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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남북녀 Apr 17. 2024

기록에 대한 반성

입 나온 개구리

입 댓 발 나온 개구리다. 모든 일에(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에) 내 특수한 상황을 연결시킬 수 없는 것인데 지나간 기록을 들춰보면 우물 안에서 살고 있다.


 “이 소설의 독자는 이 고통들이 부당하며, 깊이 뿌리내리며 인간의 존엄성을 모욕하는 조건을 만들어내는 것을 볼 것을 요구받는다.”                                                                                                         <감정의 격동>2 p739


연민의 감정을 설명하며 비극에서 보여주는 것을 말하기 위해 마사 누스바움은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 조드 가족을 예로 든다. 주거지, 음식, 시민 사회 등 일상적 삶의 기본 조건도 잃어버리고 자연적, 인공적 재난 앞에 선 조드 가족

 

아, <기생충>도 이런 관점이었을 텐데. 인간의 존엄성을 무너뜨리는 현대의 가난과 자기중심적인 고급문화의 저급함을 드러내는. 입소문을 듣고 기대감에 가득하여 영화를 보고 난 후 <기생충>은 가난을 모르는 사람이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가득하여 불쾌감이 일었다. 내가 아는 가난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이제 와 생각하면 모르는 건 나였다. 나는 내가 경험한 가난에 대해서만 아는 사람이기에 보편적으로 접근한 가난을 거부하려는 마음을 품었다. 적의에 가득 차서

 

다음으로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낀 구절은


 “에우리피데스의 <트로이 여인들> 같은 가장 암울한 경우에서 드라마 전체는 무력감을 구성하고 있다. 여성이 하는 것은 아무것도 자신의 운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조그만 힘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감정의 격동>2 p773

 

전에 적어놓은 <82년생 김지영>이 생각난다. 김지영이 가난하지 않다는 이유로 나는 김지영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김지영이 가난한가, 가난하지 않은가에 상관없이 책은 이제까지 여성이 처했던 폭력, 불평등, 사회적 위치, 가정 내에서의 희생 등을 보편적 시각으로 접근한다. 나만이 경험했던 일들로 오히려 나는 여성의 보편적 위치에 대해 눈 감는다. 어쨌든 나보다는 나았잖아요, 살만했잖아요. 고집부리는 아이 같은 자세를 유지한다. ‘나’라는 우물 안에서 나오려는 시도는 하지 않고 세상이 잘못됐다고, 알지 못한다고 한탄한다.

 

그런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그런 일이 있었고(원하지 않으나 벌어진 통증을 일으키는 기억들) 기억이 고정되듯 생각도 멈춰 정신적 성장을 저해한다. 그 자리를 떠나려 하지 않으며 무기력한 아이가 되어 무너진 곳에 여전히(언제까지나) 서 있다. 자기 연민이라는 함정은 덤이다. 개인적 상황이 보편적 자리를 차지한다.

 

스치는 바람에 나무는 통증을 느낄까. 이 통증을 나쁘다고 생각할까. 알 수 없다. 서 있기 위한 치열한 노력이라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마사 누스바움 <감정의 격동>2 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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