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상상하기 위한 첫걸음
코로나 팬데믹이 불거지며 영화관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생활에 제한이 오기 직전까지 저는 종류를 막론하고 극장에서 혼자 영화 보는 걸 즐기던 사람이었습니다. 연인, 가족, 친구들과 함께 극장에 가는 것 역시 좋아했지만 혼자 극장을 찾는 일은 ‘온전한 영화 감상’이라는 의도를 가져야만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요즘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제가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던 시절에는 ‘함께’와 ‘같이’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우리나라의 정서 때문인지 혼자 영화를 보러 간다고 하면 항상 “왜?”라는 물음이 되돌아왔던 기억이 나네요.
만약 누군가 다시 이런 의문을 표한다면, 저는 이렇게 대답할 겁니다. 누군가와 함께 가 아니라도 사람들이 붐비는 장소로 혼자 향하는 작은 용기가 필요한 일을 기꺼이 행하는 제 모습이 좋았다고 말입니다. 용기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사소하지만 그런 모습이 나라는 사람을 완성시켜주는 행동 같았거든요. 또 어두컴컴한 극장에 들어가 나를 위해 마련된 자리에 앉아 커다란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옆자리에 누군가와 함께 일 때 보다 영화를 더 제대로 체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다양한 씬들에 녹아있는 시각 효과들을 흡입하듯 빨아들이고, 그에 적합한 소리들을 귀를 쫑긋 세워 듣는 일, 마약 탐지견처럼 영화에 심어져 있는 다양한 상징과 영화적 장치들을 찾아내는 재미. 이 모든 활동이 저를 즐겁게 만들었습니다. 두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다른 세상에 놓여있는 듯한 이질적인 감각이 나를 들뜨게 만들었습니다.
8년 전, 2014년 새해를 맞이하는 연말연시쯤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어김없이 극장에서 영화가 상영되길 기다리며 상영예정작들의 예고편을 보고 있을 때였습니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60초가량의 짧은 영상을 봤을 뿐인데 심장의 박동과 호흡의 템포가 빨라진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래! 다음은 이 영화다. 개봉하면 꼭 봐야지! 선물상자를 열었을 때 어떤 선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에 대한 설렘과 2퍼센트 정도의 무관심(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니까요)을 교묘히 섞어 얌전히 상영일이 오길 기다렸습니다. 영화가 개봉했다는 소식을 듣고 당장 영화표를 예매했고, 조금 늦은 밤 혼자 영화를 보러 가게 되었습니다. 8년 전의 일이라 기억이 많이 흐려졌지만 저는 이 영화를 보는 도중 몇 번 눈물을 흘렸고, 영화의 여운을 오래 느끼고 싶어 고요한 새벽 멜론 플레이리스트에 영화의 ost를 모두 담아 영화관이 있던 시내에서 집까지 한 시간 반 정도의 시간 동안 노래를 들으며 걸어왔던 기억이 납니다. 꿈, 모험, 삶의 정수라는 단어와 결합된 영화 속 이미지들을 되뇌면서 말이죠. 집으로 돌아온 직후, 씻지도 않고 방 벽면에 붙여져 있는 위시리스트 목록에 ‘영화 만들기’라는 항목을 추가했던 기억도 나네요.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지요.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월터 미티는 그 존재가 점점 흐려지더니 영화에 대한 강렬한 인상과 인생 명곡만을 남겨둔 채 이내 기억 속에서 종적을 감추게 되었습니다. 무궁한 상상을 통해 나는 무엇이 될 수 있을지 스스로에 대한 가능성의 문을 활짝 열어두었던 소녀, 모두가 잠든 새벽 시간 인간은 왜 존재하는지,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사유하던 소녀는 어디로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눈앞에 놓인 현실을 좇기 급급한 현재의 내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반짝반짝 빛을 내던 것들의 반짝임이 바래져 간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이보다 나를 더 슬프게 만들었던 건 이런 소중한 것들이 내게서 멀어지고 있음을 인식조차 못 했던 나에 대한 무심함이었습니다.
