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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남북녀 Sep 11. 2024

이런 일 한 두 번쯤

안녕하세요, 선생님


(이런 일 한 두 번쯤은 고운 거라고 누가 말했더라)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는 이제 당신을 만날 일이 없는 동네로 이사 왔답니다. 집 뒤로 등산로가 있고 나무가 많은 평화로운 마을입니다. 이사 오던 해에 물놀이터가 조성되면서 여름이면 솟구치는 물줄기에 아이들의 웃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 물놀이터가 올해로 3년째인가 봐요. 아이는 이곳에 와서 유치원을 거쳐 초등학교에 입학했지요. 이사 오기 전에 당신을 만난 적이 있으니 그 3년 전 만남이 우리의 마지막이었네요.


뱃속의 있던 아기는 세상에 나와 허리를 겨우 가누며 유모차에서 자고 있었고, 아이는 그네를 타고 있었지요. 다른 아이들이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가방을 메고 지나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요. 월요일이라 알록달록한 낮잠 이불까지 손에 든 엄마들이 바쁜 걸음으로 어린이집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열 시쯤 됐을까요, 미끄럼틀과 그네를 오가며 혼자 외로이 노는 아이를 집에 가자고 불렀습니다. 유모차에서 잠을 자던 아기가 깨어 칭얼거리기 시작했거든요. 집으로 가서 분유를 먹이고 다시 나오자고 아이에게 말하고 있었지요. 그때 아이들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어요. 두 명씩 짝을 지어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이 차례차례 놀이터로 들어왔지요. 놀이터는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습니다. 짧은 커트머리의 당신은 싹싹하게 저한테 먼저 말을 걸었어요. 아이가 어린이집에 안 다니나 봐요. 작년에 보냈는데 안 간다고 해서 집에 있어요.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저 역시 대답했습니다. 제 대답에 당신의 눈빛이 흔들렸어요, 당황의 눈빛이라고 하면 저의 착각일까요. 그네 위 저의 아이를 본 당신은 무언가 떠오르는 듯했고 저와 거리를 두며 서 있다가 아이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당신은 아이들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향했지요. 맞아요, 작년에 아이는 당신 반이었어요. 등원한 지 3일째 되는 날 얼굴에 상처를 입으며 그만두게 되었지만요.


당신은 아이가 어디에 부딪혔다고 했어요. 점심시간에 밥을 먹지 않고 혼자 돌아다니다가 교실 중간에 있는 기둥에 부딪혔다고 말이지요. 그 얘기를 듣는데 뒤의 말은 들리지도 않았습니다. 죄송하다고, 아이가 집에서도 밥을 잘 먹지 않는다고 죄송하다며 우는 아이를 안고 서둘러 원을 나섰습니다. 그런 제 등 뒤로 당신은 월요일은 낮잠 이불을 가지고 오세요, 했어요. 아이가 잘 적응하니 낮잠을 재워도 괜찮겠다면서요. 당신은 저의 볼록한 배를 본 걸까요, 뱃속 아기로 인해 어느 정도 큰 아이는 잠깐이라도 맡기고 싶은 어머니의 심정을. 미심쩍더라도 지나가겠지, 저 어머니는 임신 중이라 꼭 맡길 필요가 있을 테니라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낮잠 이불은 미끼였습니다. 어머니가 아이의 상처를 보지 않게 하려는 미끼 말이지요.


