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겠지만 전혀 관련 없는 책 두 권 귀퉁이에서 노동에 대한 필요성을 읽는다. <폭군 아버지, 히스테리 엄마>는 저자가 다른 이들의 피해와 명예 훼손을 고려해 익명으로 글을 써야 할 정도로 신랄하다(책장 넘기기가 겁난다.) 피해망상, 우울증, 히스테리 환자로 어머니를 기술한다면 성격장애자, 가정폭력범, 독재자, 물질만능주의의 화신, 괴물로 아버지를 표현한다. 부모에 의해 영혼까지 파괴됐다는 저자는 손가락질을 당하더라도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여성을 중산 계층의 허례허식을 포기 못해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며 자식을 희생양 삼는 어머니와 비교한다.
론 파워스의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는 조현병이 발병한 저자의 아들들(딘, 케빈) 이야기와 정신질환에 대한 역사, 대처, 약리, 제도 등의 전반적 사항들이 폭넓게 서술되어 있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관심을 보이며 뛰어난 기타리스트로 성장하지만 조현병이 발병하며 둘째 아들 케빈은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글쓰기에 재능을 보이며 명석했던 첫째 아들 딘 역시 조현병의 증상을 앓는다. 딘은 힘겨운 투병기를 거치며 약의 도움을 받아 잘 지내는 듯 보였으나 사랑하는 여자와 이별을 겪으며 정신적 위기에 봉착한다. 이 추락의 시기 딘은 왜 손으로 일하는 법을 하나도 가르치지 않았냐고 아버지를 힐난한다.
<폭군 아버지, 히스테리 엄마>와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는 자식의 처한 상황이 다르고 부모의 성향 역시 다르지만 중산층이라는 것과 자식 세대가 정신 질환을 앓는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폭군 아버지, 히스테리 엄마>는 중산층의 틀(남들로부터 대접받는 틀)을 유지하기 위해 겉모습에 치중한다. 자식의 학업도 이에 속한다. 자식의 지적인 성취를 위하여(명문대) 정서적 물리적 학대를 한다.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의 저자 론 파워스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저널리스트이다. 아내는 과학 교수다. 부모는 아들들의 재능을 귀하게 여기며 꽃 피워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으나 이 집안의 분위기 역시 지적인 일에 대한 요구가 일상적 노동에 대한 요구보다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손으로 일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아들 딘의 불평을 생각해 보노라면
연예인들의 일상이 텔레비전에서 펼쳐질 때 화려한 집이나 값비싼 물건과는 상관없이 그 공간에서 사람의 모습이 일하는 모습이면 화제가 되기도 한다. 청소하고 요리하고 주변 정리 정돈을 하며 자신을 위하여 땀 흘리는 모습일 때 화면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에게서는 자신의 삶과 대면하고 있는 건강함이 비쳐 나오는 듯싶다.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의 부모는 서른다섯까지 살아남은 첫째 아들 딘을 독립시키며 요리를 가르친다, 손으로 일하는 법을
<폭군 아버지, 히스테리 엄마> 김기자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 론 파워스
어떤 사람이 그 시대가 띠는 정치적 스펙트럼을 두루 모른다면, 여러 나라 사이의 기초적인 상황과 다양한 발전 단계와 전통, 생산 유형과 단계, 기술, 사고방식 등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간단히 말해 그 사람은 이 분야에서 활동할 방법과 형세를 살필 방법을 모르는 거예요. 그 사람은 결국 자신의 눈앞에 단 한 가지만, 온통 검은색만 보이게 만들려고 세상을 산산조각 내는 것 말고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어요. <한나 아렌트의 말> 14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