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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섬 Apr 01. 2021

사라지는 공간들에 대하여

선거 유세가 시작되면서 동네 지하철역 앞에는 어김없이 패널을 들고 서 있는 분들이 있다. 나는 선거 공보 책자가 오면 하나하나 다 살펴본다. 과연 진짜 정책이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남은 시장 임기는 1년 2개월 정도. 이 안에 그들이 말하는 정책은 백 년도 더 걸릴 듯하다.

모든 후보의 주요 정책은 땅과 관련된 모든 것이다.

어떻게, 어디를 개발해서 언제 공급할지. 수많은 건물이  부서지고 다시 세워지겠지. 나는 그런 걸 많이 봤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학교 근처에 있던 서울 구시청사 건물이 갑자기 부서졌다. 문구류를 자주 사러 갔던 교보문고 근처에 음식점들이 다 사라졌다. 언제 없어졌는지도 모르게 동대문운동장도 부서졌다. 아마 정말 많은 먼지를 먹었던 학창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지금 와서 그 건물들이 역사적 보존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건물들은 다 부서지고 먼지로 돌아가 누군가의 폐에 자리 잡았겠지.

나는 평양냉면을 좋아하는데 유독 을지로에 맛있는 가게들이 많다. 평양냉면뿐 아니라 친구들하고 퇴근 후에 맥주 한 잔 (아니고 여러 잔) 마셨던 호프집들도 많다. 각종 금속 공업사들도 많고 기술 장인들이 많다. 가끔 외국에서 온 게스트들에게 물어보면 가장 좋았던 곳이 을지로 골목길이라고 할 정도로 근대 문화가 가장 잘 살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여러 번 갔지만 나도 여전히 모르는 곳이 많고 왔던 길을 또 갈 정도로 헷갈리고 매번 새롭다.


​그런데 이런 건물들이 그저 낡고 비루해진 건물들로 취급당하고 철거를 앞두고 있다. 정부의 사업이고 땅을 가진 주인들의 숙원이겠지만 아직도 나는 잘 모르겠다. 정말 함께 상생할 수는 없는 걸까? 그 많은 노포들을 서울의 유산이라고 홍보할 때는 언제고, 백 년가게라고 선정해놓으면 뭐하나.​ 지금은 그냥 법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고만 답할 뿐이다.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 또 먼지 가득한 곳으로 사라지는 건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선거 유세를 하고 있는 시장 후보들은 과연 알까?​ 아마 그들은 다음에는 어디를 철거해야 자기네들이 원하는 주택공급 정책을 펼칠 수 있을지. 이걸 생각하고 있겠지? 이름 없이 무너진 먼지들은 서울 곳곳을 떠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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