닌데. 목소리가 크지 않고, 사람들이 음성을 잘 알아채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그 해엔 길이 참 미끄러웠는데... 종종 찹쌀떡 파는 어른들 목소리가 길가에서 날 때면 아빠는 찹쌀떡 팔다 망한 얘기를 하곤 했다.


나는 그 해에 빙판길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 겨울에 얼마나 춥고 막막하고 부끄러웠을까,를 생각한다. 당시 아빠는 37살이었고, 지금 나는 38살이다. 예전 물가로 5만 원이 참 큰돈인데... 이 소설을 읽으며 오늘은 그 찹쌀떡 생각을 했다. 나보다 더 어렸던 그 해의 아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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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올립니다.

혹 제 소식을 궁금해한 분들 계시다면, 늦은 새해인사 올립니다. 입춘대길 기원합니다!


* 헤더 이미지 출처 : 마켓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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