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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섬 Apr 16. 2021

영화제는 왜 정규직이 없나요?

그러게나 말이다.


무직 생활을 한 지 벌써 6개월이 다 되어 간다. 일을 하지 않게 된 건 2020년 11월 30일로 퇴사를 한 후부터다. 퇴사도 사실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 코로나라는 이유로 인건비를 대폭 줄이기 위한 일방적인 해고 통보를 받았다. 해고 통보서를 받아보니 기분이 묘했다. 내가 일했던 곳은 영화제였다. 영화제는 그놈의 산업 구조 상 정규직이 거의 없다. 팀장직을 가진 사람들도 대부분 계약직이다. 고용 환경이 매우 불안정하고 매번 물갈이가 된다.


영화제에 큰 뜻이 있어서 계속 일을 하게 된 건 아니고 우연찮은 기회에 잠깐 해볼까 했던 일이 커져버렸다. 하다 보니 나는 생각보다 일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함께 일했던 분들이 다른 영화제에 가서도 기억해주고 생각해줘서 연락이 왔다. 같이 일하고 싶다고. 그래서 그렇게 일하다 보니 이렇게 되어버렸다. 


운이 좋게도 함께 일했던 사람들끼리 계속 일하니 서로의 합도 잘 맞고 가치관도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들게 되었다. 이 팀으로 쭉 영화제에서 일하고 싶은데 그게 그렇게도 안된다. 매 년 열리지만 단발성 행사이다 보니 정규직을 두려고 하질 않는다. 도대체 왜? 


길면 6개월, 짧으면 3개월에서 4개월. 그렇게 하다 보니 3년이 넘게 여러 영화제에서 일하게 되었다. 계약 만료로 일이 끝나면 언제나 두렵다. 이렇게 떠도는 것도 그만 해야 하는데. 그래서 이왕 해고도 되었고 어느 한 회사에 소속되어 꾸준히 일이 하고 싶었다. 


소모품으로 써버리고 마는 최고 중의 최고인 영화제 말고 정규직이라는 이름을 달고 싶었다. 작년 12월부터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다듬고 여기저기 지원을 했다. 그동안 콘텐츠 관리와 출판 일을 했어서 글 작성이나 교정 업무를 보는 회사 위주로 구직에 나섰다. 브랜드 기획이나 마케팅쪽으로도 넣었지만 경력이 부족하다며 경력을 쌓고 오라는데 뫼비우스의 띠인가. 뽑지 않아서 경력을 쌓을수가 없는데 어떻게 경력을 쌓아요?


그나저나 뭔가 머피의 법칙인가. 내가 지원하는 공고만 인기가 터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보다 잘난 사람은 여기저기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고 시국이 시국인지라 취업 시장이 더 힘든 것도 알고 있다. 그래도 나는 항상 내가 될 거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개뿔.


'아쉽게도 귀하와 함께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안타깝지만 방향이 맞지 않아 모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방향이라는 게 뭘 까? 매번 그 방향에 대해서 고민하다가 잠이 들었다. 물론 간간히 면접의 연락도 받았다. 면접의 기회라도 주다니. 


이 기회에 감사함을 느끼면서 최선을 다하고 오겠다고 다짐하고 나선다. 고용을 하려는 사람들은 나를 알 수 있는 방법이 그동안 내가 일해 온 결과물이나 일해 온 곳들로 밖에 알 수 없다. 나도 채용을 해봐서 안다. 이력서랑 자기소개서가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걸. 하지만 어딜 가나 매번 질문은 같았다.


"정규직으로 일한 경험이 없네요?"


그래. 가족들도, 친구들도 이 산업 구조를 잘 모르는데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 뭘 알겠나.

이런 심정으로 "영화제 산업 구조 상.. " 어쩌고저쩌고. 오늘도 구구절절 말만 길어진다.


내가 그렇게 만든 것도 아닌데 왜 설명하고 앉아있지. 얼굴에 영화제에는 정규직이 왜 없는지에 대한 설명 버튼을 만들고 싶은 지경이었다.


그래서 답답한 마음에 무직 생활 일기를 써보려고 한다. 나는 과연 슬기롭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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