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없었고, 해선 안 되는선택을 했다
스물다섯 살은 사회적으로 어떤 나이일까 스무 살에게 스물다섯은 까마득한 선배이겠고, 서른에게 스물다섯은 나는 저때 무엇을 하고 지나왔는지 회고하게 되는 나이라 하면, 어른들이 웃을까
고삼 수험생의 역할을 끝내고 난 뒤에 난 재수생이 되었고 재수의 끝엔, 날 원하는 대학이 없어 지원자 미달이었던 산업체 전형으로 등 떠밀리듯 전문대학에 입학했다 1, 2학년이 지나고 졸업을 할 땐 진짜 필드로 나간다는 게 무서웠을까, 원하는 대학입시에 미련이 남아서 일까 편입을 준비했었고 바로 편입학하여 3, 4학년을 보냈다 그러고 만난 나이가 스물다섯 살이었다
내 나이 스물다섯 살에 경매로 집을 하나 낙찰받았다 감정가 1억이었고, 언덕 중간쯤 되는 자리에 있어서 건물 앞에서 보면 1층 같았지만 건물 뒤는 담장에 완벽히 가려진 반지하, 저금리 시장에 유동성이 좋아 경매 낙찰이 높은 가격에 잘 되던 시기였는데 그러다 보니 낡고 역세권이 아닌 다세대 반지하 빌라는 사람들의 관심도가 높지 않았기에 아주 저렴하게 내가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경매 입찰부터 임장 낙찰 등기 대출 명도 새시 화장실 수리부터 도배까지 내 집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해야 하는 일들이었었다.
가진돈이 작고, 들어본 바, 해본 바가 없다보니 만나는 모든 어른들이 무서웠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가진 돈을 잃어버릴것 같았다. 대출을 상담해주러 온 상담사부터 집수리 를 위해 만난 전문가까지 나는 가시돋힌 말로 경계태세를 갖췄다 허리는 곧게 펴고 턱은 살짝 들고 무슨 말인지 다 알아들을 수 없지만 고개를 가끔씩 끄덕거리며..
내가 낙찰받은 집의 수리에서 가장 필요했던 두 가지는, 화장실과 새시, 장판, 도배였다 대공사로 구분이 되는 공사인 두 가지는 이삿집이 들어오고 나서 공사를 한다는 건 시간과 비용을 두배로 써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과감하게 결정했다. 화장실은 좁지 않은 편이었다. 변기 하나 세면대 하나 그리고 작은 샤워장까지 만들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새시는 발품을 팔아, 유리에 두께가 아주 두껍지는 않았지만 얇은 유리 두 겹으로 깔끔하게 교체했다 새시 공사가 끝나고 인테리어 공사 업자를 섭외했다 그 업자는 집을 둘러보며 내게 질문을 했다
"이 집 팔 거예요? 본인이 살 거예요?"
그때 왜 나는 제가 살 거예요! 오래오래 살 거예요!라고 말하지 못했을까 의도를 파악할 일도 아니었고 어려운 질문도 아니었는데 왜 나는 솔직하게 대답하지 못했을까 이런 낡은 집에 산다고 나를 괄시하는 건 아닐까? 어리다고 무시하나? 투자한 척 해야겠다 라는 생각이 스쳤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조금 살다 팔아야죠'라고 말했던 나의 선택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나는, 이후 돈과 시간을 더 들이고서야 알았다.
"바닥은, 좀 좋은 걸로 하세요 장판 말고 데코타일로 깔면 아주 멋스럽고 넓어 보이고.. 바닥이 지하라 습(기)이 많은데 한 일 년 정도는 괜찮을 거예요 좋은 걸로 인테리어 공사 싹 해서 빨리 팔아요 이집에 물이 많거든요"
건물의 한 20센티쯤 바닥에 묻힌 내 집을 포함한 다세대 건물은 보일러동 배관으로 30년 넘게 살아냈다. 그동안 살고 살아 미세한 구멍들이 생겼고, 각 집 낡은 동배관 속 물들이 각 집을 돌고 돌아 데우고 식히면서 미세한 구멍으로 떨어진 한두 방울이 가장 아랫집인 우리 집 바닥으로물이고여있다는 뜻이었다
'세상에! 그럼 이제 어쩌죠?' 지금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상상도 안됐고, 앞으로 그 물이 집에 어떤 영향을 줄지도 알 수 없었다 '물을 퍼내야죠' 간단했다. 보일러 배관공사로 전체 적으로 손을 보는 일이었다. 간단했고 돈 이백쯤 드는 일이었다
'아...' 작은 탄식이 나왔다. 돈이 없었다. 화장실 새시 도배장판 하고 나면 나는 진짜 돈이 없었다. 그때 집수리 업자는 말했다 '그럼 바닥을, 좀 좋은 걸로 하세요 장판 말고 데코타일로 깔면 아주 멋스럽고 넓어 보이고.. 바닥이 지하라 습(기)이 많은데 한 일 년 정도는 괜찮을 거예요 좋은 걸로 인테리어 공사 싹 해서 빨리 팔아요'
해선 안 되는 선택이었다. 남에게 세를 준다 하더라도, 내가 산다고 하더라도 곪은 것을 해결해야 했다 속이 썩어 곪은 것을 겉을 화려하게 치장한다고 한들 가려지지 못한다는 것을 눈치챘어야 했지만 처음 집으 사본 나는 알 수 없었고 그렇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렇게 장판보다는 비싸고, 보일러 배관공사보다는 훨씬 저렴한 데코타일을 깔았다 '정말, 멋지네요!' 역시 사람도 집도 가꿔야 하는 걸까 완전히 새로운 집이 되었다 내가 알던 그 낡은 집은 온데간데없었다
속이 썩어 곪는 일인 줄도 모르고 그렇게 해도 되는 줄 알았다. 내가 살 집이었지만 내 집이에요! 하면 이런 집에 산다고 무시당하고 괄시받을까 세줄 집이라고 했고, 세줄 집 인척 하며 겉만 깨끗하고 괜찮은 집으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