아이는 그네 위에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넋이 나갔다는 표현이 있다면 꼭 맞는 그런 표정이었습니다. 놀이터만 오면 뛰어다니는 아이가 아무것도 할 게 없다는 무기력한 표정으로 멍하니 앞만 보며 있었습니다.(어린이집에서 너무 울어 탈진 상태일 수 있었다는 것을 지금은 압니다.) 그런 아이를 바라보는데 그때야 눈 밑 광대 쪽 상처가 보이더군요. 네 맞습니다. 낮잠이불을 가져오라는 당신의 말은 유혹이었습니다. 시시티브이를 보자고 하면 어린이집에 다시 보내기 힘들어지겠지, 조금 지켜보는 게 맞지 않을까. 그래도 아이 얼굴 상처는 확인해 봐야 하잖아의 갈등 속에서 말이지요. 아이의 표정이 저를 밀었습니다. 넋 나간 듯한 아이의 얼굴이 말이지요. 어딜 가든지 웃음을 잃지 않는 아이인데 어른과 비슷한 괴로움의 흔적이 아이의 얼굴에 그늘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시시티브이를 확인하고 한동안 밤에 잠이 오지 않았아요. 눈을 감으면 당신의 머리채를 잡아 흔들고, 우리 아이에게 달려드는 그 남자아이를 똑같이 밀고 때리고 발로 밟는 어두운 상상이 이어졌습니다. 그 부모를 불러 세워놓고 대체 아이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거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싶었어요.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을 듯했습니다. 분노의 기운에 뱃속 태아가 어떻게 될 듯하여 애꿎은 침만 삼키고 또 삼켰습니다. 분노의 불길을 잠재우고자 차가운 물만 벌컥벌컥 들이켰습니다.


등원한 첫날부터였습니다. 밟고 잡고 밀치고 때리고. 남자아이는 사나운 동물처럼 우리 아이 뒤를 쫓으며 괴롭혔습니다. 당신은 아이가 울음을 터트리면 그때야 느릿느릿 다가와 거칠게 아이를 일으키거나 울음이 그칠 때까지 한쪽에 세워두고 다른 곳으로 가버렸습니다. 아이가 없는 듯 행동했지요. 다른 아이들 역시 그런 상황에 익숙한지 누가 울든지 아니든지 교구장 앞에서 장난감만 만지작거렸습니다. 아이는 울고 또 울더군요. 아무도 봐주는 사람이 없는데도. 당신이 말하는 적응이라는 것이 그 울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느 순간 아이의 울음이 체념으로 그치는 날이 왔겠지요. 이 세상이 괴로운 곳이라는 것을 일찍 터득하면서요. 아이는 맞서 싸우는 사나운 짐승으로 변하거나 어디서나 촉각을 곤두세우는 불안한 짐승이 됐겠지요. 다 포기하고 때리는 대로 맞으며 아무것에도 관심을 드러내지 않는 무기력함이 아이를 덮쳤겠지요.


당신은 잘 못한 것이 없어요. 당신 역시 피로했을 뿐입니다. 스무 명이 넘어가는 아이들의 소란 속에서 당신의 에너지는 엄마들에게 인사하는 것으로 모두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싹싹하던지요, 또 얼마나 친절하던지요. 사람을 잘 알아본다고 생각하던 저 역시 당신을 믿었습니다, 신뢰가 갔지요. 뒤에서 다른 행동을 할 사람은 아니다, 생각했어요. 믿은 사람이 바보가 되고 피해 입은 사람이 숨어야 한다는 것을 당신으로 인해 알았지요.(아는 엄마들 몇몇에게 이야기했던 적이 있습니다. 엄마들은 처음에는 위로하는 듯하다가 설마로 바뀌더니 예민한 엄마라고 말하더군요. 그냥 믿고 보내야 해요, 우리가 집에서 봐도 아이들한테 손댈 때가 있는데 그 많은 아이들을 보는 선생님도 사람인데요. 그래서 일찍 어린이집에 보내야 해요, 그래야 아이가 살아남는 법을 배워요, 너무 순해도 안 된다니까. 평온을 깨는 일을 받아들이기보다는 타인의 예민함으로 생각하는 것이 쉬운 법이지요.)


아이는 당신을 잊었습니다. 말간 눈으로 왜 자신은 어린이집을 가지 않았냐고 물어보곤 하지요. 저 역시 당신을 잊었습니다. 어두운 상상 역시 지겨울 때가 오기에 저 멀리로 보내고 편안하게 눈을 감습니다. 당신을 만나면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인사할 수 있는데 당신은 제가 누구 인지 아는 순간 또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돌리겠지요. 이것 역시 일종의 벌 일 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당신을 잡고 흔들지 않더라도 당신의 행위 자체가 당신을 어두움으로 이끌겠지요. 행복하세요, 진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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