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살, 진짜로 내 집이 생겼어!
낙찰을 받고 당장에 내 집이 생겼다는 믿을 수 없음, 행복감 설렘 해방감 대박이다, 헐, 와, 내 집 실화냐 정도의 단어를 계속해서 읊조렸던 것 같다 엉덩이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 마리 웰시코기처럼 걸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남은 건, 남은 돈을 내는 일이었다. 5611만 원에 낙찰을 받고 그중 512만 원을 입찰보증금으로 냈으니 나에게는 5099만 원의 잔금이 남은 상황이었다. 어쩌지?
경매 입찰법정에서 낙찰을 받고 낙찰자가 되어 입찰법정의 문을 나서면 수 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와 명함을 준다 '경락자금 대출(이하 경락대출)'을 해 주겠다는 대출 명함인데, 대부분 대출을 해주는 비중은 비슷하지만 차후 내가 이 낙찰받은 집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해 결정을 하고서 선택해야 한다
어떤 대출은 금리(이자)가 높고, 중도 반환수수료가 낮다 이것은 짧게 빌리고 빨리 갚는 사람에게 유리하다 내 집 마련을 위한 대출보다는 단기매매 투자에 어울리는 방법이다.
나는, 내 집 마련이었고 당분간은 이사를 갈 일도 없으며 한방에 몇천만 원이나 돈을 한방에 갚을 만큼의 예정된 수입도 없었기에 대출 금리가 보다 낮고, 중소 반환수수료가 높은 대출을 해주는 곳을 필요로 했다. 명함에 적힌 간단한 대출 정보로 나에게 어울리는 대출 상품이 있는 곳을 골랐고, 당장에 전화를 걸었다
"낙찰받으신 건가요?"
"네"
"사건번호 알려주세요"
"2012 타경 7120이에요"
(첫 낙찰 이후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첫 질문, 낙찰의 여부에 따라서 설명의 온도차가 달라진다. 물론 안 그런 대출 상담사도 있겠지만 낙찰자가 아닌 입찰 예정자로서 5-6통의 전화를 걸어보면 의기소침해지기도 했다)
네 90% 대출이 가능하겠네요, 대박 90%라니! 당시의 정책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집) 담보대출, 경락대출로는 금액이 소액에 해당되어 조금 더 대출이 가능하다는 것. 내가 첫 낙찰을 받을 당시만 하더라도 ltv(주택담보비율) 70% 내지는 80%는 대부분 가능했어서 나머지는 엄마가 준 내 결혼자금으로 해결하자 싶었는데 온전히 그 돈은 쟁여둘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나머지 잔금 모두를 40년의 대출기간으로 금리 4.1%의 경락자금 대출신청을 마쳤다. 이제 갓 졸업한 계약직 프리랜서인 내가 저지른 엄청난 소비였다. 앞으로 원금과 이자를 균등하게 내는 원리금 균등방식으로 매달 40년 동안 23만 원 정도를 내야 하는 일이었다. 이 엄청난 약정에 내 손으로 사인을 했다
대학 졸업 후 배우가 되어싶었고, 그러려면 오디션을 봐야 했고 일정한 돈벌이를 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매달 내야 하는 월세가 겁이 났다 물가상승을 고려하지 않고, 고정된 월세로 계속 살아갈 수 있다면, 살던 곳에 계속 살 수 있다면 내가 내 집이 필요하다는 간절함을 얻을 수 있었을까?
저금리인 지금 보아도 저 엄청난 금리로 대출을 받으면서도 나는, 그게 뭐 별건가 내 집이 생겼는데!라고 생각했다 이걸 쓰는 지금도 '이자가 4프로가 넘으면 엄청나네..' 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엔 월세보다 싸니 됐다!라고 생각했다 거기에 계약기간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내가 원하면 원하는 데까지 살 수 있는 서울에 내 집이었다 집을 샀으니, 취득세를 냈다. 기껏 해봤자 560,890원이었다 세금이 무서워 내 집을 사지 않는 건,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 담그는 일이었다
모든 것이 그렇고, 세상의 이치가 그렇듯 저렴하게 사는 것이 최고의 수익률이다 대부분의 소비자는 같은 것이라면 저렴하게 얻고자 한다. 저렴하게 산 사람은 저렴하게 팔 수 있다. 같은 부동산이라도 저렴하게 산 사람이 보다 빨리 팔 수 있는 이유는 저렴하게 샀기 때문 일터
내 집을 사기 전엔 사선 안 되는 이유가 많다고들 했다. 이미 집값은 많이 올랐고, 유주택자로 세금을 내야 하며 청약의 기회를 잃어버린 것 등등 이런 많은 단점을 안고 낡은 집을 살바엔 전세를 살거나 나라에서 운영하는 임대주택에 들어가 더 낮은 비용으로 더 쾌적한 공간에 살 수 있데 왜 그 보다 못한 집을 내 돈을 주고 사야 하는지 묻는 사람들이 있었다.