나이가 들며 시근 머리가 생긴 것인지 일찍부터 사회생활을 하며 차곡차곡 돈을 모아 온 친구들을 보며 초조함을 느낀 탓인지 서른 먹도록 모아둔 돈이 없다는 불안감에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필요를 느꼈습니다. 저금도 더 많이 해야 했고, 그러려면 이전보다 더 아끼며 살아야 했습니다. 처음 돈을 제대로 모아보자 결심했을 당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던 덕분에 월급의 절반 가까이 저금할 수 있었으나 이때부터 돈에 대한 아쉬움, 가진 것이 없다는 결핍감이 마음 한편에 뿌리내리게 되었습니다. 소득을 늘리는 일 보다 가진 것을 아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탓에 하고 싶은 일, 사고 싶은 것, 만나고 싶은 사람들과의 자리를 줄였고 이런 내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 점점 더 의기소침해져만 갔습니다. 신기하게도 남들 말처럼 목표한 금액을 저금해두니 결국 남는 돈으로 어떻게든 생활하게 되는 게 사람이었습니다. 돈에 아쉬운 사람이 되어 갔지만 자존심 상하기는 싫어 사람들 앞에서는 티 내지 않으려 오리처럼 물속에서 발을 동동동 열심히도 굴렸던 것 같습니다.
나를 자꾸만 움츠러들게 하는 물질적 요인이 돈이었다면, 목표들을 완벽하게 달성하지 못했다는 패배감은 보이지 않는 요인이었습니다. 열심히 사는 기분을 즐겼던 저는 그때그때 이루고자 하는 목표들을 숙제처럼 스스로에게 내주었습니다. 지난 2-3년 동안 제게 내준 과제가 다이어트뿐이었다는 사실이 외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하게 해 주어 조금은 씁쓸해지네요. 최근 개인 블로그에 ‘100일 운동 프로젝트’라는 명분으로 100일 동안 매일 한 운동을 인증하며 최종 10kg을 감량하기로 목표 설정하고 1일 1 포스팅을 실천해왔습니다. 일기처럼 적어 올리는 단순한 글이었지만 이 과정에서 이웃들이 생기고, 그들의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엿보며 블로그 활동에 재미를 붙일 수 있었고 덕분에 의욕적으로 글을 올릴 수 있었어요. 그러다 프로젝트의 막바지에 이르니 재미있게 이어오던 블로그 활동이 갑자기 부담스럽고, 포스팅을 업로드하는 일이 꺼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급기야는 생활 전반에 걸쳐 무력감이 엄습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런 의욕이 생기질 않았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후반부에 다시 마주한 실패 때문이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문제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됩니다. 무기력이라는 녀석에게 걸려 넘어지던 그날. 한참을 웅크려 있던 제게 불현듯 이런 생각들이 침투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이어트에 왜 자꾸 실패하는 걸까? 나는 지금 뭘 하는 거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거야? 내가 진짜로 원하는 삶, 간절히 이뤄졌으면 하는 일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 거예요. 가만히 생각해봤습니다. 올해 상반기에 준비하던 바디 프로필에 실패했던 나, 또 최근에 100일간의 운동 프로젝트에서 살 빼기는커녕 제대로 된 운동조차 하지 못했던 나를 돌아보며 ‘나는 진짜로 살이 빼고 싶은 게 맞나?’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해보았습니다. 이런 고민을 제대로 해봤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로 살을 빼는 일이 너무나 당연하게도 저의 최대 목표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던 거죠. 그런데 아니었어요. ‘그랬으면 좋겠다.’