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그건 아닌데.....”형희 님의 고개가 힘차게 도리질한다. 혼잣말을 하다가 가까이 다가서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고 병동 복도에 몸을 바짝 기댄다. 길거리를 배회하다 주민들의 신고로 폐쇄병동에 입소한 형희 님은 넓지도 않은 식당 겸 로비에서 걷는 것이 하루 일과다.
“저기요, 내 나이가 몇이에요?” 하루에도 몇 번씩 간호사실로 찾아와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숙자 할머니만이 종종거리며 왔다 갔다 하는 한산한 주말 오전
“선생님, 형희가 화분 깼어요.” 다급한 혜영 님 목소리가 병동에 울려 퍼진다. 로비로 나가니 창틀에 올려진 철쭉 화분 앞에 형희 님이 서 있다. 손으로 헤쳤는지 화분 밖으로 흙이 나오고 붉은 꽃송이와 이파리 한 두 개가 바닥에 떨어져 있다.
“아이고 형희 님, 왜 예쁜 화분을 건드리고 그래.”
“심심하니까 그렇지, 나는 언제 나가냐고.”
“또 그 소리. 심심하면 텔레비전을 보던가 병실로 가서 좀 쉬지 이게 뭐야. 바닥에 흙 다 떨어뜨리고”
“몰라, 나도.” 밖으로 나가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힌 형희 님의 눈이 날카롭다. 각질로 하얗게 덮인 얼굴이 창가를 향한다.
“오늘 기분 안 좋은가 보네, 좀 쉬자.” 형희 님의 팔을 붙잡는다. 오랜 병동 생활로 병원 생리에 대해 알고 있는 형희 님은 별다른 저항은 하지 않는다. 저항을 한다면 직원들이 몰려오고 억지로 끌려 나가는 볼썽사나운 광경이 연출된다. 친근한 반말로 안부를 물으며 편안한 관계를 유지해 온 것도 이런 때는 도움이 된다. 의심이 많은 분들이라 관계가 좋지 않을 때는 행동하게 하는 것이 어렵다. 밤근무 간호사가 혈액검사를 위해 채혈을 하는데 병동 환자 두 분이 자신을 미심쩍게 바라보며 팔을 내주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이분들을 움직이려면 신뢰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친구처럼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서 일인용 침대가 놓인 격리실로 향한다. 같이 일하는 동료가 시트를 깔아 형희 님 맞을 준비를 이미 해두었다. 격리실에는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용도로 만들어진 깨지지 않고 열리지 않는 사각 유리창도 존재한다.
형희 님을 침대에 눕히고 헝겊으로 만들어진 끈을 가져와 손목과 발목을 침대 틀을 이용하여 묶는다.
“좀 쉬고 있어, 주사도 한 대 맞자.” 형희 님은 대답 없이 송아지 같은 눈만 끔뻑인다.
안정제 앰플을 따서 주사기에 채운 후 형희 님의 바지를 내리고 주입한다. 바지를 올려 옷매무새를 바로 한 후 낡고 해진 푸른 담요를 묶인 몸에 덮는다. 격리실 들어왔을 때 기저귀도 채웠으니 갑작스러운 생리현상에 대한 대비도 마친 셈이다. 토닥이는 듯 팔을 잡았다 놓은 후 문을 닫는다. 형희 님의 눈이 감겨 있다.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행동이 눈을 감는 것이라는 듯이. 현명한 형희 씨. 오른쪽 상의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문을 잠근다. 유리창으로 바라본 형희 님이 죽은 듯이 고요하다.