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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라키 Feb 06. 2023

리릭 젬스(Lyric Gems): 나스와 나

래퍼 나스의 가사를 음미하면서

Nas - The World Is Yours


I sip the Dom P, watchin' Gandhi 'til I'm charged, then

돔 페리뇽 한 모금 하지, 날 채울 때까지 <간디>를 보면서

Writin' in my book of rhymes, all the words pass the margin

라임 공책을 적어내 가면서, 모든 단어는 여백을 넘기네



 그날은 추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화관을 나서고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들떠있는 마음을 나는 감출 수 없었다. 두 볼은 찬 공기를 연거푸 마시느라 빨갛게 되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그것은 래퍼 나스(Nas)에 관한 다큐멘터리 <나스: 타임 이즈 일매틱>(Nas: Time Is Illmatic)의 마지막 장면에서 일어났다. 나스는 “The World is Yours”라는 곡을 스튜디오에서 직접 부른다. 비록 74분짜리 다큐멘터리로 그의 삶을 짧게 간접적으로 훑어봤지만 나는 그의 가사를 느끼고 경험할 수 있었다. 가사는 마치 다큐멘터리의 속편을 예고하는 것처럼 삶의 이야기를 계속 풀어 나갔다.


 다큐멘터리는 래퍼 나스의 생애와 앨범 <Illmatic>을 다루고 있다. 뉴욕 퀸즈브리지에서 나고 자라면서 나스는 그가 본 것과 경험한 것을 가사로 적었다. 또래 아이들은 장남감을 가지고 놀 동안 어린 나스는 음반과 공책을 만지작거리면서 래퍼의 꿈을 키웠다. 열일곱 살에 그는 내스티 나스(Nasty Nas)라는 이름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힙합 프로듀서 라지 프로페서와 만나면서 “Live at the BBQ”라는 곡에 목소리를 넣었는데, 그것이 라디오 히트를 치게 된 것이다. 슈퍼 루키가 된 나스는 첫 앨범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했다. 자신의 동네 퀸즈브리지를 대표해서 그는 2년 동안 앨범 작업에 몰두했고 <Illmatic>으로 모두의 기대에 부응했다.


 “The World is Yours”는 네 번째 트랙으로 나스와 앨범의 성격을 드러낸다. 제목은 1983년 갱스터 영화 <스카페이스>에서 유래한다. 극 중 토니 몬타나는 미국으로 건너온 쿠바 이주민으로 마약을 통해 막대한 부를 쌓는다. 그런 토니를 항상 따라다니는 문구가 바로 “The World is Yours”이니, 하늘에 떠있는 비행선과 궁궐 같은 집에 있는 지구본 조각상에서 이를 찾을 수 있다. 토니는 아메리칸드림을 이룬 인물이다. 비록 불법적 수단을 사용하고 영화 마지막에는 파멸하지만 말이다. 나스가 묘사하고자 하는 현실은 아프로-아메리칸 공동체 안에 존재하는, 토니 몬타나처럼 가난한 형편을 벗어나 경제적 성공을 이루는 열망이다. 미국 내에서 제대로 된 기회 없이 경제적, 정치적으로 소외된 이들이 포주나 마약상 같은 불법을 통해서 많은 돈을 벌고자 하는 당시 후기 산업시대의 세태를 전제하고 있다.


 뮤직비디오에서 나스는 샴페인 잔을 들면서 토니 몬타나가 된 듯이 거품 목욕을 한다. 그리고 영화 <간디>를 보며 자신의 영감을 채운다고 한다. <스카페이스>가 개봉하기 일 년 전에 나온 <간디>는 인도 독립운동가 마하트마 간디에 관한 영화다. M16을 쏴대는 마약상과 비폭력주의자의 만남은 상당히 모순적이다. 간디는 나스의 가치관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간디는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세상의 변화를 보고 싶다면 직접 그것이 되어라” (Be the change that you wish to see in the world). 나스는 자신의 위치를, 그리고 세상을 바꾸길 원했다. 그리고 그는 <스카페이스> 방식이 아닌 <간디> 방식을 택했다. 바로 그의 라임 공책을 통해서다.