는 가벼운 마음만 있었을 뿐 날씬하고 탄탄한 몸매를 간절히, 열렬히 원하는 정도는 아니었던 겁니다. 둔탁한 무언가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진짜로 원하는 건 뭘까 생각해보았어요. 신기하게도 생각이 나질 않았습니다. 즐거운 것, 나를 기쁘게 하는 것, 내가 되고 싶은 것, 내가 가지고 싶은 모습, 조금이라도 희망적인 어떤 것들을 떠올리라치면 어둠 속에서 알 수 없는 손길들이 뻗어 나와 그 빛나는 것들을 다시 어둠 속으로 쓱 거둬들였습니다. 상상하는 일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생각의 프로그램이 내가 생각하고 그어놓은 한계에 맞춰 작동하고 있다는 게 온몸으로 느껴졌습니다. 여태껏 이어오던 체중감량의 반복된 실패는 ‘나는 안 될 거야’, ‘또 실패할 거야’, ‘나는 여기까지야’ 마음속 아주 깊숙한 곳에 패배감을 심어둔 거예요. 돈에 전전긍긍했던 내 모습 역시 마음에 비슷한 작용을 한 것 같습니다. 돈이 없다는 감각에 집중했던 나머지 ‘나는 가진 게 없어’, ‘나는 부자가 될 수 없을 거야’,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지’. 끝없는 결핍감과 삶에 대한 상실감을 학습시켰습니다. 자기 몸보다 100배는 더 높게 뛸 수 있지만 유리병에 갇혀 딱 그 정도의 높이로만 뛰도록 한계가 설정된 벼룩처럼요. 지구본을 바라보며 더 넓고 큰 세상을 꿈꾸던 저는 사라지고 작은 공간에 육중한 몸뚱이를 구겨 넣은 채 숨 막혀하는 제 모습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유리병을 빠져나와야 했습니다. 한계와 결핍으로 점철된 내가 작동하는 프로그램을 새롭게 교체해줘야겠다는 간절함이 생겼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나쁜 것을 끌어들이고, 긍정적인 생각은 좋은 것을 끌어들인다고 하잖아요. 저 역시 좋은 것들로만 제 삶을 채우고 싶은 욕심은 여전했고, 이런 욕심이 남아 있다는 건 저에게 참 다행인 일이었습니다. 우선 내가 원하는 삶을 그려 보기로 했어요. 나는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어떤 활동을 즐기는지, 어린 시절 내가 꿈꿨던 일들은 어떤 것이 있었는지. 제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마치 광고의 한 장면처럼 전구에 불빛이 탁-! 하고 켜지는 모양새였다면 참 좋았을 테지만 마음속 상상 공장은 연기 한 줌 쿨럭하고 내뱉을 뿐이었습니다. 쿨럭쿨럭. 탈탈탈...
그러다 문득 니나 던피라는 우주를 표류하고 있던 우주여행사 월터 미티가 엔진을 점화시켰습니다. 8년 2,920일 70,080시간이라는 긴 여행을 끝마친 그가 의식의 문 앞에서 노크하며 존재를 알려 왔어요. 영화 속 월터가 지금의 꽉 막힌 나를 보면 뭐라고 했으려나 생각하며 아주 오랜만에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유튜브 프리미엄 서비스를 접한 것이 실수였을까요. 최근 몇 년 동안은 짧은, 속도감 있는, 집중력을 크게 요구하지 않는 영상들을 소비해왔던 탓에 혼자 영화 한 편을 각 잡고 보는 게 얼마 만인지. 생각보다 너무 오랜만이었던지라 조금 어처구니없는 느낌까지 들었습니다. 어떤 영화를 볼지 고심해서 정하고 시간을 들여 다운로드한 후, 다른 선택지는 없는 상황에서 온전히 그 영화에만 집중하는 이런 시간도 좋아하던 일 중 하나였는데 하는 아련함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오랜만에 조우한 월터는 그 자리 그대로 저를 맞아주었습니다. 어머니의 요양원 비용, 백수 여동생 대신 갚아야 할 벌금, 집 보증금이라는 부담을 떠안은 채 라이프라는 잡지사에서 16년째 일하며 따분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같은 회사 직장동료인 셰릴에 대한 호감과 ‘상상’을 통해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는 순간만이 월터의 유일한 도피처였죠. 