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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ero Nov 15. 2023

거저 먹는다는 것

딸애는 외할머니를 잘 따른다. 그런 손녀를 어머니는 또래 그룹들 가운데 제일 좋아 하신다. 지난번에도 할머니 좋아하신다며 홍시를 사왔다. 내가 남을 좋아하면 남이 나를 좋아한다. 당연한 것 같지만 이런 관계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둘의 교감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우린 가톨릭이다. 어른신들께선 일찌감치 세례를 받으셨다. 우리 가족은 딸이 제일 먼저 받았다. 딸애가 가톨릭의 문으로 먼저 들어간 결정적 계기는 어머님 때문이다.

"너를 위해 매일 기도하고 있다."

라는 할머니 말씀을 처음엔 그냥 흘려들었다고 딸애는 말했다. 그러던 딸이 어느날 교리신청을 했다.

"웬일?"

하는 물음에 딸애는 영세를 받고 난 한참 뒤에야 내게 설명했다.

"그때 할머니집에서 자다가 새벽 세 시쯤 일어 났을거야 아마. 글쎄 할머니가 마리아상 앞에서 기도를 하고 계시더라고."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자기 이름을 부르시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고 계시더란 였다.

"첨엔 그냥 할머니가 우리 만날 때마다 의례적으로 말하시는줄 알았어. 너희들 위해 기도한다고.  근데 정말이시더라구. 내가 할머니 기도를 거저 먹구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구."


거저 먹는다.


이 말이 죽비처럼 내 등짝을 내리쳤다. 그후로도 오랫동안 내 발길은 여전히 속세에 머물었다. 거저 먹는데 익숙한 습관이 하루 아침에 바뀔리 있겠는가? 하지만 딸애를 깨우친 이 말은 바닷속 바위에 찰싹 달라붙은 전복처럼 뇌리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고 하는데 하물며 한 사람을 위해 신께 바치는기도의 가치는 또 얼마나 크겠나. 그것을 딸애는 시집 가기도 전에 알아버린 것이다. 결혼하고, 애 낳고, 환갑 고개 넘어서도 알아채지 못한 그 가치를 말이다. 평생을 살면서 그 누구를 위해 나는 단 한번이라도 기도한 적이 있었는가?

"세상 그래 살믄 안 됩니다",  하는 지청구 듣기엔 이미 꼰대가 돼버린 지금도, 늦지 않았겠지?

퇴직 후 내가 두번째로 한 일은 예비신자 교리 신청이었다. 모두 다 어머님 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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