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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남북녀 Nov 13. 2024

아직도 내리고 있는 눈 속에

실비아 플라스

신은 내게 007 가방과 모양이 비슷하지만

그것보다 크고 무거운 것을 주었다.

필요한 시기가 오면 열어보리라,

밝게 빛나는  아름다운 것들이 비처럼 쏟아지리라

괴로움이 내 목젖을 공격할 때면 이마에 튀어 오르는 파란 혈관을 누르며

괜찮아, 버틸 수 있어.

찢어진 바지가 피 묻은 신발이 푸른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때

틀어막은 비명을 막을 수 없는 순간

크고 무거운 가방을 열어젖혔다.

검은 벨벳 사이사이 고개를 내미는 여러 마리 

길고 가느다란 머리를 들이밀며 쉭!쉭!쉭!

언젠가 썩어가는 나뭇잎 속을 기던 누르스름한 뱀 한 마리

벽 위를 타고 나를 향해 혀를 날름 내밀었지

피리를 손에 들어야 해,

이것은 신의 선물

존재를 죽여 가는 생의 선물

‘아빠, 아빠, 이 개자식’이라고 실비아 플라스는 노래하지만

이 끈질긴 것들을 조련하여

나는 다시 살아날 거야, 



펼쳐진 실비아 플라스의 인생 마지막 시기에는 시인 테드 휴즈가 있었다. 남편이었던 테드 휴즈의 외도로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별거상태에 돌입했던 실비아 플라스는 아이들 방에 가스가 새어나가지 않게 작업(테이프) 한 후 아이들이 깨면 먹을 간식을 준비해 놓고 가스 오븐에 머리를 넣었다. 시인이었던 그녀는 이 상실의 시기에 왕성한 창작력을 나타내며 시를 썼다고 한다. 시의 마침표처럼 시인의 죽음이 인쇄되었고 시의 성공과 더불어 남편이었던 테드 휴즈가 여성들의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것도 당연한 결과였다, 죽음이 이루어 놓은 것들이라면

     

테드 휴즈에 의하면 실비아 플라스는 여덟 살 때 당뇨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영향으로 언제나 죽음 가까이 있었다.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죽음으로 다가섰다 물러서기를 몇 번, 죽음의 그림자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인간의 목덜미에 깊숙하게 이빨을 박아 넣었다. (죽음의 연쇄작용이라면 실비아 플라스의 아버지, 오토 플라스에게서 실비아 플라스에게로 그녀의 아들에게로 이어졌다. 테드 휴즈의 외도상대였던 아씨아 웨빌 역시 테드 휴즈와의 사이에서 난 딸을 데리고 실비아 플라스와 같은 방법으로 생을 마감한다.)

    

테드 휴즈는 계속 살아나갔고 암에 걸려 죽기 전 실비아 플라스와 자신의 이야기를 시로 엮은 <생일 편지>를 세상에 내놓는다.      


그대가 사후의 삶을 모르는데

내가 무얼 얘기할 수 있을까?

     

우리 아들의 눈은 그대처럼 슬라브계 아시아인 특유의

아래로 처진 눈 주름이 있어서 우리를 불안하게 했지만

곧 완벽하게 그대의 눈을 빼닮게 되었지.

아들의 두 눈은,

내가 흰색의 어린이용 식탁에 앉혀 음식을 먹여주고 있을 때,

순수한 고통의 가장 단단한 물질인

눈물 젖은 보석이 되었어.

슬픔에 찬 아들의 고운 두 손은 얼굴을

젖은 천처럼 계속 쥐어짜고 눈물을 모조리 빼내었지.

그러나 입은 어머니인 그대를 배반하고 있었어--

입은

그대보다 오래 살아남은 생명으로부터 나온

허깨비 같은 내 손에 든 숟가락의 음식을 받아먹었지.

    

날마다 누나의 얼굴은

볼 수도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상처로

더욱 창백해져갔어. 내가 그 아이에게 청색 베네통 재킷을 입히고

매일 상처를 치료했지만 말이야.

내 몸은 밤잠을 이루지 못했지.

교수형 당한 사람처럼,

목의 신경이 뿌리째 뽑히고

왼쪽 어깨에 두개골의 하부를 연결시키는 근육의 줄기가

어깨로부터 떨어져나가 마디처럼 수축된 채--

나는 내 영혼이 목 근육 아래에 있는

고리에 매달려 있는 듯한

고통을 당했지.

    

생명력을 잃은 채

우리 세 식구는 각각의 침실에서

깊은 침묵을 지켰지.   

  

우리는 늑대들의 울음소리로 위로를 받았어.

그해 2월과 3월, 달빛이 빛날 때

동물원이 가까이에 온 셈이었지.

그곳이 도시인데도

늑대들은 우리를 위로해 주었어. 매일 밤 세 번

몇 분간을 연속해서

늑대들은 노래를 불렀지.

놈들은 우리가 누워 있는 곳을 아는 듯했어.

들개와 브라질산 갈기털이 무성한 늑대들이

북미산 회색 늑대 무리와 더불어

함께 목소리를 높여 울부짖었지.

늑대들은 길게 울며 우리를 들어올렸어.

놈들은 우리 마음에 상처를 주고

그대를 위해 울부짖고 우리를 위해 슬퍼하며 우리를 사로잡고,

울부짖는 소리 속에 우리를 엮어넣었지.

우리는 그대의 죽음 속에 누워 있었어.

이미 내린 눈 속에, 그리고 아직도 내리고 있는 눈 속에.  

   

그때 내 몸은 숲 속의 늑대들이 두 어린아이를 위해 노래하는

전설 속의 얘기로 빠져들었지.

아이들은 잠을 자면서

자기들의 엄마의 시신 옆에서

고아의 신세로 변해 있었어.     


<생일 편지>에 수록된 <그대 죽은 이후의 삶> 테드 휴즈          


죽음이 이루어 놓은 것과

죽음이 빼앗아 간 것,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인간의 선택은    


(이 끈질긴 것들을 조련하여 살아나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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