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처'라는 소설 읽어봤어요? 그런 여자가 필요하거든요."
어느 학교 졸업했느냐, 무슨 과냐, 어디 사느냐, 취미가 뭐냐, 그런 일상적인 질문이 오가다가 뜬금없이 현진건의 빈처 얘기를 꺼낸 그가 유난스러워 보였다. 미팅이란 자리가 늘 그렇고 그래서 그날도 대충 그룹 맞선을 본 뒤 남자 쪽에서 시계며 지갑이며를 모아 가지고 와서 우리 쪽에 펼쳐 보였다. 순간, 난 아까 '빈처' 얘기한 사람 것이 어떤 것이냐, 고 물었고, 주저 없이 그의 시계를 내 것인 양 집어 들었다.
1980년이었고, 4월이었다. 대학로에서 창경원을 거쳐 비원 쪽 돌담길로 접어들 때쯤 불쑥 그가 말했다.
"돈 있어요?"
고궁 돌담 밖까지 날려오는 벚꽃 향기가 은은하길래 그 비스무리한 운치 있는 말이라도 하는가 싶었는데, 난데없이 돈 있느냔, 질문을 받고, "이 사람 정말 빈처가 필요한가 보다"하고 속으로 생각하다가 얼떨결에 "얼마 나요?" 하고 되물었고, 결국 언제 갚겠다는 기약도 받지 못한 채 그에게 만원을 내줬다. 이후 채무자인 그는 잠수를 탔다.
9시 뉴스에서는 거의 매일 빠지지 않고 시위 관련 소식이 뒤를 이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뒤 입학한 나는 그때 새내기로서 캠퍼스의 낭만을 잔뜩 기대했었는데, 분위기는 영 그게 아니었다. 거리엔 시위가 연일 이어졌고 매캐한 최루탄 내음이 라일락 향기를 압도했다. 휴교령이 내릴 거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전화벨이 울렸다.
"웬 남자가 이 밤에 전화냐?" 하며 엄마가 내게 전화기를 건넸다.
"기억하세요?"
전화선을 타고 들어오는 그의 목소리에 나는 거의 감전이 되는 것 같았다.
'물론 기억하고 말고지... 꿔준 돈을 어떻게 잊겠어' 하고 속으로 되뇌었지만 알 수 없는 설렘이 옆구리를 쿠욱 찌르며 들어왔다.
"나오세요. 로타리 다방입니다"
딱 두마디를 더한 뒤 그는 전화를 끊었다.
돈을 갚으러 온걸까? 더 꾸러 온걸까?
나는 그것이 궁금했다.
지하계단을 내려가 다방문을 열자 멀찌감치 LP를 손에 든 DJ가 거수경례를 했고 리오 세이어의 When I need you가 와르르 밀려왔다.
"미안해요, 맨날 데모대 좇아 다니느라고... 연락도 못했어요."
묻지도 않은 내게 그는 학보사에 들어갔다며 말문을 열었다. 수습기자 딱지를 떼면 장학금도 받을 거라며 우쭐댔다. 그동안 시위 현장 취재 다니느라 정신 없었다는 얘기, 사북에 있는 광부들이 폭동을 일으킨 게 아니라 생존권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란 뉴스 등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듯 그칠 줄 모르게 수다를 이어갔다.
'아 그랬었구나, 난 또 '빈처' 레퍼토리 비슷한 수작이나 부리고 다니는 줄 알았지...'라고 혼잣말을 하고 있을 때, "자 여깄어요" 하며 그가 전별금 건네듯 만원을 내놓았다.
"생전 처음 원고료라는 걸 받았어요."
의기양양한 표정의 그는, 메모지에 신청곡을 쓰는가 싶더니 노래가 나오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간 집회가 있을거에요. 충무로에서 명동쪽 담당이거든요"라며 "커피는제가 삽니다"했다. 거리엔 시원한 초여름저녁 바람이 불었다. 황망하게 뛰어가는 그의 뒷모습이 인파와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나는 서있었다.
이후, 근 넉 달 가까이 이어지는 휴교령이 내려졌고, 스쿨버스 대신 탱크가 캠퍼스 정문을 가로 막았다. 그 기간 동안 나는 그를 몇 차례 더 만났다. 여름이 가고 낙엽 질 무렵 나는 그의 '빈처'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