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던 마을이 파헤쳐지고 망치로 부수어지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안다.
인간시장 같은 드라마의 한 장면을 혼자서 오롯이 바라본다.
막는 사람 파괴하는 사람 구경하는 사람 산 중턱에서는 한 무리로 보인다. 그저 뭉쳐진 사람의 무리 속
극한 상황에서는 극한 사고도 찾아오기 마련인데 십 대 초반인 내게 온 것이라면 슬픔이다. 귀신 같이 들러붙는 슬픔
왜 원망이 아니라 슬픔이었는지 알지 못한다.
쾅쾅 울리는 포클레인도 파괴하러 막 도착한 건장한 남성무리까지 모두가 슬픔이었다.
거리청소를 위하여 길목의 상인은 내쫓기고 비닐로 이루어진 한 귀퉁이 마을은 파괴된다.
털도 나지 못한 새끼 쥐들은 파헤쳐진 땅 구덩이에서 찍찍 울었다. 아무도 듣지 않는 울음 속 눈 뜨지 못한 것들 위에 임한 재앙
어떻게든지 살아보려는 몸부림은 우연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삭제된다.
먼 곳에서 온 소중한 편지를 어둠 속으로 흘리듯이 놓아두리라 무엇이든지
물질은 무너지고 허물어진다. 돈 떼먹고 발 빼는 사장을 만났을 때도 사람은 그저 그런 존재였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슬픔에 슬픔을 얹지 않으려 밤길을 숨죽이고 걷듯이
찾아낼까 싶은 두려움 속에서 숨바꼭질을 하듯이 긴장하고
내 손을 들이밀지 않으리라 진흙을 손에 묻히지 않으리라
결계는 단단해져 간다.
우리는 자신이 알든 모르든 강 속에 있다. 이 같은 사실에 맞서 자신을 강력히 방어하는 사람들은 단지 신경증 환자일 뿐이며, 자신을 강력히 방어하지 않는 사람은 그 흐름을 타고 그냥 흐르면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또 자신이 수많은 의견과 망상의 희생자가 되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