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북남북녀 Sep 18. 2024

하루 만에 읽은 <파친코>

일상과 읽기


도서관에 가는 준비


홍차 티백을 미니 사이즈 텀블러에 넣은 후 티백이 잠길 정도로만 뜨거운 물을 붓는다. 진하게 우려낸 후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낸다. 우유를 레인지에 데우면 좋겠지만 아이 유치원 갈 준비도 해야 하니 차가운 우유를 텀블러에 붓는다. 베이지색, 옅은 갈색이 된 미지근한 밀크티(라고 부를 수 있다면)를 한 모금 맛본다. 순하다, 너무 순한데. 도서관에서 잠을 깨기 위한 용도로는 독한 구석이 있는 커피가 나을까. 보통은 믹스 커피 한 봉을 텀블러에 넣고 물을 적게 어 가져가지만, 오늘 아침에는 위가 아팠다. 막연한 위통에 손을 쓴 것이 밀크티다.


자주 앉는 창가 자리에서 보이는 풍경


솔방울을 매단 나뭇가지가 흔들린다. 폭풍까지는 아니더라도 격렬한 손짓 정도로는. 완만하게 뻗은 능선에 흰 구름이 걸리고 연한 푸른색 하늘이 도서관 블라인드에 가린다. 멀리 보이는 도로 위 차들이 장난감처럼 움직이고 다닥다닥 붙은 건물이 붉고 희게 자리한다.


우리는 인생의 사건들을


“우리는 인생의 사건들을 자기 자신과 세상에 대한 지식으로 승화시킨다"라는 구절을 읽은 후 떨어지는 눈꺼풀을 위로 올리기 위해 <파친코 1>를 펼친다. 한동안 심리학 책 위주로 읽었더니 소설책에 설렌다. 눈꺼풀이 위로  떠지는,


<파친코 1>을 읽고


1953년, 1월 오사카 이야기로 <파친코 1>이 끝난다. 하원 시간이 되어 아이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온다. <파친코 2>을 읽다 보니 건조대에는 빨래가 그대로고 아이 학원 시간이 임박했다. 간단하게 볶음밥을 할 생각이었는데 아이가 시간이 없다고 한다. 그럼 라면 어때, 했더니 학원 가지 않는 둘째 아이마저 좋아! 외친다. 다이어트를 위해 저녁은 건너뛰겠다는 남편까지 라면이야? 그럼 먹을까. 먹방을 찍듯이 입안 가득 라면을 넣는 둘째와 라면 국물에 밥 반 공기 말더니 엄마, 나는 이게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 흐뭇한 첫째


<파친코 2>을 읽다


설거지를 끝내고 아이들을 씻긴 후 침대에 누워 <파친코 2>를 계속 읽는다. 잘 시간이 넘었지만 양호하다. 취침 시간이 더 늦어질 뻔했다. 눈을 감는데 선자와 한수가 떠오른다. 일본인 아내가 죽자 선자에게 청혼하며 결혼을 원하는 줄 알았다는 한수와 늙은 육체로 젊은 시절의 한수 꿈을 꾸는 선자. 애도하지 못한 사랑은 멈춰있다. 나아가지도 물러나지도 못하면서


빗방울이 유리창에


빗방울이 유리창에 부딪친다. 타다닥 타닥, 톡톡

네 시에 일어나 김밥을 말려고 했는데 다섯 시에 눈이 떠졌다.

꿈이 길어 줄곧 깨어 있었던 느낌인데 아, 김밥하고 정신이 났다.


승화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살아남는 게 인생이라면 선자와 한수는 오래 살아남았다. 열망을 이루기보다 생존에 몸부림쳐야 하는 것은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인생의 사건들을 자기 자신과 세상에 대한 지식으로 승화시킨다.


티모시 윌슨 <내 안의 낯선 나>265p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이런 일 한 두 번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