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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작까 Apr 14. 2021

가난이 추억이되려면

아내의 오전시간

9시40분이 되면 아이는 어린이집으로 내 차를 타고 등원을 한다. 차에서 스스로 내려 두손으로 타고온 차의 문을 밀어닫은채 엄마인 나의 손을 잡고 엘레베이터를 탄다 꽤 오랜시간의 적응훈련이 끝났고 제법 씩씩하게 제발로 들어가 '안녕' 손을 흔들어보인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키워보면 안다). 그리고 나는 지하주차장에 대었던 차를 돌려나와 집으로 갈지, 근처 카페로 갈지 고민을 한다 동네에 들어서는 마지막 신호가 초록불로 바뀌는 순간 나는 집으로 들어가지 않기로 결정한다 집으로 가면 내가 해야할일은 정해져있다.


아침에 아이가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을 정리하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먹었던 밥그릇과 포크를 찾아서 싱크대에 넣고 바닥에 놓여있던 물컵 주변으로 흘린물을 없는지 체크한다. 아직 기저귀과 이별을 하지못한 아이가 벗어둔 기저귀를 쓰레기통에 넣고 쫒아다니면서 갈아입혔던 옷가지들을 빨래바구니에 던지듯 놓고는 털석 쇼파에 기대어 누어 멍때리다 핸드폰의 스크롤을 올리며 피식피식 웃는다. 이 시간이 아까워서 자세를 고쳐앉으면 뱃속에서는 꼬르르륵 하고 내가 살아있음을 알리는 신호가 울린다 밥솥에는 밥이 있지만 아이가 옆에 있을때는 자제했던 라면이 먹고싶어서 냄비에 얕은 물을 올리고 끓기를 기다리린다. 가볍게 출출했던 배가 갑자기 급하게 고파진다. 기다리는 시간을 못견뎌 아이간식으로 사뒀던 과자 하나를 다 먹고 한개 더 먹고 싶을때 쯤 냄비 가에 물이 끓기 시작한다 평범한 라면 하나를 끓여 식탁에 앉아 먹기 전 휴대폰 켜서 일반인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영상하나를 선택해 보고나면  라면은 어느새 마지막 젓가락질이된다 설거지도 하지않았지만 어느덧 시계는 11시를 향해서 간다 이때라도 정신을 차리면 다행이지만 나는 정신을 차리지 않는다. 널부러져 시간을 보낸다 딱히 쉬는것도 노는것도 집안일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시간을 보낸다. 그래서 나는 집으로 들어가지 않기로 한다.


카페에서는 아메리카노 커피 한잔을 시킨다. 돈 없던 20대 시절에 습관처럼 시켰던 가장 싼 아메리카노 한잔이 30대가 되어선 취향이 되어버렸다. 대단한 신메뉴가 나오더라도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아메리카노는 정말 더워서 쓰러질것같지 않으면 뜨겁거나 미지근하게 먹는다. 내가 하루에 몇잔을 먹었던 잘 시간이 다가오던 배가 불러 꼼짝못할때던 상관하지 않고 먹는 즐기는 식품이 되었다.


글을쓰며 시간을 보내기 위해 선택해서 들어간 카페에서의 아메리카노는 대부분 4천원 언저리의 금액이다. 비싸지만 그 자리에 앉는 비용이라 생각하고 기꺼이 쓴다. 내가 주문한 커피가 나오면 자리를 잡고 노트북을 연결한다 지나온 시간을 쓰는 나라서 딱히 쓸 거리에 대해선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그저 기억을 떠올리면 된다  한참을 앉아서 타닥타다닥 그때를 기억한다 딱히 음악을 선택해서 분위를 잡지도 않았는데 쓰다보면 눈물이 차오른다. 그때의 내 심정, 상황이 처참해서 짠해서 눈물이 흐른다. 어린 내가 잘못한건 하나도 없지만 오롯히 내가 감당해내야했던 버거웠던 그때가 다시 숨이 막혀왔다

모든 피스가 완벽하게 있는 기억의 퍼즐을 가지고 있는게 아니어서 글을 쓰다보면 팩트체크에 어려움이 있다.온전히 나의 감각이 기억하고 있는 슬픔과 상황뿐이지만 어쨌든 그때의 버거움은 지금 생각해도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된다


가난이 추억이 되려면 지금 잘 되어 있어야 한다.  그때의 나보다는 훨씬 나야한다. 내일이 더 나아질거야 하는 희망도 기대도 없이 차비가 없어 운동을 핑계로 걸어다니고 밥먹을 돈이 없어 다이어트를 핑계로 간헐적단식을 하는 그때의 나를 '기특하고 참 성실하게 살았었네 정말!' 이라고 말 할수 있는 지금은 더이상 배를 곯지도 않고 12시간을 서서일하고도 퉁퉁 부른 다리로 걸어서 퇴근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조금 더 나은 내일이 올거라는 믿음과 희망. 90년대 포스터그리기에나 쓸것같은 표어지만, 오늘을 살아가기위한 내일의 기대는 가난을 추억을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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