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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던피 Dec 22. 2022

명탐정 산타클로스

기쁨을 목격하기 위한 탐정놀이


이등분 짜리 자그맣던 몸이 성장하여 제 발로 걷고, 뛰고, 말하기를 제법 자유롭게 해내게 되면 보통의 아이는 그 시기에 유치원에 입학하게 됩니다. 처음으로 자신의 또래들과 어울려 사회적 관계를 맺고 출처가 어딘지 모를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를 주고받게 되죠. “이 집에 귀신이 있데!”, “거짓말하면 똥구멍에 털이 자란데!!”, “우유랑 콩나물을 많이 먹어야 키가 쑥쑥 큰데!!!”. “삼거리 마트 아저씨 등에 왕만 한 점이 있데!!!!”


이렇게 순진하고 귀여운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라는 이슈는 상상력을 자극하기 딱 좋은 소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산타클로스라는 크리스마스의 유명 인사에 대한 소문을 접한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재밌는 상상을 나눕니다. 산타가 타고 다니는 루돌프는 코가 너무 밟아 온 세상을 모두 비출 수 있다던가, 산타는 착한 아이와 나쁜 아이를 단번에 구분하는 전지전능한 사람이라든지, 제법 풍채가 좋은 몸인데도 불구하고 자기 몸보다 얇은 너비의 굴뚝을 드나들 수 있는 변신술의 귀재라든지 말이죠. 몇 달 혹은 몇 년 더 일찍 태어났다는 이유로 온갖 폼은 다 잡으며 인생 선배인 척 으스대는 언니 오빠들에게 “산타클로스는 없어.” 바보 취급을 받아도 절대 그 말을 믿지 않던 순진무구했던 그 시기를 누구나 꼭 한 번은 거치는 듯합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의 야심한 밤. 잠든 사이에 산타가 머리맡에 선물을 두고 가는 거냐면서 초롱눈으로 부모님께 물었을 때, 피식하고 웃더니 어깨를 으쓱하던 엄마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네 가족이 단칸방에 오밀조밀 모여 살던 그 시절.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기 며칠 전부터, 굴뚝이 없는 우리 집은 창문으로 산타 할아버지가 들락거려야 하는데 창문이 좁아 못 들어오면 어쩌나 얼마나 걱정했던지. 가지고 있던 양말 중 가장 예쁜 것을 골라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넣기 편하게 발견하기 쉬운 위치에 양말을 올려두었습니다. 혹시나 운이 좋으면 산타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크리스마스 대스타를 만날 생각에 설레하며 몰려오는 졸음을 참다 참다 결국 까무룩 잠들고 말았지만요.


다음날 크리스마스 당일. 눈을 뜨자마자 고개를 젖혀 머리 위를 보았습니다. 머리맡에 반짝이는 화려한 포장지에 곱게 포장된 선물이 놓여있는 걸 발견하고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신나고 흥분된 마음에 크리스마스 선물이 있다며 내 옆에 곤히 잠들어 있던 언니를 흔들어 깨우기 바빴어요. 각자 선물을 하나씩 골라잡아 포장을 뜯으며 제가 외쳤습니다. “엄마! 산타 할아버지가 진짜 선물을 주고 갔어!” 들떠있는 딸들을 옆에서 지켜보던 엄마, 아빠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그날 제가 받은 선물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자동차 모형 안에 볼펜, 딱풀, 스카치테이프 등이 들어있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필요한 문구 세트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산타의 정체를 몰랐던 당시에는 산타할아버지가 정말 필요한 선물을 주시는구나 섬세한 배려에 대한 감탄도 잊지 않았었죠.


