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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치영 Jun 21. 2024

이름 모를 사람에게 받은 친절함

70대 부모님과 산티아고 걷기 37

 2022년 6월 15일

 걷기 33일 차: 사리아 -> 마카도이로 -> 포르토마린


 오늘은 아침부터 엄마 컨디션이 좋지 않다. 어제 오후부터 아프던 다리가 문제다. 엄마는 오래전에 무릎에 인공관절 수술을 했고 이후에 이렇게 많이 걷거나 등산을 하지 않으셨다. 그동안 잘 견뎌왔는데 아무래도 걷는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몸에 무리가 됐나 보다.

 더위를 피해 조금 일찍 출발했다. 다른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생각인지 이른 아침부터 순례자들이 많이 보였다.

 길을 걷다 우리 가족을 아는 사람들 모두 오늘 엄마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인다고 얘기한다. 리나에스에서 함께 지냈던 외국인 아주머니도 엄마 걱정을 했다. 그리고 만난 첫 번째 바에서 쉬고 있는데 그분이 우리에게 다가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바르는 젤 타입의 연고를 주었다. 자신은 이제 사용할 필요가 없다면서. 허브로 만든 것이라 효과가 좋다고 했다. 정말 약이 좋아서인지 아니면 그분의 마음이 좋아서인지 바를 나설 때 엄마의 발걸음이 한층 좋아졌다.

 이런 작은 마음이 길을 걸을 때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이 길이 좋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름도 잘 모르는 이에게 내가 가진 것을 나누고 베풀고 도와주는 곳. 나도 도움을 받고 또 도움을 주는 곳. 그게 자연스러운 곳. 그래서 나는 이 길이 좋다.

 길가에 아름답게 핀 꽃들도 엄마에게 힘을 주는 존재이다.

 그렇게 힘을 내서 드디어 100km 비석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만난 비석은 아주 깨끗해진 모습으로 나를 맞이했다.

 나름 의미가 있는 비석인지라 많은 사람들이 인증샷을 남기는 곳이다. 우리도 잠시 쉬면서 여러 차례 사진을 찍었다.

<100km 세요를 찍을 수 있는 곳. 집 주인이 순례자를 위해 차려놓은 과일과 세요에 담긴 마음이 고맙다.>

 한 차례 더 사람이 없는 바를 골라서 쉬면서 이곳에서 택시를 부를까 엄마에게 물었다. 그런데 엄마가 오늘은 라면 파는 곳에 들르고 싶다고 해서 우리는 좀 더 걷기로 했다. 왜냐하면 그동안 라면 파는 곳을 몇 차례 지나쳤는데 우리보다 앞서 온 한국인 단체 순례객들이 모두 사가지고 갔었다. 그래서 라네로와 폰페라다를 제외하고 라면을 따로 구입해서 먹은 적이 없다. 다행히 우리가 쉬던 바에서 조금만 더 내려가니 라면 파는 곳이 나왔다.

 이곳은 기념품 가게 겸 식료품도 팔고 있었다. 안쪽에는 라면을 끓여 먹을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우리는 라면과 햇반, 김치까지 야무지게 사고 친절한 주인아주머니에게 택시를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잠시 가게를 구경하며 택시를 기다렸다.

 알베르게에서 늘 하는 일과를 마치고 마을을 구경했다. 귀여운 가게에 들어가서 음료도 마시고 여유로운 오후 시간을 보냈다.

<산 니콜라스 성당>

 부모님이 미사를 드리는 동안 나는 시원한 캔맥주를 하나 들고 마을을 구경했다. 볼거리가 꽤 많은 마을.

 아까 택시를 타고 올라와 제대로 보지 못한 포르토마린의 상징과도 같은 마을로 올라가는 계단도 한 번 내려갔다 올라왔다. 배낭을 메고 올라왔으면 정말 힘들었겠지.

<물이 빠져야만 볼 수 있다는 옛 다리와 지금의 다리>

 확실히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걸 느낀 하루다. 길에도 바에도 숙소에도. 갈리시아 지방에 들어오니 입국 준비가 걱정되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코로나 검사를 해서 음성이 나와야 비행기에 탈 수 있기 때문인데 나로 시작해서 엄마와 아빠까지. 조금씩 감기 기운도 있었어서 조금 불안하기도 하다. 지금부터 걱정해 봤자 파리에 가서 검사를 해야 하지만. 앞으로 좀 더 건강 관리에 신경을 써야겠다.

 앞으로 며칠 남지 않은 일정도 무사히 잘 마무리할 수 있기를...



*숙소 정보: HUELLAS ALBERGUE TURISTICO

 3인실에 묵었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공용. 숙소는 깨끗하고 주방도 사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곳 세요가 마음에 들었다. 주인아저씨 엄지손가락 지문으로 만들었다는 세요. 이곳은 방명록도 순례자들이 지문이 여러 가지 색으로 찍혀있다. 꽤 재미있는 아이디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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