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취업이 뭔지 알면 이러고 있지 않았겠지.
이전에 꽤나 (겉으로 보기에) 충성 관객이 많은 예술영화관에서 일을 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는 '정규직'이었다.
정말 진득하게 일을 하고 싶었고 함께 일하는 분들도 너무 좋았다. 애정 어린 마음으로 업무에 임했으나 세상에나. 한 사람이 열 사람의 몫을 했어야 했다. 물론 대부분의 기업은 이런 몫을 다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하지만 다 밥 벌어먹자고 하는 일인데 밥도 못 먹고 옳지 않다고 생각한 일에 옳다고 맞장구를 쳐가면서 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보면 배부른 소리 한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옳다고 생각한 것보다 옳지 않다고 생각한 것에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렇게 되어가고 있었다.
그곳은 정말, 진짜 가족 회사였고 회식이란 것을 할 때 대표의 아버지도 참석했는데 엄연하게 근무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술을 권하거나 요즘 젊은이들이 살기가 좋다고 말하거나 그의 예술관에 대해 항상 경청해야만 했다.
결정적으로 이곳은 아니라고 생각한 일화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나보다 상사인 분이 항상 그 아버지에게 술을 따라줘야 했다. 상사분은 여성이었고 나는 그 모습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두 번째는 업무를 할 때 불합리한 점을 대표에게 말했는데 비슷한 또래 (심지어 나보다 세 살 밖에 안 많았다) 임에도 불구하고 '감히 대표인 나에게..?'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본인의 분노를 참지 못했는데 나는 그 표정을 절대 잊을 수가 없다. 이 두 가지로 충분했다. 이곳에서 나와야만 했던 이유가.
간혹 면접을 볼 때 이 곳에선 정규직으로 일했나요 라는 질문이 온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럼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왜 관뒀는지 알 수 있을까요 라고 물어온다.
개인 사유라고 적어놓기까지 했는데! 실례인걸 알면서 왜 물어봐! 그때 나는 사고 회로가 정지한다. 정말 솔직하게 말해야 할까? 그냥 건강상의 이유라고 말할까?
솔직하게 말하면 솔직하게 말해서 문제인 것 같고,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그게 티가 나서 문제인 것 같고.
끝없는 자기 검열에 시달리게 된다. 취업 준비 기간은 그 어느 때 보다 나의 바닥을 잘 살펴볼 수 있는 시기인 것 같다. 하찮은 내 바닥에 실망하기도 하고 그 바닥을 도움닫기 해서 일어나기도 하고. 심정이 오락가락한다.
그러다 서글퍼진다. 나는 어떤 역량이 부족해서 이렇게도 안 되는 걸까. 어디 가서 일 못한다는 소리를 들은 적도 없고 누구나 원했던 참된 '일꾼'이었는데.
슬기롭게 무직 생활을 보내고 싶은데 이런저런 마음들로 여기저기 '흑흑'거리면서 돌아다니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흑흑' 거리는 시기도 결국 지나고 보면 나를 알게 되는 슬기로운 시간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