이제는 불뚝한 배를 굴뚝에 욱여넣어 선물을 두고 가는 사람이 산타가 아닌 딸들의 환상을 지켜주고자 했던 부모님이었다는 사실을 알고도 남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제 마음속에 산타클로스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선물을 전하고 받는 기쁨만큼은 현실에 존재하는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오로지 받는 사람의 기뻐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목격하기 위해 준비되는 선물. 이것을 준비하는 마음과 과정은 탐정이 되는 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합니다. 타깃이 정해지면 당사자는 눈치채지 못하도록, 마치 잠복수사를 하듯 그 사람을 관찰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평소 어떤 음악을 듣는지, 좋아하는 옷 스타일은 무엇인지, 또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어떤 향수를 쓰는지 등. 상대의 취향을 파악하고 그의 입에서 어떤 ‘필요’의 말이 나오는지 항시 귀를 기울이고 있어야 하죠. 이 선물을 전했을 때 내 가족이, 사랑하는 사람이, 친구가 기뻐하고 행복해하는 표정을 보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약간의 수고스러움을 기꺼이 감수하게 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창의성이 요구되기도 합니다. 상대의 취향에 맞춰 비싸고 질 좋은 선물, 그거 뭐 별거 아니라는 듯 거뜬히 전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마음과 달리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정해진 예산안에서 어떻게든 행복을 전해야만 합니다. 이럴 때 제가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가 사소하지만 귀여운 선물과 함께 손으로 편지를 쓰는 일입니다. 내 생각에 손으로 쓴 편지를 받기란 요즘같이 터치식 활자 입력이 익숙한 시대에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상대를 떠올리며 손으로 꾹꾹 눌러 담아 쓰는 손 편지는 선물에 가치를 더하는 기분이 듭니다. 


저의 경우에 편지를 쓸 때 암묵적으로 정해진 원칙이 있습니다. 바로 상대에 대한 초점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축하와 감사를 전할 목적으로 쓴 글에 잠시라도 다른 이야기가 끼어들어 버리면 온전히 상대를 위한 일이 아니게 되어버리니까요. 근황을 물으며 시작하는 편지는 상대가 내게 어떤 의미를 지닌 소중한 존재인지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지고, 그래서 당신에게 일어난 이벤트를 내가 어떤 마음으로 축하하고 감사하는지. 그 진심을 털어놓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편지를 쓰고 나면 손목이 욱신하고 펜을 꽉 잡고 있던 손마디가 뻐근하지만 마음만큼은 뭉근하게 데워져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이타적인 행동이 가능한 것일까요? 인간이 ‘나’와는 구별되는 완전한 ‘타인’의 행복을 보며 함께 기뻐할 수 있는 건 거울 뉴런(mirror neuron)의 기능 덕분입니다. 이 세포에 붙여진 이름처럼 상대의 행동과 감정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처럼 비추어 보는 것이죠. 진화를 통해 거울 뉴런이 탄생한 데는 분명 인간의 생존에 유리한 일이었을 겁니다. 공감의 기능이 없다면 우리는 절대 함께 웃어 줄 수도, 울어 줄 수도 없는 인류를 살아가고 있을 테니까요. 상대의 기쁨을 목격하기 위해 그 사람을 떠올리며 선물을 준비하는 일도 없지 않을까요. 상대를 통해 나 역시 기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니 정말 근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누구의 행복을 내 마음속 거울에 비춰볼까요. 부모님? 남자 친구? 친한 친구들? 글쎄요. 이미 다 자라 산타의 존재에 관심조차 없는 어른들은 탈락시켜야겠습니다. 어린 시절의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루돌프가 끌어주는 썰매를 타고 선물 꾸러미를 한 아름 둘러메고 굴뚝을 드나드는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는 순수한 사람. 저의 네 살짜리 조카를 위해 명탐정 산타가 되어봐야겠습니다. 조카가 좋아하는 만화는 무엇인지, 친한 친구는 누구인지, 좋아하는 음식과 노래는 무엇인지. 조카에 대해 염탐하고 연구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조카는 절대 알 수 없도록 비밀스럽게 선물을 전해 크리스마스 당일 그녀의 머리맡에 놓아둘 계획입니다. 사랑을 전하는 크리스마스 카드와 함께 마치 산타 할아버지가 다녀간 것처럼 말이죠.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얼마 남지 않은 크리스마스를 기다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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