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부모님과 산티아고 걷기 39
2022년 6월 17일
걷기 35일 차: 팔라스 데 레이 -> 보엔테 -> 아르수아
아빠가 어젯밤엔 땀을 쭉 내고 자서 그런지 아침에는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다. 길을 걸을 땐 그래도 괜찮은데 숙소에 들어서면 오히려 컨디션이 떨어지는 것 같다. 아무래도 너무 더워서 그런가? 가볍게 요거트와 과일로 아침을 챙겨 먹고 출발했다.
오늘의 목적지 아르수아까지는 거의 30km나 되는 거리이다. 일정표에도 하루에 이 거리를 걷는 것으로 나오는데 업다운 힐이 거의 없기도 하고 마지막에 체력이 붙으니까 가능한 거리라고 생각한 게 아닐까? 하지만 우린 오늘 중간에 택시를 탈 예정이다. 어디까지 걸을 수 있을지는 일단 멜리데에 가서 문어를 먹으면서 고민해 볼 예정.
동화 속에 나올 법한 특이한 길을 걷고 있을 때 최근 길에서 자주 마주치는 호주에서 온 할머니들을 만났다. 늘 기분 좋게 인사해 주는 분들이랑 사진도 찍고 잠시 얘기를 나누며 함께 걸었다. 그러고 보니 자주 만나던 한국분들은 요즘 못 본 것 같다. 늘 길에서는 마주치는 사람들이 바뀌게 되니까. 인연이 있다면 다시 만나겠지.
터널 같은 숲 속 길에서 즐겁게 사진을 찍고 있는 브라질 친구들도 만났다. 이들은 사리아에서부터 출발했고 그날 아침부터 우리와 자주 마주쳤다. 100km 비석에서도 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유쾌한 친구들과도 함께 사진을 찍었다. 브라질도 꽤 멀 텐데 의외로 브라질 분들이 많이 오신다.
작은 마을의 작은 성당에 들러 초를 봉헌하고 지금까지 무사히 걷고 있음에 감사 기도를 했다.
유쾌한 외국 친구들과 함께 웃고 걸으며 멜리데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멜리데에 왔으니 문어 먹으러 가야지.
한국인 입맛에 잘 맞는 문어. 스페인에서 먹는 문어는 왜 다 맛있을까? 옆 테이블에서 시킨 고추 요리도 함께 시켜서 먹으니 더 맛있었다. 아이스크림까지 야무지게 챙겨 먹으며 쉬고 나서야 다시 길에 올랐다.
해가 쨍하게 나진 않았지만 후텁지근한 날씨였다. 갈리시아 지방에는 비가 자주 내리는데 걷는 동안 비를 만나지는 않았지만 습도가 높았다. 그리고 우거진 숲 속 길을 걷는 것도 높은 습도를 느끼게 하는 것 같다. 그래도 비를 만나는 것보다는 더운 날씨가 훨씬 낫다.
내리막 길이 시작되기 전 보엔테에서 쉬면서 택시를 불렀다. 오늘 숙소를 북쪽길에 더 가까운 곳으로 우리가 걷고 있는 프랑스길에서는 꽤 떨어져 있는 곳이다.
숙소에서 씻고 빨래를 하고 조금 쉬다가 저녁을 먹으러 마을로 내려갔다. 처음 찾은 식당은 오늘 휴무여서 두 번째로 찾은 식당으로 갔더니 예전에 묵었던 공립 알베르게 앞에 있는 식당이었다. 왠지 모르게 반가운 마음이 들어서 부모님께도 예전에 이곳에 묵었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기다렸다.
식사를 아주 훌륭했다. 맛도 있고 많은 리뷰처럼 훈남 웨이터들이 해주는 서빙도 좋았다. 만족스러운 저녁식사를 마치고 천천히 걸어서 숙소로 돌아갔다.
내일만 지나면 산티아고에 입성한다.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한식당에 가려고 했는데 누마루가 일요일과 월요일에는 휴무라는 슬픈 소식을 접했다. 다른 맛있는 음식을 찾아봐야지. 이번에는 산티아고가 우리를 어떻게 맞이해 줄지 기대가 된다. 마지막까지 안전하게 순례를 마치기를.
*숙소 정보: A FONDA DE NORTE
리뷰가 좋아서 순례길과 떨어져 있어도 선택했는데 리뷰만큼 좋지는 않았다. 주인장이 영어는 못하지만 일반적으로 숙박을 할 때 그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이번엔 예약할 때의 뷰와 다르게 도로가 방을 배정받아서 설명하려고 하니 소통이 되지 않아 결국 포기.
북쪽길을 걷는다면 나쁘지 않겠지만 프랑스길을 걷는다면 굳이 이곳까지 올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