그러던 와중에 월터가 일하는 잡지사가 매각되며 온라인 잡지사로 바뀌게 되면서 대규모 구조조정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가 소속된 필름 현상 부서는 더욱이 위기에 처하게 되어버린 상황인거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오랜 시간 라이프지와 일해왔던 사진작가 숀이 잡지사의 폐간에 유감을 표하며 자신의 필름 중 25번째 사진에 삶의 정수가 담겨있으니 꼭 표지로 써달라고 강하게 요청해옵니다. 하필 그 사진만 홀연히 사라져 버린 아주 난감한 상황에 월터는 궁지에 몰리게 되었어요. 이때부터 월터는 25번째 사진의 행방을 찾아 나서게 되면서 예상치 못한, 아주 특별한 모험을 하게 됩니다. 술에 얼큰하게 취한 헬리콥터 조종사의 헬기에 몸을 싣기도 하고, 바다에 빠져 상어와 싸웠으며, 곧 화산이 터지는 일촉즉발의 순간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구불구불한 협곡을 내달립니다. 상상 속에서만 모험을 일삼던 월터의 무대가 현실로 바뀌어 가는 것을 보며 그를 열렬히 응원하게 되고, 마지막 장면을 보는 순간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처럼 다시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특별한 사람이 되어서 특별한 일을 하는 게 꿈이었다는 월터 미티. 누구나처럼 평범한 일상을 살다 그저 한 발짝 더 내딛음으로써 모험을 시작하는 월터를 보며 근사하고 멋진 삶은 저 ‘한 걸음’에서 차이가 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월터는 어린 시절 모히칸 머리로 멋을 내고 스케이트보드 선수를 꿈꿨으며 세계일주를 계획하며 마련한 배낭여행가방과 여행 기록장을 가진 소년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하며 현실과 타협하게 되었지만 결국에는 그의 어린 시절의 꿈들이 어른이 된 월터를 도와주고 해방시켜주는 장치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걸 볼 수 있어요.
니나 던피에게도 그런 순간이 올까요? 그러기 위해서 지금부터 저와 더 친해지는 시간을 마련해야겠습니다. 시간이 들어도 결국에는 내가 좋아했던 것이 무엇인지, 또 지금은 무엇이 좋은지, 내면의 목소리가 좀 더 솔직해질 수 있게 저를 살살 달래 봐야겠어요. 여담입니다만, 이 글을 적기 위해 카페에서 글을 써볼 요량으로 노트북을 넣을 저의 든든한 동반자이자 아주 오랜 친구인 백팩을 근 1년 만에 꺼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백팩 안에서 제가 엄청 아끼던 가죽 시계를 발견했지 뭐예요. 잃어버린 줄로 알고 애타게 찾을 때는 보이지 않던 녀석이었는데 서프라이즈 선물처럼 짜잔! 하고 나타난 거예요. 좋아하는 일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려던 찰나에 나타난 좋아하는 물건이라니! 뭔가 예감이 좋습니다.
또 하나. 월터를 만난 다음 날, 아주 오랜만에 30분 동안 달리기를 했습니다. 몇 달간 달리기는 일절 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갑자기 달리고 싶어 달려보았어요. 그런데 다행히 오랜만에 달려도 호흡이 안정적이고 몸에 열이 오를 때의 감각이 기분을 좋게 만들더라고요. 달리는 그 순간 힘들어도 앞으로 나아가는 그 느낌을 참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이렇게 다시 제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냈어요. 처음 달리기를 시작할 때, 숨이 가빠 심장이 터질 것처럼 아팠는데 지금은 잘 달리는 걸 보면 좋아하는 걸 찾는 일 역시 비슷할 거라 생각이 듭니다. 계속해서 찾아 나서고, 원하는 걸 상상하다 보면 언젠가는 니나 던피의 상상이 현실이 되어 있을 겁니다. 여러분의 상상도 현실이 되길 바랍니다.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다.”
- 월터와 셰릴이 좋아하는 라이프지의 모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