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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작까 Apr 08. 2021

아빠, 우리 같이 살자

집의 수리가 끝났다. 샷시도 새로했고 샤워실도 번듯하게 있는 화장실도 있었다 집 수리를 하면서 여전히 우리는 아빠의 작은 오피스텔에 월세를 살았다. 쇼파에 앉아 무기력하게 컴퓨터를 보고 있는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내가 낙찰받은 집에서 같이 살자"


아빠는 담배에 불을 붙일 뿐, 아무말이 없었다. 아마도 내가 낙찰받은 집이 엄마의 돈인것 같아 꺼려하는 것 같았다.뒤돌아 나를 보지도 않았고, 내 물음의 대답도 없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아빠에게 명분이 필요하다는것을 말이다


"아빠, 나 이거 낙찰받은거 500만원 가지고 낙찰받은거야! 경매 할때 엄마도움을 받긴 했는데 보증금 마련한것도 내 알바비 모은돈으로만 한거고... 알다시피 내가 매월 돈벌이가 고정적이지가 못하잖아..? 아빠 여기 오피스텔 월세랑 관리비 40만원 드는거 이사가서 아빠가 좀 내주면 안될까? 원리금은 한달에 23만원인데30만원에 내가 깍아줄게! 하하하응? 어때? 아빠도 좋고 지금보다 돈도 덜 들잖아! 담배냄새 난다고 코 안막을게!"


나는 한동안 아무말이나 했던것 같다. 한참동안 아무말 않고 내말을 듣던 아빠가 입술을 떼어 피식 웃어보였다 '나 이용해서 너만 좋은거네? ' 자조석인 웃음이었다.


하나씩 집을 옮겼다. 아빠의 영업용택시에 싣어서 몇날몇일에 걸려 이사를 했다 언니와 내가 월세살던 오피스텔은 몸만 들어와 살 수 있는 풀옵션이어서 챙길게 별로 없었다. 언니가 종교생활을 끝내고 들고온 큰 가방 하나, 내가 오고가며 만든 집 몇개 그리고 아빠의 계절별 옷 그것이 전부였다


필요한 냉장고 세탁기 가스렌지 전자렌지는 중고재활용가전제품업장에 가서 한방에 구매했다. 돈은 늘 모자랐고 매 순간 아쉬움이 남는 선택을 해야했지만 그런대로 행복하고 즐거운 하루였다.


나는 언니와 아빠에게 방을 하나씩 내어주고, 방문은 없지만 가장 해가 잘 드는 방을 차지했다. 낮은 주택들이 즐비한 동네였지만 때가 되면 해가 잘 들었다. 반지층이지만 건물 앞에서 보면 1층과 다름없는 집 덕분에 우리집 창문앞에 주차걱정없이 차를 댈 수도 있었다. 엄마는 지방에서 자리를 잡았고, 아빠와 언니 그리고 내가 함께 살면서. 좋았다. 행복했다. 온전한 집에 가족이 산다는 느낌 아빠의 작은 오피스텔 원룸에서 언니와 나 그리고 아빠 셋이 지낼때보다 언니는 조금 더 안정되어갔다 언니의 이야기는 동의되지 않은 이야기라 조심스럽지만. 언니가 종교에 빠진 건 나의 인생에서도 꽤나 큰 타격을 준 사건이라, 어느 정도는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꽤 오랜 시간 종교생활을 한 언니가 이  속세에 찌든 내 글을 보고  오해 속에 상처 받진 않을까 순간 겁이 나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때의 나도 충격이었고 자식을 잃은  것과 다름없었던 엄마 아빠가  어떻게 돼버릴 것 같아 무서운 시간이었다.


