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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치영 Jul 01. 2024

걷고 있어도 그리워지는 순례길

70대 부모님과 산티아고 걷기 40

 2022년 6월 18일

 걷기 36일 차: 아르수아 -> 오 페드로우조우


 도로 옆에 위치한 방이었으나 생각보다 시끄럽진 않아 다행이었다. 늘 먹는 요거트와 과일, 빵을 챙겨 먹고 나왔다. 프랑스길까지 꽤 걸어 나가야 했기에 조용한 주택가를 가로질러 걸었다.

 아침부터 오늘이 왠지 마지막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일도 20km를 걸어야 하지만 그래도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날이니까. 벌써 끝인가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숲 속 길로 들어오니 아침 이슬과 안개가 뒤섞여 마치 비가 내리는 것 같았다. 역시 갈리시아 지방. 내일부터 계속 비소식이 있어서 걱정스럽다. 마지막까지 날씨가 맑으면 좋을 텐데. 내 욕심이겠지만.

 작지만 알차게 꾸며진 바에서 쉬었다. 살짝 비 아닌 비를 맞았기에 따뜻한 카페 콘 라체를 주문했다. 두 번이나 봄에 걸었던 나로서는 다른 계절은 어떨까란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다. 가을도 걷기에 참 좋다는데 말이다.

 쉬엄쉬엄 걷는데도 점점 몸이 무거워진다. 지속적으로 쌓인 피로감이겠지. 오늘따라 허리도 아프고. 배낭을 이리저리 메며 위치를 바꿔본다.

 엄마는 한국인아주머니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걸으시고 아빠는 연신 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걸으신다. 분명 금세 다시 그리워질 길. 발걸음이 느려지는 게 당연한, 끝으로 향하는 길목.

<나무 껍질이 벗겨지는 게 특이한 나무>

 구름이 많아서 흐린 건지 나무 숲길로 계속 걸어서 흐린 건지 모르겠던 길. 오늘따라 나보단 부모님 컨디션이 좋아서 다행이다.

 점점 수국이 많이 보인다. 아름다운 장미도 여전히 활짝 피어있다.

 갈 길이 멀지 않아 벌써 3번째 바에서 쉬고 있다. 마치 샐러드 빵에 들어있는 계란 샐러드 느낌의 요리와 샌드위치를 먹었다. 아주 어린 아기와 함께 걷는 엄마와 할머니도 이곳에서 다시 만났다. 정말 젖먹이 아기였는데 늘 엄마 품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순례에는 어느 때가 가장 좋다는 시기는 없는 것 같다. 그저 내가 걸을 수 있을 때 가는 것이 가장 좋은 때인 듯.

 산티아고 표지판이 자주 보인다. 정말 끝이 다가오다보다.

<수국을 좋아하는 부모님>

  수국을 보며 좋아하는 부모님을 보니 역시 봄에 오길 잘했구나란 생각이 다시 한번 들었다. 집에서도 늘 꽃을 가꾸는 부모님이기에 이번 봄 순례길에서 장미와 수국을 많이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차근차근 잘 걸어서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 오 패드로우조우는 화살표만 보고 따라가면 마을을 지나치기 쉽다. 그래서 큰 도로를 만나면 노란 화살표를 따라 건너지 말고 도로를 따라 마을로 들어와야 한다. 까미노 길에서 좀 벗어난 마을이지만 알베르게가 꽤 많은 마을이다. 아마도 오늘 여기에서 묵고 내일 산티아고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겠지.

 숙소에 도착해서 쉬고 있으니 날이 갠다. 역시 덥긴 해도 파란 하늘이 참 좋다.

 우리처럼 2년 정도 순례를 기다린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어제 산티아고 도착 인원이 3,000명이었다고 한다. 정말 대단하다. 이 길을 또 걸은 나도, 엄마도 아빠도 대단하다.

 결국 또 걸었다. 뒤돌아보면 아니 어쩌면 지금부터 다시 그리워질 이 길. 그리우니 또 걸었겠지. 내일이면 끝이라는 것이 실감이 나질 않는다. 그렇지만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것들을 준비하고 걱정해야 하니 분주하겠지. 하나씩, 하루씩 지금처럼 최선을 다해 헤쳐나가자.

 우선은 내일 잘 걸어서 산티아고에 무사히 도착하는 것이 목표.



*숙소 정보: PENSION DIANA

 순례길에서 좀 떨어져 있지만 컨디션은 좋다. 깨끗하고 수영장도 있다. 피자 배달도 되다는데... 아쉽게 주말이라 식당이 쉰다고 했다. 근처에 마트도 있어서 장보기도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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