 나스는 정말로 많은 가사와 라임을 공책에 썼다고 한다. <스카페이스>와 <간디>는 모두 그의 영감이자 가사 소재로 다시 탄생한다. 그의 가사 속 ‘margin’은 여러 의미를 담고 있다. 나스는 수많은 단어가 공책의 여백(margin)을 지나간다고 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물 흐르듯이 라임을 짤 수 있는 래퍼인지 뽐낸다. 나스는 앨범 준비 과정에서 라임 공책을 잃어버리는 사고가 있었다. 다행히 공책에 주소지가 적혀 있어 우편으로 받을 수가 있었는데, 때는 이미 나스가 앨범에 필요한 가사를 모두 다 쓰고 난 다음이었다고 한다.


 그는 또한 미국 사회에서 배제된 주변부(margin)를 대표한다. 공책에 적혀 있는 단어들은 주변부에 해당하는 퀸즈 브리지 사람들을 그려내면서 희망과 위안, 그리고 자부심을 안겨 준다. 동네 사람들은 그런 나스의 가사를 인정(pass)하는데, 이로써 나스의 라임 공책은 모두가 승인하는 가치와 지위를 얻게 된다. <Illmatic>은 발매 후 빌보드 차트 12위권으로 올라서며 첫 주에만 6만 3천 장이 팔렸다. 나스는 제작비를 모두 보전했을 뿐만 아니라 데뷔 앨범으로 백만장자가 되었다. 마치 폭력 없이도 토니 몬타나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The World is Yours”는 시대와 현실을 반영한다. 인터뷰에서 나스는 지인들과 함께 있는 사진을 설명하면서 사진에 등장하는 사람들 (자신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세상을 떠났거나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한다. 그는 목격자고 증언자다. 주변 사람이 어떻게 세상을 떠나고 동네는 어떻게 마약으로 가득 차게 되었는지 묘사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나스는 래퍼가 마이크를 잡는 것을 절도범이 몸을 움직이고 총을 다루는 것에 비유한다. 또한 당시 음악(랩) 산업의 문제점을 짚으면서 이를 마약 산업과 연결 짓는다. 랩 음악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과시와 자랑, 경쟁 요소에 그는 동의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에 잠재된 악마(fiend) 본성이다. 총기와 마약에 몰두하면 종국에 파멸로 이를 것이라 예언한다. 그렇다, 나스는 예언가이기도 하다.


 그의 가사에서 드러나는 미학이다. 나스는 희망을 노래하면서 어두운 면모를 꼬집는다. 그의 양가적인 입장을 듣고 자면 당시 미국과 흑인 사회에 만연하는 문제를 곱씹어 볼 수 있다. 어째서 이들은 벼랑 끝에 서게 되었고 극적인 삶을 추구하게 되었는가? 그런 정신적 기류에서 탄생한 힙합 문화는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해야 하는가? 거대 자본과 기술 발전의 흐름에서 랩 음악은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 현실을 대변하는 가사를 접한 청자는 이런 질문을 하고 상상을 한다. 아무리 언론 매체가 역사를 기록한다 한들, 우리는 제한된 관점으로 밖에 이해할 수가 없다.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래퍼가 뱉는 가사가 그만큼 중요한 이유다.


 나스와 퀸즈 브리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더 알고 싶었다. 그때부터 랩 음악을 성실하게 찾아 들었다. 가사를 프린트해서 읽어보기도 하고 셰익스피어 소네트를 대하듯이 외우기도 했다. 자료나 인터뷰를 찾아보고 라임 공책을 직접 만들어 보면서 나름의 방식으로 랩 음악과 가까워지려 했다. 영문학을 전공하기로 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닐 테다.


 언제부터 진열장 안에 있는 보석을 다루듯이 랩 가사를 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것이 얼마나 정교하게 세공이 되었고 어떤 고유한 색을 내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혹여 떨어뜨리거나 흠집을 낼까, 그것을 품어내는 데는 아직 조심스럽다. 그래서 하얀 장갑을 끼고 돋보기로 면밀하게 뜯어본다. 미처 찾지 못한 가치가 남아 있을까 하는 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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