10년 전 이야기지만,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때도 어린 내가 경매법정에 들어갈 때 옆에 계신 어른이 한 말이 잊히지 않는다 '경매를 하려고? 이제 여기도 별 볼일 없어'그때, 내가 투자를 위해 경매법정에 들어가 그 어르신의 말을 들었다면 어쩌면 입찰금액을 조금 낮췄을지 모르겠다, 수익률 투자 이런 거 말고 나의 직장 또는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내 집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너 낮고 습하고 어두운 고시원 방으로 들어가지 않기 위함이었던지라 그 말이 마음에 크게 와 닿지 않았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난 지금 앞으로의 미래를 들여다볼 말로 떠올리게 된다. 시간이 지난 후엔 어떻게 될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집 없는 무주택자를 진정으로 위하는 시기가 올까? 가난할수록, 경매를 해야 하고 내 집을 마련해야 한다. 부동산은 소유하므로써, 온전한 나의 것이 되어 세상에 경제원리를 쳐다볼 기회를 준다. 내 집은 일생의 단 한번 있는 이벤트가 아니다. 돌다리를 두드려 다리를 건너듯 계속해서 나에게 맞게 나의 가족에게 맞게 건너야 한다. 지금 사는집에 절대 만족이란 없다. 한걸음씩 만족의 주머니를 채워 나가고싶었다
말소기준 권리보다 앞서는 임차인(세입자), 선순위 임차인 어떤 식으로든 내 집 마련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전문용어들은 좀 익혀두는 편이 좋다. 그깟 익숙하지 않은 몇 개의 단어들 때문에 나가떨어지긴 내가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건가 하며 자괴감만 남길 테니까, 말소기준 권리보다 앞선 임차인, 즉 선순위 권리자가 없는 경매물건은 초보자가 입찰하기 가장 쉽고 편하다 왜? 떠안을 돈도, 권리도 전혀 없어서 입찰표에 가격만 고민하여 숫자만 잘 써서 입찰하면 되니깐 말이다. 그다음으로 쉬운 것이 배당을 다 받는 선순위 임차인이 있는 경매물건인데 이건, 낙찰자가 떠안아야 할 임차인이 있지만 (돈, 계약기간) 낙찰이 되기만 하면 낙찰대금에서 가장 처음으로 배당을 해줄 사람이 임차인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따로 낙찰자가 책임을 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낙찰받은 부동산은 후자에 해당하는 '배당받는 선순위 임차인이 있는 물건'이었다
후일담으로는, 법원에서 패찰을 한 기존에 살고 있던 세입자(이하 점유자)를 만나는 게 여간 불편했었는데 만나고 보니 아주 상냥하게 나를 대하기에 조금 어리둥절했었다. 점유자는 법원에서 배당금을 수령하려면 반드시 낙찰자의 인감이 첨부된 명도 확인서(집을 비웠다는)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점유자는 낙찰자인 나에게 50만 원 정도의 이사비를 요구했다. 그때의 형편으로는 나도 누군가를 도울 형편이 아니었고, 더 솔직히 말하면 낙찰금액에서 한 푼의 미수금도 없이 깔끔하게 자신의 보증금을 다 받아가는 거면서 낙찰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이사비를 달라는 마음이 불편했다 나도 이제 내 집하나 있는 어엿한 집주인이었지만 50만 원은 여전히 큰돈이고 달라고 해서 척, 줄 수 있는 돈도 아니었다
"오죽했으면 제가 이 낡은 집을 낙찰받았겠어요
도움이 못돼서 죄송합니다"
점유자가 이사를 가는 날, 나는 내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집의 내부는 임장 때 살짝 엿보았던 대로 생각보다는 넓고 꽤 깔끔했다 (나의 낡은 고시원에 비하면) 워낙 낡은 집을 낙찰받았기에 손 보는 일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낡은 싱크대였지만 전에 살던 사람이 요리조리 잘 보고 쓴 본덕에 내가 계속 쓸 수 있어 보였다. 새시는 철로 된, 여닫을 때 끼익 끼익 소리가 나는 철로 된 새시였고 화장실은 세면대가 없이 수도꼭지만 있는 화장실이라 세면대가 필요했고, 작은 현관을 활용하기 위해선 건물 계단 아래 신발장을 만들면 더없이 좋아 보였다.
온전한 방 두 개에 문 없는 방 하나(거실 겸 방) 그리고 주방, 언니와 아빠 그리고 내가 하나씩 각자의 공간을 차지하고도 주방이라는 여유공간이 남았다. 해야 할 일은 산더미였지만 매일이 기대되는 하루의 연속이었다
고시원에 살 때, 한 달에 방값은 22만 원 정도였고 내가 먹는 대부분의 주식은 고시원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라면이었다. 내 집을 마련한 지금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한 달에 내가 내야 하는 집값의 원리금은 23만 원이고 여전히 나는 라면이 주식이다. 내 집 마련이란 게 참 희한하기도 하지 같은 라면인데 더 맛있고 배가 불렀다 든든한 한 끼를 먹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고시원에서 라면을 끓여먹을 때면 국물 없이 면에 수프를 비벼 조리해 건져먹고 꾸덕하게 양념이 묻은 냄비를 설거지해야 했지만, 낮이고 밤이고 어두워 불을 켜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보이는 고시원 주방에 불을 켜면 검은 점이 흩어지는 스산함 때문에 마치 내 스스로가 원래 그런 사람인냥 무심하게 방한쪽 구석에 냄비를 던져놓고, 침대 에 누우며 '에라 모르겠다'하고 모른척 했다 먼저 주방에 불을 켜주길 기다리며.. 그때와는 너무나 다른 감정이다 내 집 마련은 경제가치 그 이상의 행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