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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ero Jan 31. 2024

우다이푸르, 몰락한 왕들의 거처로 가는 길

권력의 화양연화는 유한하지만 그를 추억하는 사람들은 무한하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의 얕은 소견일 것이다.

라자스탄, 왕들의(Raja) 땅(sthan), 남한 면적의 세배 정도 크기, 광활한 땅이다.

이곳을 대표하는 도시들엔 푸르라는 명칭이 뒤따르는 곳이 많다.

라자스탄 주도인 핑크시티 자이푸르를 비롯해 블루시티 조드푸르, 화이트 시티 우다이푸르가 그렇다.

푸르는 도시(city)를 의미한다. 자이의 도시, 조드의 도시, 우다이의 도시라는 뜻이다.

힌두스탄으로 밀고 들어오는 무굴제국을 피해 마하라자(위대한 왕)들은 이곳저곳으로 은신처를 찾아 쫓겨갔다. 말이 마하라자, 위대한 왕이지 그들은 나라 잃은 권력자들일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부자가 망해도 삼 년은 간다고 왕권은 하루아침에 몰락하는 법이 없다. 꺾인 권력의 그늘 아래 민초들의 신음이 깊어갈 뿐이다. 우다이싱 2세는 군사를 이끌고 라자스탄의 남쪽 끝자락 우다이푸르까지 쫓겨왔다. 왕궁 곁에 물 웅덩이를 팠고, 몬순 때마다 물이 차기 시작하면서 면적을 늘리더니 오늘날의 피촐라 호수가 됐다. 우다이푸르는 인도에서 허니문 관광지로 늘 1순위에 랭크되는 도시다. 화이트 시티라는 별명에 걸맞게 흰빛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호수를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내 경우 여행지에서 느끼는 감정은 크게 두 가지다.

압도적인 풍광 혹은 매혹적인 스토리에 정신을 빼앗겨 그것에 몰입하거나,

아웃 포커싱 모드로 가능한 한 생각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기만 하기.

우다이푸르는 후자였다.  

인공호수 피촐라와 호숫가를 배경으로 세워진 시티팰리스, 갠지스 강변 바라나시처럼 줄지어 이어진 가트, 곳곳에 그려진 그래피티 풍의 벽화들, 시장 골목에 걸린 세밀화... 그러나 무엇보다 이 도시가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은 인공이 아닌, 오감으로 전해오는 자연이다. 바람은 부드럽고, 호수는 잔잔하다. 웅장한 시티 팰리스보다 호숫가에서 빨래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훨씬 더 정겹다.


인도를 여행하면서 느낀 점 가운데 하나는, 세계 제1의 인구 대국인 이 나라 사람들이 이슬람 유적으로 먹고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아그라의 타지마할은 말할 것도 없고, 뉴델리의 꾸툽 미나르 같은 유적지를 둘러볼 때 그런 생각이 더욱 굳어졌다. 그런데 라자스탄은 느낌이 조금 달랐다. 이 지역은 힌두교도의 땅, 조금 디테일하게는 이슬람(무굴)들로부터 쫓겨온 힌두교 왕족들의 땅이다. 라자스탄의 주도 자이푸르를 방문했을 때 느낌도 비슷했다. 쇠락해 가는 왕조의 마지막 영화를 위해 왕족들은 이교도인 무굴제국과 동맹혼인을 맺었다. 피는 물보다 진하지만 사랑은 피보다 진하다. 영국의 식민지 시절에는 명목상이라도 독립국 신분을 갖게 해 달라며 독립적 대결보다 종속적 타협을 택했다. 핑크시티라는 별칭이 영국 황세자를 환영하기 위해 도시 전체를 핑크빛으로 도색한 데서 온 것이라고 하니... 생각해 보면 우리도 그 비슷하지 않았나 싶다. 고려 말 원나라의 궁녀로 간 과거사나, 해방이 영원히 올 것 같지 않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의 친일 행적이나... 후세 사람들은 그러나 잊는다. 아픈 현장에서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는다. 라자스탄, 왕들의 땅, 많던 왕들은 다들 어디로 갔을까? 


돌아가는 길, 우버 요금으로는 갈 수 없다면서 끝내 두 배 요금을 챙긴 택시 기사가 내게 묻는다.

"How was Udaipur?"

침묵으로 무시하면 쪼잔한 코리언이 될지 싶어 느낌표 빼고 심드렁하게 답했다.

"Great."


차창 밖을 내다보는데 아침나절 시티 팰리스 가는 길목에서 만난 힌두 여인네들의 뒷모습이 자꾸만 어른거린다. 몰락한 왕조의, 하지만 여전히 그 후손들이 찾아오는 왕궁으로 가는 길, 노새에 짐을 가득 싣고 가던 힌두 여인들의 뒷모습이 눈에 밟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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