사이비 종교라 불리는 다큐만 보아도 어쩜 그렇게 하나같이 똑같은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사람에겐  누구나 고난이 찾아온다 인생 자체가 평온한 사람도 있겠지만 그 나름대로의 고난과 역경은 존재할 것이다 고난을 헤쳐나가는 역량  차이가 저마다 다르고 고통을 느끼는 대미지도 다르겠지 나는, 막무가내에 꼴통 안하무인 스타일이라 일단, 누군가 나에게 해주는 말을  곧이듣는 애가 아니었다 어릴 때도 그렇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공부도 잘하고 엄마 아빠의 꿈이고 목표였던 맏이 우리 언니는  세상에 덤벼볼 시간도 없이 엄마 아빠의 지원 속에 학생 본분에 최선을 다했다 

역경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엄마 아빠가 이혼하고 처음 겪는 가난 외로움 초라함 등의 감정에 익숙지 않았을 거다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 그들이 내민 손 얼마나 따뜻하고 위로가 됐을까 가족보다 더 포근히 안아주는 마음이 얼마나 고마웠을까


내가  언니의 종교를 싫어하고 반대했던 이유는 하나다. 맹목적인 신념, 그것이 싫었다. 결국 '나'는 없고 종교만 있는 오롯이 복종  믿음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도 모르게 희생을 강요당하는 것이 말이다. 어느 날 언니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 언제 이렇게 어른이  됐어?' 언니가 마지막으로 본 나는 고등학생이었어서 아마도 대학을 졸업하고 돈을 버는 내가, 관계 속에서 적당히 무시하고 불같이  화를 내다 오징어 다리를 씹어먹듯 욕 한번 시원하게 하고 털어내는 내가 신기하다고 했다. 언니가 종교에서 얻은 마음의 병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대부분 드러났다. 

언니의  종교를 반대하는 아빠와 엄마 사이에서 언니는 어쩔 줄 몰라했다. 엄마는 따로 사니 연락을 안 하면 그만이었지만 아빠는 함께 사니  언니가 조금이라도 종교적인 행동을 하면 둘은 격해졌다. 아빠는 언니를 몰아세웠고 언니는 대들었다. 나는 언니, 그냥 두면 안  되냐고, 종교를 믿든 안 믿든 그냥 두면 안 되냐고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는 언니는 병이고, 그대로 두면 정말 미쳐서 돌아버릴  거라고 했다


언니의  감정은  격해지면 진정되지 않았고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 병원의 힘을 빌려야 했고 약의 기운을 얻어야 했다. 그렇게 병원을  여러 차례 오고 가며 약을 인정하기까지 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야 했다 언니의 진단명은 조현병이었다. 한때 뉴스에서 나오는 엄청난  일들을 벌인 사람들의 병과 같았다 


"너 그거 알아? 이약을 먹으면, 온몸에 개미가 기어 다녀 온몸이 가렵고 멍해, 근데 약을 안 먹잖아? 세상이 이렇게 또렷할 수가 없어 근데도 내가 이 약을 먹어야 해? 내가 왜? 자꾸 나를 재우는 것 같단 말이야" 


언니는 울부짖으며 나한테 말했다. 아빠가 늘 하는 걱정 그대로 언니한테 약 먹었는지 물어봤을 뿐인데 언니는 엉엉 울었다 발버둥을 치면서 울었다 나보다 두배쯤 커져버린 언니를 안아주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사이비  종교에 빠진 가족을 다시금 가족의 품으로 데려오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가족의 얼굴을 오랫동안 보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고,  꽤 큰 금전적인 피해를 입기도 한다 종교에 모든 것을 주고 돌아오면 본인은 물론 가족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된다.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을 텐데 가족에게서보다 더 큰 사랑을 받았다며 언니는 종교에 매달리고 의지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지금이  되었다. 자격증을 취득해 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고, 잊지 않고 약을 잘 챙긴다 그리고 더 이상 종교에  관련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 족은 언니를 추궁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가족이란게 뭘까 어찌  이렇게 질길까 옆집사는 누구처럼 적당히 모른척하고 거리를 두고 살 면 참 좋을텐데 도대체 혈육이란게 뭐길래 돕지않으면 불편하고  지켜보면 답답하고 기다리기엔 조급함이 드는지.. 가족이 버거웠던 그때를 돌아보면 여전히 마음이 무겁고 지치지만 또 그때를 떠올리니  지금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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