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장난감이 신기해

투박함과 민감함의 하모니

by 진주

노을 무렵, 스마트폰을 처음 받아 들었던 날, 어르신은 그 매끈하고 예민한 기계를 한참 들여다보셨다. 손에 쥐어보니 낯설고 어울리지도 않는다고 느끼셨는지, “이거시 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여. 난 이런 건 못혀!” 하시며 손을 홱 떼셨다. 그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르신 세대에게 기계는 늘 조심해야 할 ‘새 문물’이었다. 화면 속에 자신의 얼굴이 비친다는 것 자체가 어색하고 경계스러웠을 게다. 그래도 나는 조금이라도 편해지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며칠에 걸쳐 하나씩 천천히 기능을 알려드렸다. 어르신을 가르치다 보면 가끔 나 자신도 보인다. 요즘 나 역시 새로운 기술 앞에서 예전만큼 빠릿빠릿하지 않고, 무언가 놓치는 느낌이 종종 든다. ‘20년 후의 내 모습도 이러지 않을까.’ 그 생각이 스칠 때면, 이 느린 배움의 시간이 이상하게도 미래의 나를 앞당겨 연습하는 시간처럼 느껴지곤 한다.

처음엔 터치하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손가락이 살짝 닿기만 해도 화면이 휙 바뀌자 “와, 이리 예민혀!” 하며 놀라셨고, 나는 “살살, 살짝만요” 하며 옆에서 조심스레 도와드렸다. 기술은 앞서 가는데, 어르신의 시간은 그 앞에서 자꾸 늘어진다. 한 번의 터치를 익히는 데 하루치의 집중이 필요하다. 며칠은 헤매고 짜증도 나셨지만, 한 달쯤 지나자 전화를 걸고 받는 일은 제법 능숙해지셨다.
“에구, 폰만 봐도 속이 울렁거렸는디, 이젠 괜찮다잉.”
그 말에 나도 괜스레 뿌듯해졌다.

전화가 익숙해지자 문자 교육을 시작했다. 안 읽은 문자가 무려 138건이나 쌓여 있었다. “세상에, 이걸 언제 다 보냐. 나는 한 번도 안 눌렀는디?” 하시며 눈이 동그래지셨다. 문자를 확인하는 길은 늘 미궁이었다. 홈으로 돌아가다 딴 화면으로 가고, 글자가 작다며 다시 확대를 부탁하셨다. 그래도 몇 번을 반복하니 문자 읽기 정도는 가능해졌다. 그 짧은 문장 하나를 읽어내는 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 시간만큼 어르신의 하루는 오히려 또렷해졌다.

하지만 카카오톡은 아직 복잡한 숙제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대화하고 알림이 쌓이면 흐름을 따라가기 어렵다. 그래서 자녀가 보낸 사진이나 소식은 결국 전화로 다시 들으시거나, 매일 오시는 요양보호사 선생님을 통해 전달받곤 한다. 디지털 시대라 해도 어르신에게는 결국 사람이 전하는 소식이 가장 따뜻하고 정확하다.

웃음이 터졌던 순간도 있다. 처음 영상통화를 연결했을 때, 화면 속 자신의 얼굴을 보시더니 “아이고, 거울보다 못나게 나와 불었네!” 하며 배꼽을 잡고 웃으셨다. 막내딸이 화면에 나타나자 어르신의 얼굴은 금세 환해졌다.
“엄마, 얼굴 좋아졌어요. 근무 중이라 오래는 못 하고… 저녁에 또 영상통화 해요.”
“그래야 쓰겄다잉.”
짧은 대화였지만, 그 순간 스마트폰은 어르신에게 또 하나의 창문이 되어 있었다.

스마트폰과 함께 다채널 TV도 설치되었다. 그 뒤로 어르신의 하루는 조금 달라졌다. 세상 풍경이 방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동남아 시골 가족의 일상을 담은 채널을 가장 좋아하셨다. 어린 시절 시골집이 떠오르는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신다. 하루에 한 번은 꼭 챙겨본다며 “옛날 생각나서 좋다”라고 웃으신다. 그 미소가 오래 남았다.

기술은 빠르다. 어르신의 속도는 그보다 한참 느리다. 그런데 그 느림 속에는 내가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감정들이 숨어 있다. 새로운 걸 배우는 일은 젊은 사람만의 몫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증거라는 것. 어르신의 작은 변화가 그 사실을 조용히 일깨워 준다.

스마트폰은 이제 ‘소리 나는 전화기’가 아니다. 누군가의 안부가 도착하는 창이고, 그리운 얼굴이 나타나는 거울이며, 세상을 다시 여는 문이다. 그 문 앞에서 조심스레 한 걸음 내딛는 어르신의 모습은, 시간이 이미 많이 흘렀다고 해서 배움이 끝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잔잔한 빛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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