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생각은 시간이 지나면 변한다

by 안종익

여름 가뭄이 너무 심해 집 옆에 심어 놓은 옥수수가 말라죽을 것처럼 축 처져 있었다. 너무 오래 비가 오지 않아 옥수수 꽃대가 나올 때가 지났는데, 나오지 않는다. 이러다가 올 옥수수 농사는 별로일 것 같았다.

그렇게 기약도 없던 비가 갑자기 잡히더니, 간밤에 제법 많이 내렸다. 비 오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 자정이 다가오는 시간이었다.

뒷집에 농사하는 친구는 그 시간에 비 오는 마당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앉아 있다. 비가 그렇게 반가운 것이다. 집 옆에 심어 놓은 옥수수도 잘 보이지 않지만, 살았다고 서로 이야기하는 듯하다.


간밤에 기분 좋은 빗소리를 듣고, 아침에는 길 떠날 채비를 한다.

또 먼 여행을 떠날 생각이다. 그렇게 간절하게 가고 싶어서가 아니다, 여행도 이제는 마무리해야 할 것 같은 마음에서이다. 시작했으니까 끝을 봐야 한다는 생각과 그 생각은 내가 마음 가는 대로 정한 것이다.

마음은 연륜이 쌓이면 생각이 잘 안 변할 것으로 여겼지만, 아직도 세월 따라 변하고 있다. 수양 부족 탓인지, 심지가 약한지 아직도 내 마음은 흘러서 간다.

나이 들어 꾸준히 글 쓰겠다는 생각은 개점휴업 상태이고, 지금은 여행이나 가면 겨우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뿐이다. 그렇게 몇 년 사이에 하고 싶었던 것도 이제 변하고 있다.

아침에도 아직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고, 간밤에 내린 비에 앞개울 물이 많이 불었다.

KakaoTalk_20250722_093911335_03.jpg?type=w1

비 내리는 집과 옥수수를 뒤로하고, 길을 나섰다.

KakaoTalk_20250722_093911335_02.jpg?type=w1


길은 우연히 해파랑길을 걷고서, 이제 걷는 것은 마쳤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유럽 여행에서 언어가 통하지 않아 답답하던 때, 만난 것이 스페인 ”산티아고 길“이었다. 거기서 다시 걸으니 마음도 편안하고 즐거움을 느꼈다. 그 여행을 마치고는 다시 떠난 것이 히말라야 트레킹이었다. 그리고 돌아와 남파랑 길을 다시 시작하니까 그 길도 다 걷게 되었다. 그러다가 서해랑 길을 시작하고는 코리안 둘레길을 다 걷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시작했으니까 끝을 봐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 사이에 제주도 올레길도 걷고, 서해랑 길을 이어서 평화의 길까지 모두 걸었다. 이제 걷는 것은 끝을 보고, 나름 걷기는 마친 것이다.


걷는 길에서 여러 생각과 나를 내려놓겠다는 거창한 생각으로 시작은 했지만, 그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길에서 느낀 생각은 세상 사는 것이 힘들고 무서운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나와 등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조심하지 않고 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살아가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다음에 생각한 것은 인생을 사는 데는 정답이나 정해진 매뉴얼이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살아도, 모두가 본인만이 살아가는 길이라는 것이다. 그 방향은 살아가면서 정해지고 그것을 사는 것이다.

또 살아간 사람이나 살아온 사람들이, 잘 살았다는 사람과 못 살았다고 보이는 사람의 차이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을 자세히 보면, 각자의 그것이 소중하고 우열을 가릴 수가 없다.

그리니 내가 하고 싶은 것 하면서, 마음 가는 대로 살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남을 의식하면서 그렇게 살았고, 살아질 것이다. 물론 우리는 다른 사람을 의식하는 DNA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어느 책에서 봤는지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세속을 등진 도인 이야기가 있었다.

세상과 교류하지 않고 홀로 세상과 떨어져서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도인이 마을이 보이는 멀리 떨어진 곳에 홀로 살아갔다. 세상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관심도 받지 않으면서 살아가려는 생각이었다. 어느 날 마을에 큰불이 나서 마을이 모두 타버리고, 마을 사람들은 그곳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모두 떠난 것이다. 홀로 떨어져 살던 도인도 마을은 별로 관심이 없을 것 같았는데, 그 도인도 떠난 사람들을 따라 마을이 보이는 곳으로 다시 거처를 옮겼다는 이야기이다. 도인의 자세나 태도에서는 관심이 없어 보였지만, 도인의 마음도 다른 사람의 관심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걷기를 하면서도 세계여행은 늘 다녔다. 먼저 유럽 여행을 하면서 여행에 익숙함을 터득했고, 다음으로 간간이 아시아를 다니면서 앞으로 세계여행은 어려운 곳부터 가려고 생각했었다. 그러고는 힘이 든다는 중남미를 다녀오고, 아프리카도 다녀왔다. 모두 자유여행으로 다녀온 것이다.

이제 북미와 오세아니아가 남은 것이다. 이렇게 큰 준비 없이 떠나온 것도 세계여행도 시작했으니까 끝을 보고 싶어서 나선 것이다. 이제 그렇게 오래지 않아 세계여행을 마칠 것이다. 세밀하게는 아닐지라도 다녀온 것으로 생각하고 싶다. 그리고 또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세월이 흐르면서 생긴 것이다.


걸으면서, 여행하면서 아는 지인과 연락되는 일이 있었다. 그때마다 마음도 정리하고 내려놓으려 다니고 있다고 했었다. 그러면 그 지인은 ”너는 아직도 내려놓을 것이 있느냐"라는 소리도 자주 들었다. 그렇지만 내려놓는 것이 힘들고, 내려놓을 수도 없을지 모른다.

이제는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다시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것으로 생각이 변했다. 내려놓을 생각을 내려놓은 것이다.

걷기도, 여행도 대강 끝을 본 것으로 정리하고, 또 글쓰기도 별로 흥미를 잃었고, 이제 다른 일을 찾으려고 열심히 머리를 쓰고 있다.

다른 새로운 일을 가지고 살아가려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새로운 것을 찾아서 가는 것이다. 그냥 그렇게 마음이 가는 대로 사는 것이 인생이니까 그런 것이다. 새로운 것에서는 어떻게 하겠다는 각오나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어제 출발한 여행이 다시 낯선 땅에 내렸다. 여기 낯선 밴쿠버 공항에서 큰 장승을 만났다.

KakaoTalk_20250722_093911335_01.jpg?type=w1

이 장승을 여기서는 토템폴이라고 부르고, 캐나다 서부의 원주민들의 문화라고 한다. 토템폴은 종교적인 의미가 아닌 가족이나 친척을 의미하고, 외부인은 환영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이제 또 다른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범사에 감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