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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작까 Apr 15. 2021

없는 기억

기억이 나지 않는 그때의 나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평범한 하루끝 해질무렵 숨이 턱끝까지 차오를때쯤 동네친구랑 헤어져 5층짜리 아파트 입구에 섰다 땀이 흘러 축축했던 등과 겨드랑이 사이로 바람이 지나간다 '아 시원하다' 그렇게 온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집 앞 계단에 서서 숨을 한번 더 들어마셨다 엘레베이터가 없는 아파트 4층까지 롤러스케이트 신고 오르기위해선 앞 발가락에 조금 더 힘을 모아야했기때문이었다. 너무 신나게 논 탓일까 신발은 더 무겁고 한발한발이 더디게만 느껴졌다 집앞에 올라 어깨위로 올라간 숨을 발끝까지 내려 쉬고 열쇠구멍에 열쇠를 넣어 문을 연다. 현관부터 깨끗하게 치워진 집에 바람이 날카롭게 불어든다 엄마가 자주신던 슬리퍼가 없다


'엄마' 소리가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나는 엄마를 부르지 않았다 곧장 안방으로 들어가 엄마의 화장대를 봤다 때때로 너저분했던 화장대 위엔 아무것도 없다 서랍을 열어도 장롱을 열어도 아무것도 없다. 엄마의 물건이 없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엄마는 전화를 받을리가 없었다


 안방 그 어느곳에도 엄마의 물건이 남아있지 않음을 확인한 나는 눈물이 터져나왔다 엉엉울었다 어린아이가 엄마을 잃어버린 듯 울었지만 엄마는 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다음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가 내가 초등학교 5학년때쯤이었는데 정말 그때가 기억이 잘나지 않는다 몇장 남아있는 사진으로 미간을 지푸려보지만 역시나 몇개의 조각이 남아있을뿐 퍼즐을 완벽히 기억해낼 수는 없다


초등학교 졸업식 학교 정문 한켠 꽃다발을 들고 서있는 나, 몸에 익지 않은 중학교 교복을 입고 거실 화분 옆에서 부끄러운듯 브이를 하고 있는 나 이 두장의 사진이 그때의 나를 담고 있을뿐이다 그쯤 내가 많이아팠었는데 열이 올라 얼굴은 새 교복색깔 만큼이나 시벌겋게 달아올라있었고 눈은 팅팅 부은 그대로 였다


그리고 중학교에 입학한지 얼마지나지 않아 나는 엄마와 살게되었다. 좋았던지 나빴던지에 대한 감정도 없다 기억이 나지않는다. 나는 원래 기억을 잘 안하고 사는 사람인건지, 기억하고 싶은 그때가 아니라 기억을 지운것인지는 몰라도 그냥 그렇게 그때는 흘러간 것같다


(어떻게 모으게 된 돈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용돈을 가지고 친구랑 동대문에 가서 빨간 코드를 사오던 길이었다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 엄마를 만났는데 무슨 돈이있어서 이걸 샀는지, 그렇게 큰돈을 엄마와 의논도 없이 샀는지 친구를 옆에두고 선채로 혼이 났었다 내가 사온 코트는 4만원이었고 빨간색이었고 꽤 두꺼웠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옷감부터) 싸구려 옷이든 봉지속에서 옷을 꺼내 손에 췬채 혼이나던 나를 가만히 쳐다보던 엄마는 코트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곤 체념한듯 집으로 돌아섰다 그런 엄마의 뒤를 따라가면서 나는 어쩐지 엄마한테 미안했다 집에 들어와 이어지는 엄마의 잔소리가 듣기 싫거나 하지 않았다



엄마의 잔소리 속에서 내가 쓴 4만원이란 돈이 엄마가 하루를 꼬박 일해야 버는 돈임을 알았다.  엄마의 고단함과 맞바꿀 수 있는 돈이었다 나는 여전히 그때의 엄마에게 미안하다  엄마는 그때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이혼한 부모의 보호아래 자란 나는 잘 자란걸까? 스스로에게  늘 묻는 질문이기도 하고 남들에게듣고 싶은 답이 있는 질문이기도 하다. 지금 이렇게 번듯하게 가정을 잘 꾸리고 사는 나를 보면서 주변지인들은 어떻게 더 잘 살아내냐고 반문한다. 내가 원하는 말을 들으면 나는 으쓱해진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론 나는 진짜 잘 자란게 맞는지 의심이 든다. 지금 내가 무대에 서있는 잘 살아내야하는 역할을 맡은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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